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지난 24일 '윤석열 정부 언론 문제 우려 속 언론학계 제시한 비판언론학 화두'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1월 20일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에 취임한 김은규 교수의 취임사 등을 인용해 작성한 기사다. 김은규 학회장이 "탐욕이 능력주의로 포장된 시대에서 비판언론학의 정체성을 굳건히 해야 한다"고 했고, 전임 학회장들도 "학문이 실천의 결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면서 이를 환영했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전임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의 한 사람으로서 반론한다.
기사에서 내력을 설명했듯이 비판언론학은 1980년대 "미디어 효과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미국 언론학이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으며 "언론·미디어를 사회적 구조·소유구조 등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론"이다.
맞는 이야기지만, 강산이 세 번째 바뀌고 있는 21세기 미디어 환경에서 비판언론학 이론을 그대로 고수하고 학회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비판언론학은 마르크스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이론에서 단순재생산은 축소지향성으로 귀결된다. 지금 시점에서 언론정보학회가 비판이론의 정체성 고수 내지는 강화를 목표로 삼는 것은 학문의 정체 내지는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회장은 취임사에서 학회의 정체성과 더불어 확장성을 동시적 목표로 제시했다. 비판언론학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학회의 역량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 얘기다. 비판언론학을 앞세워서는 확장성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다. 단순재생산과 같은 이치다. 학자가 배움을 바탕으로 사회참여를 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은 비판언론학이 아니더라도 실천해야 할 당연한 책무다. 그건 기본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으며 학문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다른 학회는 어떤지 보자. 한국언론학회는 시류에 영합하는 보수적인 경향을 뚜렷이 하는 가운데서도 미디어와 사회의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연구도 놓치지 않는다. 한국언론학회는 21세기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언론학 교육의 길을 묻다>(2009), <융합과 통섭-다중매체 환경에서의 언론학 연구방법>(2012), <커뮤니케이션의 확장-경계에서 미디어 읽기>(2016) 등 세 권의 책을 냈다. <언론학 교육의 길을 묻다>에선 이 책을 기획한 미래위원회가 던지는 10가지 제안을 했다. 그중 '전문성이 강화된 학제간 융합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한다'를 보자.
"이번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외국의 유수 저널리즘 대학들은 이미 전통적 언론학 교육 과정을 넘어서 인문사회과학, 예술 관련 분야, 자연과학, 공학 등 여러 분야와 다양한 형태의 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 미래위원회는 언론학 관련 교과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융합의 움직임들이 혼란을 야기한다기보다 오히려 언론학의 중요성이 확대되는 기회로 판단한다."(288쪽)
미디어 교육과 연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실행이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후로도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답은 나와 있다. 지식의 융합을 실천하는 융합적 교육과 연구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노력이 언론정보학회에서는 전혀 발휘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비판언론학 정체성의 강화는 시대역행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자가 통화했다는 전임 회장 중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다소 다른 의견도 냈다. "윤석열 정부와 관련된 논란뿐 아니라 디지털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관계 설정 등에 대해서도 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로 언론학회 미래위원회가 제시한 바, 언론학 교육과정을 넘어서 여러 분야와 다양한 형태의 융합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자의 요약이다. "비판언론학은 언론·미디어를 사회적 구조·소유구조 등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론이다." 맞다. 그러나 이 관점을 신봉해서 신문사 소유구조를 제한하면 언론개혁이 되는 줄 알고 법 제정에 올인했던 적이 있다. 결과는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거시적 관점에 집착하는 움직임이 있다. 관점이라는 것은 여럿 중 하나의 시각이지 진리는 아니다.
김은규 회장의 기대와 의욕과는 다르게 비판언론학의 정체성 강화는 학회의 확장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비판언론학의 정체성을 폐기하라는 게 아니다. 비판언론학은 기본으로 하되 그건 하나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대의 변화에 유의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의 경계를 넘어 융합으로 확장해야 한다.
한국언론학회의 저서들 중 <커뮤니케이션의 확장-경계에서 미디어 읽기>는 그 취지에 가장 근접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뇌 과학, 진화론, 물리학의 복잡계와 네트워크 이론 등으로의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언론학 교육의 길을 묻다>에서 소개한 현업의 목소리도 공통적으로 한 분야 전문성을 초월한 융합으로 모아진 것을 확인해줬다. 김은규 회장은 비판언론학 정체성의 부담을 덜어내고 후속 연구자들의 성원을 받는 진정한 의미의 확장성을 위해 고민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