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떤 겨울 간식을 좋아하나요?"
첫째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얼마 후 있을 유치원 꼬마기자 발표 주제인 '겨울간식'을 연습하는 중이다.
"엄마는 어떤 겨울간식이 좋아요?"라고 해맑게 질문하는 아이의 물음에, 나는 주저없이 "붕어빵"이라고 대답했다. 붕어빵의 참맛을 모르는 아이는 "그거 맛없어,나는 옥수수가 제일 좋아"라고 웃으며 응수했다.
길거리에 하나둘씩 보이는 붕어빵 점포들. 붕어빵은 매해 알람시계처럼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나는 이시기가 되면 천원짜리를 총알처럼 품고 다니며, 사냥하듯 주황색의 붕어빵 점포를 찾는다.
그러다 시야에 사냥감이 포착되면 주저없이 그곳으로 뛰어들어간다. 그 안에서 갓구워져 나온 붕어빵을 한입 베어 따뜻달달한 팥소가 입안으로 퍼지면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어렸을 적 우리 아빠는 퇴근길 양손 가득 두둑히 붕어빵이 담긴 갈색봉지를 안고 들어와 우리에게 겨울이 왔음을 알렸다. 그 당시 천원에 5개 ,가끔 서비스로 한개를 더넣어주시던 붕어빵 사장님의 두둑한 인심으로 우리는 저녁대신 붕어빵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더 이상 아빠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사먹을 수 있게 된 중학생 무렵, 붕어빵은 팥 대신 슈크림을 품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갓구운 슈크림 붕어빵을 한입 베면 터지듯 흘러나오는 뜨겁고 달달진득한 노란색의 크림. 그 크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온몸을 휘감을때면 그날 본 한자시험 60점은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언젠가 붕어빵은 따스한 위로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20대의 어느날 6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마침표를 찍은 후, 버스를 기다리며 마주한 붕어빵 가게, 사무치는 외로움에 마법처럼 이끌려 들어간 그곳엔, 동그랗고 순한 눈으로 나를 따스히 바라봐주던 붕어빵들이 있었다. 순간 나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이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 그들의 온기에 기대어 젖은 눈으로 추위를 헤치며 걸었던 아련한 기억도 있다.
세월이 흘러 그 추억 속 붕어빵은 조금 희귀한 겨울 간식이 되었다. 맘카페에서 붕어빵 가게를 수소문하는 글이 보이고, 어쩌다 붕어빵 사진이 올라오면 수십개의 댓글이 한꺼번에 달리곤 했다. 집 근처 붕어빵가게가 있는 곳은 '붕세권'이라 불리며 주민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수많은 겨울 간식 중 붕어빵에 우리는 왜그리도 열광하는 걸까? 붕어빵은 호떡,호두과자,오뎅 등과 달리 겨울에만 맛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겨울이 가기전에 부지런히 붕어빵을 사먹으며 추운 겨울을 버티어낸다.
붕어빵 굽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1천 원을 내고 마치 뽑기하는 기분으로 틀에 넣어 구워지는 붕어빵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팥소가 많이 들어간 저 붕어빵이 내 손에 들어오길 마음 속으로 바라며. 그러다 손에 들어온 갓구운 붕어빵을 한입 베어 터져나오는 팥소에 혀가 몸둘 바를 모를때 희열을 느끼곤 한다.
또한 붕어빵은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 천원짜리 한장이면 길거리에서 넉넉히 사먹을 수 있었다. 허기진 뱃속 뿐 아니라 마음까지 풍족하게 해주던 붕어빵을 한입 베물었을 때 느끼는 고유의 맛은 마음 깊숙이 숨겨져있던 추억을 꺼내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누군가에겐 특별한 이 붕어빵이 매해 인상되는 가격으로 영영 추억의 뒤안길로 물러날까 두렵다. 작년까지만 해도 3개에 1천 원. 오른 물가와 추위를 버티며 장사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천원에 두 개'를 내걸고 찾아온 올해의 붕어빵 가게. 갑작스레 오른 가격의 붕어빵을 마주한 사람들은 뜨악했다. 천원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던 추억의 붕어빵에게 살짝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으리라.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물가의 고공행진과 더불어 밀가루, 팥, 기름값의 인상으로 붕어빵 가격 인상 또한 불가피하다고 한다. 한 커뮤니티에는 붕어빵 아르바이트를 월급 300만 원을 내세우며 구한다는 웃픈 글도 올라왔다. 이러한 연유때문인지 얼마전 까지 집근처에 몇개씩 보이던 붕어빵 집도 어느새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코로나 영향과 고물가에 가성비가 떨어진 탓에 사람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먹거리의 다양화와 고급화도 붕어빵을 예전처럼 찾지 않는 세태에 한몫하고 있다. 크로플, 휘낭시에, 케익 등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디저트들. 그나마 가격면에서 우위를 점하던 붕어빵은 이제 그들을 대적할 힘도 약해졌다. 해마다 아빠의 양손 가득 겨울을 알리던 붕어빵, 몸도 마음도 시린 학창시절의 나를 포근히 안아주던 그 추억의 빵이 고물가와 급변하는 디저트 시장의 냉혹한 현실 속에 힘없이 사라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온다.
얼마전, 마트에 가는 길에 작년에도 있던 붕어빵 점포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떨리는 손으로 천원을 내밀며 붕어빵을 주문했다. 붕어빵이 구워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올해도 나오셨네요, 요즘 붕어빵 잘 팔려요?"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는 한숨과 함께 "내가 여기서 3년째인데 올해가 제일 안팔려, 다들 비싸다고 투덜대는 경우도 많고, 물가가 올라서 이렇게 안 팔면 우리도 남는게 없어, 조만간 나도 접으려고 해"라고 토해내듯 말하며 내게 붕어빵 봉지를 안겼다.
예전과는 달리 봉지의 두둑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온기는 여전했다. 할머니께 "장사접지 마세요, 제가 열심히 사러올게요"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다 목구멍으로 꾹 삼켰다.
돌아가는 길, 봉지에 손을 뻗어 붕어빵을 한입 베었다. "그래 이 맛이야." 붕어빵만이 내는 고유한 맛은 머릿속에 '탁' 하니 불을 켜 기억 저편에 숨겨둔 추억들을 한순간에 불러모았다. 나는 가슴이 저릿해져옴을 느끼는 동시에 당장 내년에는 이맛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길거리 붕어빵의 맛을 각인시키려 천천히 꼭꼭 씹어삼켰다.
그러다 문득 붕어빵의 참맛을 모르는 아이에게 얼른 이 맛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교과서 속 사진과 함께 추억의 겨울간식으로만 붕어빵을 접하게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나는 남은 붕어빵 하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