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이던 지난 10일 저녁,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을 찾았다. 열흘이 넘도록 발길을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보다 참사 당일 희생자들이 발생하던 그 시각,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지나쳤던, 이태원 역에 내리지 않았던 기억만으로 무언가 죄책감이 남아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도 믿기지,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경찰들도, 자원 봉사자들도, 시민들도 모두 믿을 수 없이 차분했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늦가을 이태원 밤거리가 거대하고 고요한 무덤가로 느껴질 만 했다. 누군가는 기도를 올렸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추모글을 적고 있었다.
'1997년에 태어난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2022년, 이태원 압사 참사로 또다시 또래 친구들을 잃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고 생명존중인(이) 우선인 사회 기필코 만들어내겠다.'
이태원역 1번 출구 내벽에 붙은 어느 추모글이 눈에 콕 박혔다. 마침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추모의 메모들에 카메라를 가져가고 있었다. 11일까지 1명이 더 늘어 157명으로 늘어난 희생자. 희생자 대부분이 젊은 청춘들이라는 사실이 절감되는 추모글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비통함을 호소하고 분노를 다짐하는 추모글들이 참사 현장과 1번 출구를 뒤덮고 있었다.
이중 각국 언어로 쓰인 외국인들의 메모도 상당했다. 참사 현장을 찾아 애도하는 추모객들 중 상당수도 다양한 언어를 쓰고 각기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태원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일까. 그도 아니면 희생자 중 외국인들이 적지 않아서 일까. 외국인들이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해밀튼 호텔 앞 신호등, 어느 백인 중년 남성이 이렇게 외치며 지나갔다. 그의 입에서 발성된 건 분명 한국어였다.
"10년 전엔 이러지 않았다고!"
외국인 추모객이 상당수였던 그날
한국에서 10년을 거주한 개인 경험의 발로였을까. 아니면 참사 전인 '10일 전' 혹은 '열달 전'을 지칭한 걸 내가 잘못 들었던 걸까. 분명한 것은 그 백인 남성처럼 이날 추모 공간과 참사 현장을 둘러보던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 중 대다수가 얼핏 봐도 참담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는 사실이리라.
참사의 현장인 이태원이란 공간의 특수성이, 희생자들 중 각국 외국인이 26명이나 포함됐다는 사실이 또 한번 상기되는 순간이었다. 경찰 통제선이 쳐진 해밀턴 호텔 뒤편을 서성이던 백인 여성 외국인의 모습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Pray For Itaewon'이라고 쓰여진 추모 현광판 앞 통제선 부근에 한참을 서 있던 그 여성은 편안한 차림으로 짐작컨대 이태원 인근 주민인 듯싶었다. 말없이 경찰 통제선 앞에서 자신과 같은 또래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이 고통 받는 그 중심 거리를 바라보던 그 외국인 여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10일 동남아 순방을 앞두고 출근길 문답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MBC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허용하지 않은 데 대해 윤 대통령은 국익을 운운했다. 기가 찬다. 외국인들이 26명이나 희생됐다. 각국 대사관이 촉각을 곤두세운 10.29 참사는 이미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됐다.
안타까운 소식만 전해진 게 아니다. 주요 외신들은 정부와 경찰의 안일한 대응에서 비롯된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국내 언론보다 세세하게 보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 이하 정부여당이 얼마나 안일하게 대처 중인지, 어떤 말실수를 거듭하는지도 하루가 멀다하고 업데이트 중이다.
그런 와중에 한국은 물론 해외 언론 역사 상에서도 유례없이 언론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를 저질러 놓고 버젓이 '국익'을 운운한 윤 대통령. 외신들은 그런 윤 대통령을 향해 또 어떤 보도들을 쏟아낼까. 그 자체가 대통령의 국익 훼손 행위 아닌가.
외신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한덕수 국무총리는 물론이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정부여당은 과연 외신이 왜 이리도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집중조명하는지 그 연원을 여지껏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근심이 생겼다. 바로 이태원 상인들이다.
휑한 이태원 분위기
'점심 먹고 좀전에 헤어진 이태원에서 술집하는 후배의 말에 의하면 '참사 당일 가장 고생하고 슬퍼한 이태원 지구대 경찰들이나 용산소방서 소방관들이 사법처리대상이면 용산구청장,서울시장, 경찰청장, 행안부장관, 윤석열은 최소 무기징역감'이라고 참사를 지켜본 이태원 상인들 99%가 말하고 있단다.' - 지난 8일 트위터 아이디 @jnjXXXX 글 중에서
이태원 추모 공간에 다녀온 후, 트위터 상에서 4천 번 넘게 리트윗된 이 글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주말은 아니더라도 평소였다면 붐비고도 남았을 이태원 상점들의 텅 빈 가게 안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난 이후라 더더욱 말이다.
수 년 동안 핼러윈 행사를 지켜보고 손님들을 맞이했던 이들 이태원 상인들의 트라우마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한 이들에게 압사 참사 후 2주 간은 생계와 직결되는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참사 트라우마가 오래가면 갈수록, 또 진상규명을 포함한 정부 대응이 오래가면 갈수록 이태원이란 공간 특유의 활력이나 특성 또한 회복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K-컬처의 성지처럼 느끼는 그 이태원이 말이다.
국익 운운하는 윤 대통령이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태원 상인들과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10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이태원의 안타까운 분위기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