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김삼웅의 서평이다.
젊은 시절의 비판정신과 이상주의는 연륜의 타성에 밀리어 보수적이 되기 쉬운 것이 인생의 행로일 터인데, 한 변호사는 청ㆍ장ㆍ노가 한결같다. 연치는 늘어나도 정신은 항상 싱싱한, 그래서 필력과 활동에서 영원한 현역, 영원한 청춘임을 보여준다. 우리 주위에는 심장이 뜨겁고 영혼이 맑은, 그리고 백세청춘의 분들이 더러 있다. 함석헌 선생이 그랬고 산민 선생이 그렇다.
다산 정약용이 "시대를 가슴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으면 글(시)이 아니다"라고 갈파했듯이, 한 변호사의 글은 예나 이제나 여기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의 많은 저서는 오욕의 시대를 가슴 아파하고 현실의 모순에 분개하면서 정론과 직필로써 어둠의 장막을 헤쳐왔다. 글에는 뼈가 있고 유모어와 재치가 넘치지만 결코 음풍농월의 글은 쓰지 않았다. 한 변호사의 펜은 양날의 칼이다. 한쪽은 불의를 베는 비수이고, 다른 쪽은 정의를 지키는 보검이다.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수의 법조인과 지식인들이 재물과 허명을 좇으며 시류에 영합하고 보신에 급급할 때에 그는 타고난 반골정신과 탐구정신으로 법전은 물론 문ㆍ사ㆍ철을 넘나드는 필봉으로 광기의 권력에 맞서왔다.
바이런이 "사람은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다"고 했듯이, 그는 기소장과 판결문이 동일한 폭압의 시대에 패소가 예정돼 있었음에도 학생ㆍ민주인사들의 변론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론을 의뢰하였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질 줄 알면서도 변론을 맡고 이를 맡긴 경우는 드레퓌스사건의 에밀 졸라 이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법조55년 기념선집'으로 묶인 4권의 책은 상당히 긴 시간의 퇴적층에서도 생명력을 갖고 살아 있는 글들이다. 한 변호사의 많은 저서 중에서 법조와 관련하여 펴낸 세 권과, 일본에서 발간한 <한일현대사 - 평화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는, 다시 역류하는 법치주의와 한일관계에서 보아 대단히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간행위원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이번에 새로운 장정으로 묶이거나 신고 또는 강연록을 풀어서 모은 저서는 일본 닛폰효론(일본평론)의 <한일현대사와 평화ㆍ민주주의를 생각한다>와 <권력과 필화>, <피고인이 된 변호사>,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는 4권이다. 오래 전에 한 변호사가 쓴 글과 근년의 연설록들을 모아 새롭게 단장하였다.
4권의 저서를 짧은 시간 안에 서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제가 그럴 위치나 역량에 이르지도 못한다. 하여 저서의 전편에 내장된 한 변호사의 글쓰기 정신을 찾아서 면책하고자 한다.
'문체(文體)'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육체가 동반하지 않은 글은 '글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문사나 지사는 될 수 없다. 단재 신채호와 춘원 이광수, 위당 정인보와 육당 최남선의 글이 다른 것은 글과 인이 일체이고, 또 일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변호사의 글은 '문(文)과 인(人)'의 일체이기에 생명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고 공감하게 된다. 특히 무거운 주제의 글에서도 적절하게 인용하는 고사와 비유는 쉽게 읽히고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포복절도할 때도 적지않다.
유신의 광기가 칼춤을 추던 1977년 12월호 <기독교사상>에는 권두논문으로 한 변호사의 <법정신과 인권사상>이 실렸다. 악법을 만들고는 준법을 강요하여 인권이 짓밟히던 삼엄한 시대였다. 이 글은 "극복해야 할 '법치'의 허상"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반인권의 유신정권을 준열하게 비판하면서 최고권력자의 책임을 묻는 한 사례를 들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아주 훌륭한 재판관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명판결을 해서 훌륭한 재판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나라 때 이야기인데 그는 부하가 조사한 조서만 보고 유죄 판결을 하여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그 뒤에 알고보니 전혀 터무니없는 오판이었습니다. 억울한 사람을 죽인 책임을 느껴 문공(文公) 왕에게 찾아가 "제가 억울한 사람을 죽였으니 저를 죽여주십시오"했습니다. 그때 문공이 "자네가 잘못한 건가, 자네 부하가 잘못해서 그렇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닙니다, 나는 결코 그러한 판결권을 부하에게 준 적도 없고 사법관으로서 나라에서 받은 녹(祿)을 부하에게 나누어 준 적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저의 책임입니다"라고 하니까 왕은 "그러면 자네를 그 자리에 임명한 나도 책임이 있으니 나도 죽어야겠네"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인용을 생략한다. 부하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고위관리, 정작 임명권자는 책임을 외면한 채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묻거나, 그마져도 덮으려는 무책임정치의 위정자를 고전을 통해 고발한 것이다. 오늘에도 현실감이 넘치는 것은 잘 쓰는 글이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인 것인지, 세상이 되풀이 돼서인지 모르겠다.
한 변호사의 글은 법률가의 절제된 언어속에서 문학적인 넉넉함과 사가의 필력을 도처에서 발견하게 된다. 법ㆍ문ㆍ사의 좀처럼 어울리기 어려운 분야를 섭렵, 융합한 때문이다. <바보예찬>이라는 수필의 한 대목이다.
보통의 바보들은 그 바보스러움으로 인한 피해가 자기 일신에 되미치는 것임에 반하여, 세도가나 지식인들의 우매함은 사회와 역사에 큰 피해를 준다. 권력을 휘두르는 자의 횡포가 그러하고, 곡학아세하는 학기(學妓)들의 놀음이 그러하다. 한 시대의 양심이 되어야 할 지식인들이 자기사명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기껏 현학(衒學)의 늪에서 정신적 마스터베이스션이나 하는 꼴은 고급 바보의 대표적 모습일 것이다.
오래 전에 발표한 이 글에서는 5, 60년대 함석헌과 조지훈의 결기가 묻어난다. 권력의 횡포와 학기들의 곡학아세가 날뛰는 오늘에 더욱 반추되는 대목이다.
권력의 횡포에 맞선 17건의 필화사건과 이 사건들에 대한 변론, 문학과 필화, 표현의 자유와 권력을 함께 다룬 문학동네의 <권력과 필화>는 우리 사회에 먹구름이 밀려오면서 다시 필화사건(안도현 시인사건)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값지다. 독재 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필화사건을 도맡다시피하여 변론하고 직접 필화를 겪기도 하였기 때문에 내용에 더욱 생생함을 보여준다. 이 책에도 실린 <권력과 지식인>에서 저자가 쓴 한 대목은 오늘에도 유효한 메시지다.
무릇 지식인은 한 시대의 고민을 남보다 먼저 알아야 하며, 상황의 위험신호를 앞장서서 알려야 할 사명을 갖는다. 그런 사명에 충실하다보면 위정자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학자나 문인들이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것조차도 본문을 망각한 정치활동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일은 몇 번 고쳐 생각해보아도 지나친 노릇이다.
범우사에서 나온 <피고인이 된 변호사>는 제호부터가 불온하다.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법조인마저 없었다면 한국사회는 오래 전에 질식사를 했을 지 모른다. 한 변호사는 숨막히던 시절 변호사석에서 피고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땅의 양심세력을 변호했던 불온한 반체제지식인이었다. 돌이켜보면 사법질서가 무너지던 시대에 피고인이 된 불온한 변호사라도 없었다면 우리의 사법정의와 사법적 양심을 어디서 찾게 됐을지 알지 못한다.
한 변호사의 <피고인이 된 변호사>는 자전적 에세이라고 할만큼 살아온 역정과 바깥 세상의 비망록, 오늘에 다시 돌아보는 사유의 편독이다. 총 72편의 에세이는 몽테뉴 수상록이 생각날만큼 때로는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이며 세사를 보는 안목을 넓혀준다. 편편에 따르는 유모어는 과외의 소득이기도하다.
1991년에 쓴 <시대의 격랑 속에서>의 마지막 대목은 다시 읽어도 신민 선생의 올곧게 사는 삶의 지침으로 다가온다.
자랑스럽게는 못 살망정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는 것. 지식인의 도리는 다하지 못할지라도 학기(學妓)는 되지 말자는 것 - 이런 자계(自戒)는 여전히 유효하다.
부질없는 사족이지만 에릭 홉스봄이 그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 적은 경구를 한 변호사님께 전하면서 연작(燕雀)의 자리를 모면하고자 한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맞서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저는 여기서 '무기'를 펜으로 바꿔서 한 변호사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주석 5)
주석
5> 김삼웅, 앞의 자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