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화) 오전 10시 30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는 국방경비법 위반과 내란죄 등으로 기소됐던 제주4·3 수형인희생자에 대한 군사재판 직권재심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고(故) 김순규님 등 30명에 대해 전원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검사는 "피고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받았다"며, "피고인들의 죄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하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하였습니다.
피고 측 변호사 역시 "대한민국 건국으로부터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계신 희생자와 유족분들은 해방 직후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나기 전 과도기의 대립 양상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되셨다"며, "희생자분들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늦게나마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변론을 마쳤습니다.
망 고군섭님의 조카의 아들 고경학님은 "작은할아버지 가족 네 분의 제사를 저희가 합니다. 작은할아버지는 4·3때 끌려가셔서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릅니다. 작은할머니와 아들 두 분은 끌려갈 당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광경을 동네사람들이 봐서 온 동네에 소문이 다 났었습니다. 오늘 작은할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으셔서 억울함이 좀 가실 것 같습니다. 말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서 더 못할 것 같습니다"고 말을 마쳤습니다.
고 강운학님의 손자 김영범님은 "할머니께선 자녀가 다섯 있었는데 아이를 넉넉하게 돌볼 형편이 되지 않아 다섯 중 네 분은 열 살 이전에 죽고 아들 한 분만 살아남았습니다. 할아버지도 일찍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하나 남은 아들은 할머니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밭에 갔다 돌아와 보니 자식이 없어졌습니다. 동네방네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이때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께선 가슴에 자식을 묻고 살다 가셨습니다. 국가의 무참한 폭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갈가리 찢어놓았던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재심재판을 방청한 다른 희생자 유족분들도 "지금에 와서라도 재심을 열어서 영령분들의 아픔을 회복시켜주어서 감사합니다. 영령분들도 이제 편히 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유족들의 진술이 끝난 뒤 장찬수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은 적법한 증거에 따라 선고해야 한다. 그러나 피고인 30명이 이와 같은 죄를 지었다고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제주4·3 당시 군법회의는 1948년 12월과 1949년 6월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두 번의 재판 동안 2530명의 희생자가 유죄 판결을 받아 전국 곳곳의 형무소로 끌려가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여태까지 생사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날까지 직권재심을 통해 모두 460명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재심재판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국가의 폭력에 희생당한 2530명의 영령 모든 분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