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위해 샤워를 하려고 하자 문을 열어둔 상태에서 씻으라고 종용했습니다. 남자 수사관이 많은 상황에서 수치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용변을 본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수사관이 들어오는 등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아무개(48)씨가 기억을 떠올린 지난 달 9일 상황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공안기관 수사관들에 의해 모든 것을 통제받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국가정보원·경찰은 이날 이씨의 남편인 황아무개(60)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압수수색 영장을 내세워 강제 수사에 나섰다.
영장에 기재된 대상은 황씨의 신체, 주거지, 차량 등이었지만, 수사관들은 배우자인 자신까지 감시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그는 진정서에서 "국정원이라는 권위를 갖고 명령하는 수사관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영장주의에 반하는 조사, 심각한 문제"
결국 이씨는 한 달여 만인 1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공안탄압 저지 경남대책위의 도움을 받아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인권사무소에 인권침해 조사규명을 촉구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이씨를 대리해 진정서 제출에 참여한 민변 경남지부의 박미혜 변호사는 "영장을 집행할 수는 있지만, 대상자로 한정해야 한다"며 "그 범위가 다른 사람의 권리까지 침해하면서 진행됐다는 게 이번 진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영장주의는 사실상 인권 논란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 형사소송법은 수사 중인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해 압수수색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도 영장을 발부하면서 이 부분을 분명히하고 있다. 대법원은 관련 재판에서 여러 번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고, 불복 신청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를 언급한 박 변호사는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가족들을 상대로 마구잡이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며 "이 부분을 놓고 인권위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해야 한다"라고 요청했다.
국가인권위는 내용을 검토해 조사 여부를 통보하겠단 방침이다. 국가인권위 규칙에 따르면 사건처리기한은 진정을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다. 부산사무소 관계자는 "국정원의 경우는 인권위에서 조사권한이 있고, 경찰은 부산사무소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할지 협의가 필요하다"며 "그 결과를 추후 전하겠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인권위 진정에 대해 일단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하루 전 전화통화에서 "처음 듣는 말이다. 확인해 보겠다"라 말한 데 이어 이날도 "아직 확인을 해봐야 한다"라고 같은 대화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인권위 진정서를 접수하게 되면 사실 파악을 하지 않겠느냐"고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른바 '민중자통전위'라고 이름붙인 공안사건의 인권침해 논란은 줄줄이 인권위를 향하고 있다. 당시 국정원·경찰은 창원지법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황씨 등 진보·통일인사 6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는데 이 중엔 말기암 투병 환자까지 포함돼 파장을 낳았다.
제주에서 압색을 받은 강은주 4‧3민족통일학교 대표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이달 초 인권위 제주출장소에 진정서를 접수하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장소를 떠나는 것을 막고, 병원 후송마저 제지했다", "살날이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정인의 생명권, 건강권을 침해했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