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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발생한 힐즈버러 참사와 2022년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닮아 있다. 공권력의 무책임과 무능함이 사안을 키웠고,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을 놓쳤다. 축구장을 방문했을 뿐인, 이태원을 방문했을 뿐인 무고한 목숨이 압사당했다는 점도 같다. 희생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도 닿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의원 차원의 노력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그 정점에 '힐스버러 법'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두 차례에 걸쳐 힐스버러 법을 다룬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와 법이 무엇인지 돌아보기 위함이다.[편집자말]
 앤디 번햄 맨체스터 시장
앤디 번햄 맨체스터 시장 ⓒ https://hillsboroughlawnow.org/

"위선자!!!"

앤디 번햄, 2009년 당시 노동당 고든 브라운 총리 정부에서 문화언론체육부 장관이자 의원을 지냈던 그를 향해 관중 속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해는 힐즈버러 참사(1989년 발생한 축구 경기장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20주년 되던 때였다. 매해 리버풀 구장에서 열리던 힐즈버러 추모식에 참석한 그는 연설을 이제 막 시작할 참이었다.

3만 명의 관중이 번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설을 시작한 지 1분 45초 만에 터져 나온 '위선자' 외침 뒤 야유가 이어졌다. 번햄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이내 관중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OK'라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관련 영상).

관중들은 "96(당시 힐즈버러 참사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 이후 병석에 있던 1명이 숨져 총 사망자 수는 97명이 됐다)을 위한 정의"를 외쳤다.

6분 20초의 짧은 연설이 10여 차례 박수와 고함, 야유로 중단됐다. 모든 연설을 끝내고 번햄은 관중석을 바라보지 못한 채 자리로 돌아갔다. 야유로 점철됐던 그 날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것을 결심했다"고, 번햄은 회고했다.

10살 사망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한 영국 경찰

직후 번햄은 브라운 총리를 설득했다. '정부 문서 30년 비공개' 원칙을 '20년'으로 바꿔가며 힐즈버러 관련 문서 일체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치와 관련이 없는 인파관리 전문가, 범죄학 전문가, 정보추적조사 전문가, 탐사전문 기자, 의사, 인권변호사 등으로 꾸려진 독립조사위원회(아래 위원회)가 출범했다. 2010년의 일이다.

위원회는 45만 쪽에 달하는 서류를 제출받았다. 그리고 이를 모두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집단지성을 통한 대중 조사를 실시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서류가 모두 공개되자, 거짓말을 했던 증인들이 하나둘 씩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9개월 동안 조사가 이어졌다.

2012년 9월, 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395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조사를 통해 현장 경찰 164명이 작성한 현장 사고 보고서 중 116군데가 경찰 간부에 의해 수정됐음을 밝혀냈다. 참사 직후 현장 경찰관들이 제출한 증언을 검토한 뒤 경찰 지휘부에 불리한 내용은 삭제했음도 드러났다. 

힐즈버러 참사가 '만취한 폭도'의 짓이라 몰아가기 위해 최연소 사망자인 열 살 어린이를 포함해 모든 사망자를 대상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 검사를 했음도 밝혀졌다. 만취한 폭도, 과격한 축구 팬의 탓으로 사고의 원인을 돌리기 위해 조직적인 진실 은폐와 공작이 이뤄졌음을 증명해 낸 것이다. 또 현장 경찰 뿐 아니라 축구협회, 구단 등의 '중대한 직무유기로 인한 과실치사'가 참사의 원인임을 짚어냈다. 사고 발생 직후인 1990년 1월 나왔던 사건 조사 보고서의 결론 '술에 취한 리버풀 팬의 폭거 때문에 발생한 사고사'와는 정반대 결론이 도출됐다.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직후 앰뷸런스 40대가 출동했지만 단 1대만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이 진입을 막은 탓이다. 결국 참사 생존자들이 광고판 등을 들것 삼아 환자를 밖으로 이송했다. 그렇게 병원으로 실려 간 사람은 12명. 보고서는 제 때 적합한 치료가 진행됐다면 '41명은 살릴 수 있었다'고 결론 지었다.

2016년 4월 26일,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재판 결과가 나왔다. 법원 배심원단은 96명의 사람이 '중대한 직무유기(grossly negligent failures)로 인해 불법적으로 살해됐다(unlawfully killed)'고 결론 내렸다.

7년 뒤, '위선자'는 진실을 알린 주역이 되다
 
 힐스버러 추모공간이 리버풀FC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에 마련돼있다.
힐스버러 추모공간이 리버풀FC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에 마련돼있다. ⓒ Ken Biggs
 
그리고, 번햄은 하루 뒤인 그 해 4월 27일 하원 연단에 섰다. 11분 14초 동안 연설을 했다.

"마침내 96명, 그들의 가족, 리버풀 서포터, 도시 전체를 위한 정의가 실현됐습니다. 책임자들은 27년간의 은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명백한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경찰력은 힐즈버러로 피해 입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대신 자신을 보호해왔습니다. 그 경찰력과 언론이 공모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권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결함 있는 사법제도가 (그 배경에)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서 오늘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을 실망시켜왔는지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하원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응답했다. 7년 전 그는 '위선자'라고 비난받았지만, 자신의 다짐을 잊지 않았고 결국 7년 후 힐즈버러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게 한 주역이 됐다.

그러나 번햄의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2017년 3월, 노동당 하원 의원이던 번햄은 조사 및 수사 과정에서 공권력에 '진실을 말할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바로 힐즈버러 법이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해당 법 논의는 흐지부지 됐고, 2022년 현재까지도 법은 통과되지 못했다.

의회 논의가 지지부진하던 와중인 2019년 11월, 힐즈버러 경기장 안전 총책임자였던 경찰서장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이제 맨체스터 시장이 된 번햄은 "힐즈버러 법은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며 격분했다.
  
"모든 형태의 공개 조사 및 범죄 수사 과정에서 공직자에 '정직의 의무' 부여해야 하며, 무제한의 공적 지원을 받는 법률 대리·지원이 유족에게 지원돼야 하고, 참사 이후 고인의 가족을 위한 공익 대변인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힐즈버러법, 지금(hillsborough law Now)'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법 통과에 매진하고 있다. 

"힐즈버러 법은 이 나라의 다음 세기가 지난 세기와 다르고, 다시는 이런 사람들이 2등 시민으로 대우받는 상황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법정에서 평등해야 하며 그것이 지금 힐즈버러 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차기 집권을 노리고 있는 노동당은 '힐즈버러 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향해 여당 의원들이 2차 가해를 퍼붓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정치인이 아닐까.  

#힐즈버러 법#앤디 번햄#힐즈버러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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