맑고 파란 가을 하늘이다. 쳐다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답다. 황금들판에는 추수를 위해 트랙터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학창 시절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로 사용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 샛노란 은행잎의 계절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도시 전체가 유적과 유물로 뒤덮여 있어 일명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르는 천년고도 경주. 경주에는 은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경주 서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과 통일전 앞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과 이웃하는 심곡지
몇 해 전부터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경주 서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을 지난 23일 찾았다. 경주 시가지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한참을 달리니 은행나무숲으로 가는 심곡로 길목에 다다른다.
조금 지나다 보니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심곡지가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보고 싶지만,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으로 가는 길은 좁은 지방도라 갓길이 없다. 도로 한편에 심곡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담한 카페가 보였다. 이곳에 잠시 차를 세워 심곡지 주변 경관을 감상했다. 한 마디로 멋지고 아름답다.
심곡지는 유서가 깊은 저수지이며, 도리마을 은행나무숲과 연결된다. 1930년 1월 1일 착공하여 1931년 12월 30일 준공했다. 벌써 90여 년이 훌쩍 넘은 제법 규모가 큰 저수지이다. 전체 면적은 52ha이며, 경주 서면과 건천읍 일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농업용 저수지는 농업인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주변 환경과 경관 제공 등 복합적인 공익기능도 함께 제공한다. 11월 초순 단풍이 절정일 때 이곳을 통과하면, 심곡지에 비친 반영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다.
은행나무숲을 보기 위해 도리마을에 관광객이 증가하자, 경주시는 이곳에 둘레길을 조성하고 있다. 내년 말 준공을 앞둔 심곡지 둘레길과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공사가 끝나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과 연계되어 또 다른 관광명소로 거듭날 것 같다.
경주 서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심곡지를 지나면 바로 은행나무숲이 보인다. 서면 도리마을은 경주의 서쪽 인내산(534.6m) 기슭에 은행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농촌마을이다. 108가구 174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아직은 절정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은 파란 하늘과 함께 초록과 옅은 노란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경주 서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7~8년 전부터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깊숙이 숨어있는 핫플레이스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매년 꾸준히 방문객이 증가하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단풍철 절정기에는 하루 4천여 대 1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이제 경주의 가을 필수 관광코스로 부상하고 있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임업협동조합에서 근무하던 마을 주민 한 사람이 묘목 판매를 목적으로 심었다. 반백년 세월 동안 쭉쭉 자라 15m 높이의 은행나무들이 마치 동화 속을 걷는 듯이 노란 세상을 이곳에 펼쳐놓고 있다.
1만여 그루의 은행나무 묘목이 자라는 동안 주변 밭작물에 피해를 주고, 역한 냄새 때문에 이웃 주민들과 갈등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숲 주인은 주민들에게 나중에 이 은행나무가 우리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보물단지가 될 것이라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지금은 도리마을 은행나무가 마을 최고의 명물이 되어, 주민들이 직접 나서 보호하고 관광객을 안내한다.
도리마을에는 크고 작은 은행나무숲이 7군데나 있다. 서로 이웃하며 붙어있어 포근함 마저 느껴진다. 논과 밭 사이에 자작나무처럼 쭉 뻗어 있는 은행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마치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아름드리 은행나무숲의 모습이 압권이다.
도리마을 곳곳에 은행나무와 어울리게 주변에 구절초, 황화코스모스도 심어 화려함을 더했다. 마을 담벼락에는 노란색 일색의 벽화도 그려놓아, 마을 분위기를 한층 더 밝게 해주고 있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은행잎이 피어 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은 더 장관이다. 얼핏 보면 노란 카펫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어디에서 찍어도 인생샷이 나온다. 이국적인 모습의 은행나무숲은 명화의 한 장면 같은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 때문에 연인들과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
도리마을회관 앞에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재배하여 수확한 농산물임시장터도 생겼다. 은행나무 하나로 관광객을 부르고, 마을을 활성화시키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단풍 구경은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절정의 시기를 놓칠 수 있다.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하여 된서리라도 내리면, 은행나무 잎이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 찾아가는 길
- 주소 : 경북 경주시 서면 도리길 17(농협환경농업교육원)
- 입장료 및 주차료 : 없음
통일전 은행나무 가로수길
은행나무가 연출하는 또 다른 멋진 경관은 통일전으로 이어지는 가로수길이다. 경주 남산동 황금들판을 가로질러 직선으로 길게 줄지어 선 은행나무 길을 바라보면, 답답한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한 통일전 은행나무 길을 지난 24일 찾아보았다.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운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문무대왕릉과 일직선상에 자리 잡은 통일전은 삼국통일의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통일도 이루자는 염원으로 1977년 9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되었다.
통일전 은행나무는 수령이 45년이 넘는다. 지난 2018년 경주시가 가로수 415본을 수형과 도심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심한 가지치기를 단행해 시민들과 관광객은 물론 언론의 심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수년이 지나 지금은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은행나무 가로수길 길이는 직선으로 2km이며, 주변 광장분까지 합치면 2.3km이다. 통일전 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편리하다. 몇 해 전 초라한 모습의 가로수길과 달리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은행나무 길을 가족, 연인들과 함께 한번 거닐어 보자. 지금은 약간 초록의 모습을 보이지만, 11월 초순이 되면 샛노란 은행잎으로 장관을 이룰 것 같다.
통일전 은행나무 길을 가장 아름답게 보기 위해서는 통일전 경내로 들어가야 한다. 통일전 경내도 단풍과 멋진 소나무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특히 화랑정 정자가 있는 곳에 있는 키가 큰 분재형 소나무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통일전 경내 은행나무는 벌써 노랗게 물들어 포토존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화랑정 연못에 핀 수련의 모습도 연못에 비친 파란 하늘 반영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통일전 맨 꼭대기 서원문 앞에서 은행나무 길을 바라보면 한마디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포토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방문객이 여기에서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른다. 서원문 양쪽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 마루에 걸터앉아 남산동 들녘과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된다.
통일전 은행나무 길은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지나다 보면 이 길에 매료되어 브레이크를 자꾸 밟게 된다. 일 년에 딱 한 번 볼 수 있는 풍경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고 멈추게 된다.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찾아가는 길
- 주소 : 경북 경주시 칠불암길 6(통일전)
- 입장료 및 주차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