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의 작은 공연장(플렛폼-엘)에서 해방과 냉전 그리고 제주4.3과 분단, 반공과 독재라는 성찰 없는 한반도 역사에서 죽어간 영령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공연이 있었다.
<더 필드, 밝히지 않은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공연된 작품은 1949년 1월 제주도 구좌읍 동복리에서 토벌대(군인과 경찰)에 집단 학살된 136명과 4.3에 억울하게 죽은 영령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자 함이었다.
일본과 북한, 남한에서 가야금을 배운 문양숙씨의 연주와 경기무가의 대표 소리꾼 최수정씨의 소리로 제주큰굿보존회(국가무형문화재 2021) 서순실 심방의 연유닦음과 영계울림이 정원기씨의 작곡으로 살아나 망자들의 억울함을 풀어냈다.
노마드가 제작하고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한 이번 공연은 서울에서 풀어낸 작품으로 수도권 유가족들도 참여해 눈물을 훔쳤다.
제주4.3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작곡가 정원기는 지난 19년부터 4.3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제주의 무제(巫祭)를 통해 분단과 반공이라는 아픔에서 조부모의 역사를 이해하고 '인간 존엄의 보편적 가치'가 무너지는 공통점을 무가 소리와 현대 음악으로 재창조하여 21세기 현대 사회에 고발하고자 한 것이다.
작곡가 정원기는 "통탄하고 개탄할 역사 속에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의미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갈등과 정신적 충격 등을 직면하고 예술작품으로 공표하는 과정을 통해 발현된다"며 "망자들의 애도의 일이 내 작품을 듣는 모든 이들을 보편적으로 감동을 시키지는 않겠지만 진솔한 공감과 소통으로 관계 맺는 '우리'를 기대한다"고 공연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원기 작곡가는 제주4.3의 억울함을 해원하는 시왕맞이굿과 서순실 심방의 연유닦음을 창작 주제로 2019년부터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해방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무너진 '인간 존엄의 보편적 가치'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가는 지난 여름에 학살의 현장이자 제주민들의 피신처였던 선흘 목시묵굴, 시오름 알 주둔소, 잃어버린 영남마을, 40여 년 동안 갇혀 있던 다랑쉬굴 등을 걸으며 느낀 감정을 공연에 맞춰 영상을 결합시켜 청각과 시각의 작품으로 연출했다.
서강대 종교학과 김성례 명예교수는 "산 자의 고통은 죽은 자의 고통의 유산이다 그것은 죽은 자의 고통이 해원되지 않는 한, 산 자는 평안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라며 "굿 의례에서 심방이 전하는 4.3 이야기는 죽은 자의 영혼의 울음과 생존자의 증언을 병렬시킴으로서 4.3의 폭력성을 대화적으로 구성한다"며 이번 공연을 평가 했다.
무가 최수정이 뱉어낸 "이 세상을 떠나 난 / 산에도 가 죽여 불고 / 굴 안에도 간 죽여 불고 / 대창에 찔르고 돌로 모시고 / 온 몸에 불 붙이고"와 "나 부모 나 형제간 / 나 아기들 어디가 죽어신가 / 찾아 댕기당 생 목숨 죽고 / 이제나 올건가 저제나 올건가 / 재수 좋은 사람들은 시체 찾아다 묻어주고" 연유닦음에 대해 김성례 교수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처받고 고통 받는 죽은 자와 산자의 울음은 '폭동'이나 '항쟁' 혹은 '용서'나 '화해'의 언어로 정치적으로 담론화되기 이전의 언어이며, 피를 흘리고 있는 '고통받고 있는 몸'이다. 잡초처럼 칼에 의해 베어진 '고통받고 있는 몸'은 죽은 자의 몸이면서 동시에 산 자의 몸으로 (빙의된 심방의 몸) 굿에서 가시화 된다."
이번 무제(巫祭)의 공연으로 4.3당시 희생된 영혼들의 원초적 영계울림의 소리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