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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미씨가 평소 좋아하는 수원의 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웃고 있다. 그는 같은 PM 직무를 준비하던 취업 준비생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을 도맡아 이끌 정도로 열정적이다.
김은미씨가 평소 좋아하는 수원의 한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웃고 있다. 그는 같은 PM 직무를 준비하던 취업 준비생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을 도맡아 이끌 정도로 열정적이다. ⓒ 이향진
 
'문송(문과라 죄송합니다)'의 시대, 치열한 문과 취업전선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은 청년이 있다. 대학 시절 소설을 쓰다 IT 회사 프로덕트 매니저로 전향한 스물다섯 김은미씨다. 그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원했던 IT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인턴을 지냈다. 신입을 채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직무이기에 인턴 제의는 뜻밖이었다. 김은미씨는 자신이 새로운 직무를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소설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경험" 덕분이라 말한다.     

예술 및 인문학 전공 계열 취업률이 현저히 낮은 한국. 은미씨는 새로운 꿈을 펼치기 위해 어떤 과정들을 겪었을까? 그 어렵다는 문과 취업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문학청년에서 IT 산업에 몸담기까지의 취업 분투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문과생들이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을 듯해, 지난달 3일 그를 인터뷰했다. 

남들과의 차별점,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 "블로그에 매번 글로 남겼다"

'프로덕트 매니저'(이하 PM)는 IT 서비스 공급자와 고객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고객이 서비스에서 원하는 것, 불편해하는 것을 파악한 뒤 이를 실제 서비스에 반영하기 위해 서비스 공급자와 활발히 소통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가치를 실제 서비스로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직무인 것이다.

은미씨는 문화서비스 산업을 복수전공하면서 처음 PM을 알게 됐다. 대학 시절 내내 소설을 열심히 썼지만 글쓰기로 직업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복수전공을 하면서 다른 직무를 찾기로 했다. 다만 그 일이 무엇이든, 소설을 쓸 때처럼 '타인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생각하는' 직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찾은 직업이 바로 PM이었다고 한다.      
 
 은미 씨가 인턴을 지낸 기업 '그리팅'의 모습
은미 씨가 인턴을 지낸 기업 '그리팅'의 모습 ⓒ 김은미
      
- PM 직무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요새는 사람들이 IT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이 다 데이터로 남아요. 서비스 접속할 때 보통 어떤 버튼을 먼저 누르는지,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몇 번 만에 맞는 버튼을 찾는지 등등의 정보들이죠. 저는 그 데이터를 토대로 먼저 사용자의 불편함이나 수요를 파악해요. 그다음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IT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이 부분을 고쳐주세요','이런 기능을 넣으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 마디로 징검다리 역할이죠."

- 얼마나 중요한 직무인가요?

"하나의 IT 서비스가 완성되려면 개발, 디자인, 비즈니스 이 세 영역의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일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 세 영역만 있어서는 각자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어렵죠. 고객의 목소리도 못 듣고 서비스의 문제를 정의하거나 해결하기가 힘이 드니까요. PM은 이 세 영역 사이에서 적절한 소통이 이루어지게 하고, 이들의 의견을 하나의 서비스로 연결하는 사람이에요.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예요."

- 취업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코드스테이츠 PM 부트캠프' 국비 지원 교육을 받았어요. 13주 동안 월화수목금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인터넷 강의를 들었어요. 주차 별로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어 혼자 학습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어요. 직무 소개, 실무 과정, 소통 방법론 등등을 배워요. 저녁엔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학습 코치들과 정기적으로 토론하거나 발표 수업도 했어요. 매일 서비스 분석 과제를 했고, 8주 동안 실제 서비스를 기획하는 프로젝트 과제도 했어요. 교육받는 과정과 제가 배운 것들을 블로그에 모두 포트폴리오로 남겼고, 그게 취업에 큰 도움이 됐죠."

- 스카우트 제의는 어떻게 받은 건가요?

"원래 교육 마지막 몇 주차 동안은 취업 관련 면접, 자소서 관련된 수업을 받아요. 취업할 만한 회사와 연계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방식은 아니었고요. 평소 눈여겨봤던 기업의 서비스를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분석한 글과 블로그 주소를 기업 이메일로 보냈어요. 진심으로 그 회사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아쉬운 점, 개선할 점을 적었죠.

그러자 뜻밖에도 기업에서 인턴 제의를 받았어요. 분석문이랑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포트폴리오를 좋게 봐주신 거죠. 회사 CEO랑 기존 PM, 인사팀장 님이랑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면접을 봤고, 인턴 기회를 얻게 됐어요. 기록하고 분석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 IT면 코딩이나 개발자 직무에 대해 공부해야 하지 않나요? 그 부분이 힘들진 않았나요?

"개발자와 소통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 건 맞아요. 그런데 완벽하게까지 알 필요는 없어요. 만약 IT 개발자 직무 때문에 진입장벽을 느껴 PM 준비를 망설이는 분이 계신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발자 소통하려면 코딩 알면 좋지만, 완벽히 알 필요는 없어"

한편, 통계청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모든 전공 중 인문학과 예술 관련 전공 취업률이 가장 낮았다. 은미씨에게 문예창작을 전공한 것에 대한 불안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PM 교육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 내 전공을 가장 부러워했다"며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문과 출신이어서 개발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소통하는 일이요. 여러 직무의 사람들과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요. 소통을 자신의 전공과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면 좋아요. '서비스 기획'이라고 한데 묶이는 PM, 프로덕트 오너 등의 직무 외에도 총무, HR, 법무 등의 직무에 문과생들의 역량이 쓰이고 있어요. 특히 IT 스타트업의 경우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컨트롤하고 중재할 수 있는 문과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제 직무는 회사에서 개발자와 가장 밀접하게 일하는 비개발 직군이긴 하지만, 문과생으로서 꼭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 PM이 되는 데 필요한 업무 능력은 뭔가요?

"의사소통 능력, 기획력,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능력, 문서화 능력 등등 다양한 게 필요해요. 실제로 기업마다 공통으로 '문제를 주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본 경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의견을 조율한 경험'이 있는지를 봐요.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도 중요하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공감 능력'이에요. IT 기술의 목적은 '사람'을 향해야 해요. 고객에게 공감하지 않고 편리하기만 한 서비스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요. 결국 기술도 감성의 영역이에요. 서비스 이용자 관점에서 뭐가 필요하고 불편한지 알기 위해선 '공감'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고객 편의'가 가장 큰 목표라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모든 IT 영역의 개발 과정은 '도구'라고 볼 수 있죠. 물론 모든 서비스 개발 과정이 중요하지만요."

- PM 직무와 소설 쓰기는 어떤 점이 닮았나요?

"나 자신만 보지 않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야 한다는 점이요. 소설을 쓰고자 하는 마음도 항상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찰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고개를 들어 '세상과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면에서 소설 쓰기랑 닮았다고 생각해요."

- PM에게 필요한 새로운 시선과 감각을 위해 특별히 하는 일 있나요?

"뉴스레터를 여러 개 구독해놓고 주목할 만한 이슈들이 있는지 늘 확인해요. 그거 말고도 더 중요한 연습도 해요. 흥미로운 기사 한 편을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으면서 느낀 점을 정리하는 일이에요. 한 가지를 깊게 보는 게 사회나 사람에 대한 인식을 기르는 데 도움을 많이 줘요."

- 인턴 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예요?

"제가 낸 의견이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반영됐을 때요. 제가 인턴을 지냈던 회사는 '인사 채용자'가 주 고객이었어요. 채용자를 위해 지원자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기 쉽게 정리하거나, 면접 일정을 대신 잡는 IT 서비스를 제공했었는데요. 사실 이 서비스는 채용자뿐만이 아니라 지원자, 그러니까 취업준비생도 이용하는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면접 전날 지원자가 일정을 재확인할 수 있게끔 '리마인드 이메일'을 보내는 서비스를 생각해냈죠. 언뜻 들으면 간단한 내용 같지만, 수없이 많은 시험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이후 서비스 이용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땐 정말 보람이 컸어요."

"온라인서 사람들 모일 '광장' 만들고 싶어... 조급해말고 자신만의 무기 벼리길" 
 
 인터뷰 도중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기 위해 노트북을 연 은미 씨의 모습.
인터뷰 도중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기 위해 노트북을 연 은미 씨의 모습. ⓒ 이향진
 
- 오랜 시간 공부한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PM 직무를 선택한 건 제가 문학을 선택했던 이유와 비슷해요.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이런 삶도 있어요' 하며 글로 옮기는 사람이죠. 각자에게는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들이 다 있어요. 저 또한 작가처럼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고요. 저는 그 가치를 문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IT의 '플랫폼'이라고 하는 광장에서 이루고 싶어요. 더 빠르고 확실하게 시공간의 제약 없이도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게요."

- 프로덕트 매니저 분야는 신입을 잘 뽑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인턴 기간이 끝날 때쯤 제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와 더 잘 맞는 회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 어린이 등등 사회적으로 목소리가 크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찾고 있어요.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차근차근 준비하면 제가 열정을 다할 수 있는 회사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조급해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지금 2022년의 대한민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IT 서비스는 뭘까요?

"'광장' 같은 플랫폼 소통 서비스요. 제가 꼭 만들고 싶은 서비스이기도 한데요. 광장에서만큼은 모두의 목소리가 공평하잖아요. 누구나 자기 생각과 뜻을 밝힐 수 있죠. 그러다 의견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우리 사회가 성장한다고 믿어요. 사람들이 더 '잘' 목소리를 내고 모일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관리하는 게 제 꿈이에요. 사람들이 광장에 입장해서 나갈 때까지 긍정적인 경험을 누리는 모습을 파수꾼처럼 멀리서 지켜보고 싶어요."

그는 그동안 해왔던 일이 아닌 다른 직무에 도전하는 이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은미씨에게도 홀로 불안해하며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그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 기관을 찾고, 경쟁의식에 휩싸일수록 사람들을 도우며 함께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또한 매일 자신의 성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은미씨는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은 먼저 있던 사람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가질 수 있기에, 자신만의 무기를 잘 벼리면서 함께 끝까지 잘 버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향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문과취업#청년#일자리#IT#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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