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대전 골령골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가 묻혀 있는 제2학살지에서 구덩이 70여 미터 구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2 학살지는 유해 매장 추정지 구덩이 길이가 180미터에 달해 골령골에서 가장 긴 구덩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 유해가 훼손된 상태다.
대전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있는 대전 동구청(청장 박희조)과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은 골령골 2 학살지 70미터 구간에서 희생자 유해와 유품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다량의 유해 파편과 함께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탄피와 탄두(카빈, M1, 권총)도 드러났다.
유해는 심하게 훼손돼 대부분 파편 형태로만 있어 온전한 형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농사와 도로공사 등 여러 공사로 매장지가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 구간은 유해 매장지를 관통해 플라스틱 배관 또는 철제관이 묻혀 있었다. 이 때문에 발굴할 유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구간 매장지 대부분은 최대 깊이가 60cm 정도인데 대부분은 20cm 정도에 불과했다. 최소 깊이로 볼 때 약 1미터 이상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유품은 비교적 많은 분량이 발굴되고 있다. 각종 단추, 고무신 등 신발을 비롯해 여성용으로 보이는 손목시계와 교복 단추로 추정되는 금속단추, 뼈와 함께 채 삭지 않은 섬유 조각 등도 함께 발굴됐다. 단추도 국방색, 흰색, 붉은색 단추 등이 두루 확인됐다.
손목시계는 푸른 이끼가 유리 앞면을 덮어 멈춘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유해발굴굴을 맡고 있는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는 "단추와 시계 등 유품으로 미뤄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이 함께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날부터 발굴단 규모를 하루 20여 명으로 늘려 본격 발굴에 나섰다. 따라서 빠르면 이달 10일을 전후해 이 구간에 대한 발굴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한 유해는 현재까지 제1 학살지, 제3 학살지, 제5 학살지에서 모두 1300여 구다. 2 학살지에서는 지금까지 수습한 유해가 없었다.
대전 골령골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등 최소 4000명, 최대 7000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