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노령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하고 싶고 남기고 싶은 말이 많았다. 2014년 10월 13일부터 <경향신문>에 <의혹과 진실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를 45차례 매주 월요일 연재하였다.
'의혹과 진실'은 여운형 암살사건, 국회프락치사건, 진보당사건 등 6.25 전후 분단과정에서 생긴 주요 정치사건은 물론 한 변호사 자신이 맡았던 독재치하의 시국사건들, 그리고 날조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전두환ㆍ노태우 내란사건, 노무현대통령 탄핵심판 등 해방 이후 최근까지 한국현대사 안에 얼룩진 정치적 사건 17건의 진상을 재판을 중심으로 파헤친다.
연재에 앞서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번 연재에서 다룰 사건의 선정기준"을 물었다. "역사적 의미와 무게가 상대적으로 큰 사건, 언론보도나 학술연구 등 각종 논의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건, 그리고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정치적 복선 등 의혹이 폭발된 사건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골랐다."고 말했다.
특별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건은 무엇인가?
"진보당사건, 대통령 긴급조치사건, 전두환ㆍ노태우 반란사건 등이 역사에 큰 임팩트를 미쳤다고 볼 수 있지요. 그밖의 사건도 파장이나 충격이 컸고 정치적 의도로 연출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권력자가 검찰과 법원을 이용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조작과 엄폐를 판결로 추인해준 데 불과한 사례도 많았거든요."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사법부의 공과는 무엇일까요?
"압제가 심할수록 법관의 용기와 신념이 절실한데 우리 사법부는 그 반대였습니다. 재판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해야 할 사법부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더러는 시녀노릇을 했습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사태가 어느 정도 민주화되자 반사적으로 법원도 독립을 회복하지요. 그러나 자력이 아니라 법관들이 죄인으로 낙인찍고 징역보낸 그 피고인들의 고난과 투쟁의 결과로 사법권의 독립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지요. 물론 양심과 용기로 올바른 재판을 하다가 불이익을 입은 법관들이 소수나마 있었기에 참 다행이었죠. 정권이 보수화하고 민주적이지 못할수록 사법의 역할도 더욱 절실해집니다. 오늘의 법관들도 이 점을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연재에서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십니까?
"우리 국민은 엄청난 비극이나 충격적인 사건조차 빨리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이정도의 민주화된 사회를 이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수난과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특히 지난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읽어줬으면 합니다. 요즘 세대는 개인의 영역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있는 데 국가나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역사는 알고 깨달아야 주권자인 우리 국민이 정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격상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연재가 끝나고 부분적인 보완ㆍ수정을 거쳐 2016년 3월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란 제목으로 창비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출간을 맞아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변호인이었던 인혁당사건 여정남의 죽임에 대해 분개하면서 사형당한 8명 모두 2007년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이승을 떠난 그분들이 다시 돌아올 수는 없었다고 개탄하면서, 덧붙였다.
사법부가 불의에 눈 감고 정의를 외면하는 세상에서 변호인의 쓸모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잘못된 재판을 법정 밖으로 끌어내 동시대와 후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기록자로서, 증언자로서 자신의 책무라고 판단했다. (주석 2)
주석
1> <시대의 망각 막기 위해 '자판기 판결'의 진실을 말하겠다>, <경향신문>, 2014년 10월 6일치.
2> 한승헌, <기록자로서 내 노력이 국민 '망각방지'에 도움되길>, <경향신문>, 2016년 3월 26일치.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