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까요. 무연고 사망자라고 전부 무연(無緣, 인연이 없음)의 삶을 산 게 아니라는 것도, 이들의 죽음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요."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단체 <나눔과나눔>에서 일하는 김민석 팀장의 말이다. 무연고 사망자란 장례를 치를 연고자가 없거나(혹은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한 사망자를 말한다.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서비스의 일환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공영장례'라 부른다. 서울시 공영장례는 반나절이면 끝이 난다. 서울시립승화원에 빈소를 마련해 발인제를 지내고, 이후 운구와 화장이 이루어진다.
<나눔과나눔>은 11년째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다. 고인의 생전 모습과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고, 주변인에게 부고를 보내며 영정 사진을 제작한다.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 제정으로 공영장례가 공적 영역으로 들어온 2018년부터는 서울시와 협업해 상담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이 죽으면 공영장례의 대상이 되는지, 혼자 사는 이웃의 마지막을 어떻게 배웅해야 하는지 등 무연고 사망과 공영장례가 궁금한 이들과 상담을 나눈다. 시민뿐만 아니라 공영장례 업무를 담당하는 구청 공무원들과도 상담한다. 서울시 공영장례 업무 매뉴얼도 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공영장례만큼은 지방자치단체보다 잘 아는 전문가인 셈이다.
궁금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10년 넘게 해오고 있는지. 생전 친밀했던 사이도 아니고 죽고 나서야 처음 알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왜 기록하는지. 왜 무연고 사망자를 조명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는지. 지난 11월 11일과 12월 12일, <나눔과나눔>의 김민석 팀장과 두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무연고'라는 단어 안에 가려진 사실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가려진 사실이란 연고자가 있는 무연고 사망자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지원 단체의 목표
<나눔과나눔>의 활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는 "돈이 없어 발인을 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보며 무연고 사망자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장례를 치를 수 없을 만큼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서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망할 경우 최대 80만 원의 장제급여가 지급되지만 몇백만 원에 달하는 장례 비용을 부담하기는 역부족이다.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7명이 연고자가 있는 경우예요. 연고자가 참석하는 장례가 전체 공영장례의 40% 정도고요. 연고자가 없는 경우와 시간이 안 맞아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보면 참석률이 굉장히 높은 거죠."
무연고 안에 가려진 사실은 재정적 어려움뿐만이 아니다. 김 팀장은 자신 역시 "무연고 사망자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16항에 따르면 배우자·자녀·부모·형제자매 등 혈연관계에 있는 자만이 연고자의 의무를 갖는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형제자매보다 늦게 사망할 시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이렇게 연고자가 없는 경우 공영장례 후 서울시립승화원에 5년간 봉안(납골)된다. 장례를 치를 돈이 있더라도, 평소 삼일장을 치르거나 수목장을 하고 싶었더라도 반나절 만에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라는 말은 고인의 삶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해요. 모든 고인이 인연 없이 살다 간 게 아니라는 것과 고인을 애도하는 사별자들도 많았다는 것. 설령 고인의 삶이 외롭고 쓸쓸했다 하더라도 마지막만큼은 사회가 외롭게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단어 안에 가려져 있어요."
무연고 사망자의 사인·사망 장소 등을 찾고 연고자를 파악하는 과정은 소재지 관할 구청에서 진행한다. <나눔과나눔>은 구청 자료와 함께 공영장례 참석자들에게 들은 걸 토대로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무연고 사망자의 이야기를 수년째 기록하고 있다. 장례가 다 끝난 후에 혹여 찾아올지도 모르는 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또, 무연고 사망자 정책 마련을 위한 제안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 이야기 안에는 촉망받는 대학교수였지만 독신이기에 공영장례가 치러진 이도, 사실혼 배우자가 있지만 연고자로 인정받지 못해 공영장례가 치러진 이도,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빠듯한 살림이기에 가족을 공영장례로 보내야 했던 이도 담겨있다. 기록되지 않았다면 무연고 사망자라는 명칭 아래 안타깝게만 여겨졌을 수도 있는 이들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 그래야 변할 테니까요"
<나눔과나눔>은 30년 뒤 사라진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다. 30년 후에는 자신들과 같은 비영리단체가 나서지 않더라도 돈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는 일이 없고, 연고자 범위가 확대되는 등 장례 제도 역시 개선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011년에 단체가 생겼으니 이제 19년이 남았다. 오늘도 4명의 공영장례가 치러졌고, 4명의 이야기가 기록됐다.
"누군가는 반드시 (무연고 사망자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내 주변의, 혹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럼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제도가 변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