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후배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를 받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팔십을 앞둔 어르신은 오래도록 지병으로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태원 압사 참사 속보가 모든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뉴스는 많은 사람들이 한데 섞여 아우성인 장면과 여기저기 누워 있는 사람들을 에워싸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구급대원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 주었다. 화면만으로도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벌떡 일어났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이 집에 있다는 걸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방문을 열고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침대에 누워 있는 딸도 핸드폰을 보며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니?"
"그러게 말이야."
"너도 뉴스 봤지?"
"응. 보고 있었어."
"혹시 이태원에 간 친구들은 없어?"
"나도 알아봤는데 없는 것 같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네. 언니(이종사촌)도 안 갔지?"
"안 갔지. 우리는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근데, 어떻게 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일텐데.."
"그러게. 사상자가 많지 않아야 할텐데. 뉴스 보니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걱정이야."
"엄마, 너무 속상해. 자꾸 이런 일이 생겨서... 댓글에 막말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화가나.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냐구! 죽어가는 사람들한테 그게 할 말이야?"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4시까지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사상자 수는 자꾸만 늘어만 갔고 내 속도 타들어갔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여기저기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와 있었다. 스무살 아이가 있는 집이니 혹시나 해서 다들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친정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서 뉴스를 보셨는지 새벽부터 전화를 해 아이가 이태원을 가지 않았는지 확인을 하셨다.
모두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내 아이의 일이 아니라고 가슴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것조차 다들 미안해 보였다. 우리는 모두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니까. 단지 축제를 즐기러 나왔다가 백 오십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계속 속보가 윙윙 거리고 있는데, 정신이 멍해져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차리는데 그제서야 일어난 작은아이가 나와 식탁에 앉았다. 눈 비비고 있는 아이에게 간밤에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니, 자느라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는 깜짝 놀라며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본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이 났는지 "누나는 집에 있지?" 하며 누나 방문을 슬쩍 열어 본다. 누나가 있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한 아이는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그 사이 핸드폰에서 기사를 읽었는지 밥을 먹으며 아이는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죽거나 다친 사람들 먼저 돌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서 잘잘못을 따져야지"라고 말했다. 아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망연자실할 가족들도 챙기고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아픈 사람들도 돌보고... 이런 것이 먼저이지.
지난 세월호 때도 이런 기분이었다. 직접적인 내 일은 아니었지만 마치 내가 겪은 일 같아서 몇 년을 아픈 마음을 다독이며 지냈다.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잃는 것이 가슴속에 한처럼 맺힌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일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니 이런 말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그런 행사를 왜 하는 거야?"
"그런 곳을 왜 가는 거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가장 힘든 사람들은 당사자와 그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가족일 것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언어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위로의 말로, 찬바람 일고 있을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여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죽음 앞에서 나는 무척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