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1.
선생님, 저는 요즘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었어요.
무엇이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드냐고 하셨죠?
세상이 이해되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이 피해자와 사망자를 조롱하고,
'놀러간 네 탓이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퍼붓고,
정부 기관은 슬퍼할 줄 모르는 것 같아서요.
도대체 왜 그럴까, 이해할 수 없어 힘이 들어요.
이해라도 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상담선생님 : "오늘은 방어기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요. '인정은 바라지도 않아, 이해만 해줘도 살 가치는 충분히 있다'라고 하셨던 말 기억 나요?"
나 : "네, 기억 나요."
상담 선생님 : "제가 듣기에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남의 인정은 필요 없지만, 이해 못 해서 타박하고 혐오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
나 : "제가 이해 못 받는 것도 힘들고 제가 남을 이해 못 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남을 이해 못 하면 미워하게 될까봐... 누구를 미워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해요."
상담 선생님 : "방어기제가,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발동되나 봐요.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건가 봐요. 그래야 내가 사니까, 나를 살리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이해하려고."
나 : "그럼 이번에는, 왜 방어기제가 작동을 안 해요?"
상담 선생님 : "작동하기도 전에 무차별 폭격을 받으니까, 거기에 맞서서 똑같이 그냥 욕하고 비난하고 나쁘게 생각하고 싶은 방어기제가 발동된 것 같아요. 나 같아도 그러겠어요. 아무 이유 없이 나보고 '다, 네 잘못이다' 누가 뭐라 그러면 일단은 같이 싸울 거 같은데요. 그런 개념이죠."
선생님, 저는 이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혐오로 공격하고 혐오로 맞대응하는 과정을 확인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그들을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
2.
CBS라디오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곳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참사 이후 여러가지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초롱씨는 어떤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었느냐"고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스템이 무너졌다,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 보고 체계가 엉망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가고 있지만, 다시 질문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정말 시스템이 그렇게 무너진 나라인가요? 그렇게 후진 나라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사고 체계를 갖고 사는 사람이라 외국에서 사는 것이 더 잘 맞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는 이유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112에 신고하면 몇 초 안에 답장이 오고, 2~3분 내로 경찰이 출동하고, 또 CCTV가 이렇게 많고요. 시스템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보고도 잘 되어왔고요. 문제는 위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가치관으로 살아가느냐는 거죠."
방송시간이 짧아 더 이어서 말하지 못했지만, 선생님, 저는 이 사건의 본질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에 있다고 보고 있어요.
아침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출근과 퇴근하는 삶이 정답이고, 모든 유흥은 나쁜 것이라는 획일적인 사고 방식이 팽배한 사회. 그런 시대를 당연히 살아온 사람들이 지도층으로 있기 때문에 이태원에 그 많은 인파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겠지요.
획일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이태원, 파티, 유흥, 핼러윈을 이상하고 기괴하다고 혐오하고 '놀러간 너희 탓'이라고 조롱하는 거겠지요. 다름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회 분위기가 혐오를 만들고, 슬퍼할 줄 모르는 정부를 낳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남과 다르면 손가락질 하고, 튀는 행동 튀는 모습을 보이면 따돌리고 뒤에서 흉을 보는 사회에서, 젊은 친구들이 이태원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사람이 하는 베트남 음식점, 중국 사람이 하는 중국 음식점이 있는 동네. 낯선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관계지향적인 사고가 가능한 곳. 음악을 즐기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DJ들이 초청되어 디제잉 공연을 하러 오는 곳.
어떤 사람에게는 저녁 7시가 하루의 시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태원이 삶의 터전이며,
한 숨 툭 터놓고 쉴 수 있는,
청춘이라는 두 글자를 유일하게 마음껏 사용해도 되는 그런 곳.
그런 이태원을 많은 청춘들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다양성 존중이 이루어지는 이태원에서,
다양성 존중을 할 줄 모르는 기성세대가 참사를 막지 못한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죠. 서로 이해하면 되는 거네요.
기성세대는 모를 수 있어, 알려드리면 되지.
젊은세대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더 좋은 국가운영을 하려면 무엇을 더 놓치고 있을까.
편을 나누어 이쪽 저쪽 싸우시면 안 돼요.
진상규명이라는 피켓으로 우리는 다르다고 외치지 마세요.
저는 수사가 먼저인지, 국정조사가 먼저인지 싸울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잘못했으니, 내려와라' 이런 문제로 이용하시면 안 돼요.
지금은 위에 계신 기성세대가 모두 모여 서로 대화하시며
무엇을 우리가 놓쳤는가,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를 논의하셔야할 때입니다.
국민을 사랑해주세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에, 국민이 어디서 어떻게 다칠지 관심이 없는 것이고, 예측을 못하고 말실수가 나오고, 사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조사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상처를 더욱 입히는 걸겁니다. 아무도 사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믿음을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멋진 어른들이냐며 박수를 칠까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다칠까 노심초사 눈을 떼지 못하죠,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놓일 까봐 전전긍긍해 하고, 그런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끼고요.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입니다. 국민에게도 국가는 우주이자, 부모예요. 국민을 더 사랑해주세요.
3.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언젠가 꼭 제 작업실을 갖고 싶었어요 선생님. 언제 가질 수 있을지 아예 모르면서 저는 벌써 상상만으로 작업실 이름까지 다 지어놨어요.
작업실 명은 '안전지대'예요.
조금 유치하죠? 그래도 저는 이 이름이 좋아요.
늘 방공호 같은 곳이 필요했던 사람이었어요.
개성이 뚜렷하다는 이유로, 어디선가 날선 욕을 먹는다거나, 이유없는 미움을 받는 다거나, 오해를 받는 게 익숙했거든요.
제 작업실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방공호가 되길 바랐습니다.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성소수자든, 외계인이든, 어디서 왔든, 어떤 국적이든, 어린아이이든,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괴짜든, 아니든.
'당신은 이곳에서 안전해요. 다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어요'라는 메세지를 담은 공간으로 제 작업실을 꾸밀 겁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를 해칠 사람이 전혀 없는 공간. 그것이 바로 안전이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며. 그래야 모두가 다 함께 살 수 있어요.
김민철 작가님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We stand with you
You are safe here.
(우리는 당신 곁에 서있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안전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정리가 되네요.
제 작업실 안전지대가, 김민철 작가님의 문구가 필요한 곳은 바로,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모두 손잡고 이런 메세지를 국민에게 주셔야 할 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