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위치한 일본식 적산가옥에서 촬영한 한복 홍보 영상을 놓고 비판이 일자 주최측이 영상을 일단 비공개 처리했다. 이 영상은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가 제작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부산시 등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 알림이, 독도 지킴이로 불리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파장이 커졌다.
우리 한복 우수성 알리는 영상을 왜 여기서?
"왜 하필 한복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드는데 이곳에서 촬영을 한 이유가 뭘까요?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서 교수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한복 홍보 영상을 놓고 "답답하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달 부산튜브, 한복진흥센터, VISIT BUSAN 등에는 부산의 한 국가등록문화재가 배경이 된 '한복을 입은 부산'이라는 영상이 게시됐다. 문화체육관광부, 부산시가 후원하고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가 제작한 영상이다.
영상에서 서 교수가 문제로 삼은 것은 역사성과 촬영 장소였다.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이 적산가옥은 일제강점기인 1943년 지어진 2층짜리 일본식 목조 주택이다. 다다미방, 창호 문양 등 당시 형식이 유지되고 있고, 근대주택 건축사에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를 받아 정부가 2007년 7월 관리 대상으로 등재했다. 지금은 '문화공감 수정'이라는 관람공간 겸 카페로 운영된다.
적산가옥은 적들이 만든 재산을 일컫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지어져 해방 이후 정부에 귀속됐다가 일부는 일반인에게 팔려나갔다. 일제강점기 주택이라는 일종의 건축 용어이면서 과거의 쓰라린 역사가 담긴 정치·사회적 의미로 쓰인다.
이러한 곳을 한복 홍보 장소로 활용한 것에 대해 서 교수는 부적절하다고 봤다. 이 공간은 과거 일제의 부산철도청장 관사 시설이었고, 해방 이후 고급 요릿집(요정) 정란각으로 활용됐다. 현재 정문에는 '일본식 가옥'이라는 설명이 또렷이 적혀있다. 이같은 공간에서 우리 전통문화인 한복을 알리는 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 서 교수의 지적이다.
서 교수는 "중국은 한복을 자신의 전통문화로 편입시키려는 한복 공정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데, 어이없는 상황은 또 하나의 빌미만 제공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먼저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고 짚었다.
JTBC 보도를 시작으로 관련 기사가 쏟아지면서 부정적 여론도 커졌다. 누리꾼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획을 한 건가요?", "우리의 역사의 일부이겠지만, 훌륭한 한옥을 놔두고 꼭 여기에서 영상을 찍어야 했느냐"라고 날 선 의견을 잇달아 표시했다. "이런 것까지 트집을 잡느냐"는 반박도 있었지만,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면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까지 힘을 실으려던 의도가 퇴색한 셈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주최 측은 결국 해당 영상을 내리고 비공개 처리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14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여러 의견이 있어 내부 검토를 위해 영상을 비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명도 이어졌다. 이 관계자는 "인기 명소 11곳 중에 한 공간으로 들어갔고, 적산가옥 외에 다대포나 광안리, 감천문화마을, 임시수도 기념관, 범어사 등이 다 포함돼 있다"며 "어느 곳을 가든 한복이 다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영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관련 단체는 주최측 설명보다 서 교수의 지적과 누리꾼의 반응에 더 힘을 보탰다. 이종민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장은 "영화나 뮤직비디오 공간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한복의 우수성을 홍보한 장소로 활용한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깊이 있게 생각을 못했다면 돌아봐야 한다. 역사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좋은 영상 배경으로만 봐선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