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돌아왔다. 다행히도 올해는 시험실 감독이 아닌 복도 감독을 맡았다. 작년 시험실 감독을 맡으며 복도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올해는 이 업무 아니면 허리에 문제가 있어 수능 감독을 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해서 맡은 업무였다.
업무의 긴장도는 시험실에 들어가는 감독에 비해 덜하겠지만, 여학생들만 보는 시험장이어서 예민한 사항이 벌어질 수 있다며 다양한 사례를 들었다. 감독관 연수에서는 책상과 의자 민원까지 대비하고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학교의 책걸상 상태가 좋아 해당 민원은 생기지 않았다.
17일 오전 6시 30분 출근해서 6시 50분부터 시험실 담당 위치에서 학생들을 안내하는 업무가 시작되었다. 수능 감독을 여러 번 했지만 6시 50분부터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설마 그 이른 시간에 등교하는 학생이 있을까 싶었지만, 위치로 갔을 때에 이미 학급에 한두 명씩 앉아 있었다. 긴장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고, 시간을 기다리느니 일찍 나오는 것이 낫겠다 판단했을 터였다.
교실의 난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복도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을 시험실로 안내했다. 아직도 밖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 움직임이 있어도 복도라는 공간은 공기마저 가라앉아 얼어붙을 것 같은 냉랭함이 감돌았다.
학생들이 입실을 거의 마쳤을 즈음, 한 학생이 다가왔다. 빈 물병을 내밀며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 식수대는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해 놓은 상태였다(코로나로 인해 식수대는 사용을 금지했다). 난감해 하는 학생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서 감독관에게 제공되는 물 한 병을 가져다 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웃는 얼굴이 환했다. 저들은 시험 때도 빛이 나는 청춘이구나 생각했다.
어떤 일을 잘못이 없도록 보살펴 단속함, 말 그대로 감독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엄격함과 경직된 행동에서 벗어나 물 한 병 정도의 마음씀으로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시험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면, 오늘의 감독 목표가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 담당 업무는 화장실이나 보건실 등으로의 이동과 시험실에서 불편을 겪는 학생들의 안내였다. 긴장 탓인지 위경련, 복통, 메스꺼움, 생리통, 구토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들을 보건실로 안내하고, 다시 시험실로 데려오고, 혹 시험실에서 보는 것이 어려울 경우 따로 준비된 분리 고사실로 안내하고, 오가는 소요 시간을 확인해서 시험 시간에 반영할 수 있도록 분리시험실 감독관에게 시간을 전달하는 것까지.
그 모든 과정이 긴박하고 치밀하게, 조용하고 빈틈없이 진행되어야 했다. 마치 작전처럼. 위경련이, 복통과 구토가 시험에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해야 했으므로. 바쁘게 챙기는 과정에서 몸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발걸음은 빨라졌고 와중에도 학생을 세심하게 배려하려고 애를 썼다.
시험실 감독은 총 4시간의 시험 중 3시간을 한다. 걸음 소리도 신중하게, 움직임도 최소화하며 옷이나 몸에서 나는 냄새까지 신경 써야 하니 시험이 끝나고 나오면 모두들 한결같이 저절로 곡소리를 냈다. 복도 감독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한 번도 쉴 수 없었다. 걸음은 오전에 이미 만 보를 넘어섰다. 종종거리고 뛰어다닌 결과였다.
수시가 대세인 요즘이지만 내년부터는 입시 전형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2023년 입시부터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의 정시 비중이 확대된다고 한다. 수도권의 경우는 아직은 70% 이상 수시 전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년은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수능은 앞으로도 중요한 관문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대학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는 말도 들려오지만, 현재의 중등 교육은 대학을 위한 징검다리가 된 지 오래다. 요즘 같이 국내외의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학도 종착점은 아니다.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써의 대학, 중요한 기착점이기에 이 땅의 모든 교육 주체가 수능에 매달린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학년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다. 그 아이들은 정확히 1년 후 수능을 맞을 것이고 올해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시험장에서 긴장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단계가 순탄하게 이어오는 잔잔한 계곡물 같은 흐름이었다면, 수능은 작은 물살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내는 낙폭 낮은 폭포쯤 되지 않을까.
며칠 전까지도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10시까지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이 문득 떠올랐다. 노력만큼 결과로 보답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도서관의 자리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고2 학생들이 이어받아 고독한 레이스를 펼칠 것이다.
수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수가 있었더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어떤 결과든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고 이미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수능 성적이 아이들의 미래를 반드시 보장하는 만능 카드가 아니라는 것을 지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도 할 뿐더러 시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시험이 끝난 후, '하루가 고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남의 떡은 역시 너무 커보인다. 감독으로서의 하루만 고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험장 밖에서 기다리는 부모와 수험생에게도 고된 하루가, 그 험한 고비가 지나갔다. 앞으로 남은 단계도 오늘처럼 차근차근 잘 넘길 수 있기를 교육 현장에서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