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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 ⓒ 윤성효
 
노령에 할 일이 있고 찾는 사람(곳)이 많으면 축복일 터이다. 젊어서 헛살지 않았음의 증좌이기도 할 것이다. 73세이던 2007년 3월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고, 4월 강원대학, 10월에는 모교인 전북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를 맡았다. 이 해에는 상복이 있어서 임창순 학술상(4월)과 단재 신채호 학술상(5월)을 잇달아 받았다. 

해가 바뀌어 2008년 4월에는 일본 와세다대학 초청으로 〈변호사 체험을 통해 본 한국의 민주화〉란 주제의 특강을 하였다. 일본의 많은 지인과 학생들이 참석하고 일본 언론에서도 크게 관심을 보였다. 

이 해 2월에 그동안 준비해온 <법창으로 보는 세계명작>이 범우사에서 출간되었다. 변호사 초년 시절 선배 변호사가 발행하는 법률 월간지 <법정>에 동명의 주제로 연재했던 것을 보완하여, 독서잡지 <책과 인생>에 재록하고 이번에 다시 '범우문고 261'로 간행한 것이다. 

목차에서 그의 폭넓은 독서범위와 문학적 조예를 살피게 한다.

△ 사형수 최후의 날- 빅토르 위고
△ 적과 흑 - 스탕달
△ 검찰관 - 바실리예비치 고골리
△ 주홍글씨 - 너대니얼 호손
△ 레미제라블 - 빅토르 위고
△ 죄와 벌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 인형의 집 - 헨리 입센
△ 옥중기 - 오스카 와일드
△ 심판 - 프란츠 로렌스
△ 이방인- 알베르 카뮈
△ 선택된 인간- 토마스 만

여기 소개하는 작품들은 이른바 세계 명작의 반열에서도 상석을 차지하는 소설과 희곡들로서, 나이, 직업, 전공을 떠나서 누구나 알아두어야 할 불후(不朽)의 고전들이다.

나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달리 명작을 두루 섭렵한 것도 아니어서, 이런 책을 쓰기에는 역부족인 사람이다. 거기에다 문학이라는 동네와 거리감이 있는 법조인이어서, 책 제호에도 드러나 있듯이 '법창' 즉 법조인의 시각으로 작품을 이해하다보니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 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다. 다만, 명작 순례의 지름길을 찾아내어 시간 절약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자기변명을 삼고자 한다. (주석 1)

젊은 시절 사형수 관련 <어떤 조사>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그는 사형제도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는 빅토르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 한 부분을 뽑았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했다.

"사형!……그 순간부터 세상사람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은 칸막이 같은 것을 느끼게 되고, 내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이미 그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그 환하게 햇빛이 스며드는 창들, 그 맑은 하늘, 저 귀여운 꽃……이 모든 것이 수의(檖衣)처럼 창백하게 보였다. 사형수! 그래서 안 될 게 또 뭐냐?"

"인간이란 모두 집행기일이 확정되지 않은 사형수들이다."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내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장수를 누릴 셈으로 살다가 덧없이 죽어 갈 것인가! 아직 젊고 건강하여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어느 날 그레이브 광장에서 내 목이 달아나는 꼴을 구경할 속셈으로 왔다가 오히려 나보다도 먼저 죽어버릴 자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절망과 야유로 범벅이 된 이런 토청(吐請)도 있다.……죽음이 임박한 사색의 조서 속에,   끊임없이 커지는 고뇌의 진전 속에, 사형수에 대한 하나의 지적검시기록(知的檢屍記錄) 속에 사형을 선고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교훈이 없을까?

필경 그러한 기록을 읽고 나면 그들도 산 사람의 머리를 '심판의 저울'에 걸게 될 때 쫌 더 신중하게 될 것이 아닌가…….(주석 2)


주석
1> 한승헌,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법창으로 보는 세계명작>, 8쪽, 범우사, 2008.
2> 앞의 책, 14~1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승헌변호사평전#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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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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