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OECD 36개국 중 지난 17년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가 예방보다는 자살과 관련된 고위험군을 찾아내려고만 했던 '표적화된 전략'의 반복된 실패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지영 상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다수가 소수를 껴안는 것이 상식인데,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을 보고 다수를 따라오라고 요구한다"며 "현장에서 (자살) 고위험군 사람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은 삶과 맞닿아있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2022년 인권정책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박지영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빈곤자, 성소수자, 폭력 피해자, 실업자, 비정규직, 특성 질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은 그 정체성이 배제되고, 다수의 특성에 따라오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것이 절망감, 우울감, 희망 상실로 이어져 자살로 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특히 "위험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에 치중했던 '표적화된 전략'을 넘어서 예방적 구조의 긴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며 "소수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망 확보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취약계층과 소수자들에게 깊게 박힌 선입견, 차별, 구분, 혐오와 같은 보이지 않는 관습들은 개인관계, 조직, 지역사회에서 법이나 윤리, 시스템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며 "다수가 지향하는 특질을 같이 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불형평은 암묵적으로 당연시된다. 결국 소수자들이 도움을 요청해도, 필요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 보건국(NHS, 2018)의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 2018' 보고서를 제시하며 자살 위험 요인으로서의 '불형평성'에 대해 짚었다. 그는 "불형평성에 노출되는 취약계층은 무력함, 사회적 배제, 취약한 정신건강, 불건강한 생활습관, 낙인과 무시,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어 "지역사회의 자살 위험 요소로는 첫째, 지역사회 내 낮은 사회적 결속·낙인·사회적 박탈 및 안전 부족, 둘째 부적절한 보도 및 언론의 자살 행위표현, 셋째 욕구 사정 및 규명, 예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질적이지 않은 서비스, 넷째 가족 해체·저학력·고용 불안정·알코올 및 약물 남용 등의 문제에 대해 개인을 비난하는 것들이 있다"며 "(보고서는) 자살 예방 전략은 이 위험 요소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전략이어야 함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지난 20년 동안 27만 5000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자살) 시도자는 (이 숫자의) 10배라고 본다. 유가족 및 의미 있는 친구와 친척 등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전문직 상담사까지 포함하면, 천만 인구가 자살과 그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자살은 불형평적인 사회구조의 관습의 결과"라며 "자살 문제는 WHO가 정의한 우울감 등 정신건강 및 공중보건 문제가 아니다. 사회구조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최근 사회적 소수자들이 청년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대와 20대 자살률이 2018년에 비해 10대는 2.7%, 20대는 9.6% 늘어났으며 특히 10대의 사망 원인 37.5%와 20대 사망 원인 51%가 자살인 사실이라고 한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틀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며 "자살 예방 관점을 논할 때, 불형평성을 고려한 사회적 안전망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원장은 "국가는 자살 문제를 인권 문제로 바라보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며 "기존의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현재 6개부처, 38개 민간기관 단체)를 우리나라 자살 예방의 컨트롤 타워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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