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 문턱이면 전국의 많은 열아홉 살 아이들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한 시험을 치른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고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취업 시험이나 면접을 치른다.
엄청난 노력을 했든, 설렁설렁 하는 시늉만 했든 발표가 나오기까지 모두가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영광의 두 글자, 합격 혹은 세 글자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평가된다. 어떤 시험이라도 완벽하게 한 사람의 능력이나 잠재력, 노력을 헤아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글자 수로 그 사람을 평가하곤 한다.
본인이 원하는 점수, 기대했던 대학, 꿈꾸던 직장이라는 결과는 정말 축하한다. 흘린 땀과 눈물을 보상 받은 것이니 마음껏 기뻐하되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하길 바란다.
불합격을 받고 기가 죽은 많은 아이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이 시련을 약으로 삼아, 더 강한 사람, 더 참을성 있는 사람, 더욱 너그러운 사람이 될 기회를 얻은 것을.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길고 긴 마라톤 중간에 한 번 넘어진 것일 뿐이다. 잠깐 숨 고르고 툭툭 털어내고 다시 달리면 된다. 천천히 걸어가면 또 어떤가?
남에게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첫 취업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아들을 둔 엄마니까. 이렇게 큰 파도를 겪어 본 적이 없어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아들에게, 또 그와 비슷한 환경에 처럼 내 자식 같은 다른 많은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이 편지를 띄운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에게.
당연히 합격일 거라 생각하고 면접 준비 중이어서 불합격이란 충격이 컸을 거야. 엄마가 이렇게 서운한데, 네 마음은 얼마나 속상할지... 가늠이 안 된다. 하지만 엄마는 너의 불합격을 축하한다. 무슨 소리냐고? 들어봐.
너는 스스로 선택해서 마이스터고에 진학했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해 왔잖아. 자격증을 7개나 취득했고,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밴드부 활동도 하고 주말에는 엄청 바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고자 마음 먹은 것,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아들이 정말 대견했단다.
하지만 늘 자신감이 넘치고 거침없는 모습이 한편 걱정도 되었어. 네가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어쩌나 싶어서. 엄마가 살아보니 세상 일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것도 많더라.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뒤따르지 않을 때고 있고, 내가 잘한다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거든.
물론 네가 실패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 자격증 필기시험을 1점 차이로 아깝게 떨어진 적도 있었고, 설마 이런 게 시험에 나올까 하며 건너 뛴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기도 했겠지. 알바하면서 실수해서 사장님께 혼나기도 하고, 네 잘못도 아닌데 손님에게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봤잖아. 그 때마다 화가 나고 좌절도 했겠지만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니었지? 다 이겨낼 수 있었잖니?
취업 불합격은 지금까지 경험한 실패들보다 훨씬 더 큰 충격임에 틀림없어. 그렇지만 이번에도 너는 씩씩하게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거야. 잠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거니 일어서면 돼.
아들아, 엄마는 시련이 너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고 확신한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지만, 넌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 승승장구만 하는 인생은 없을 뿐더러, 재미도 없잖아.
다이내믹한 성공 스토리를 위한 이번 실패를 축하한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더 발전할 너의 앞날을 응원한다. 입 얼얼한 매운 떡볶이 먹으면서 다음 도전을 준비해 보자꾸나.
너보다 더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P.S. 엄마의 마음과 꼭 같은 시 한 편 보낸다.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 이철환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를 흔드는 이유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