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취재하려고 검찰 고위직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취재원을 위협한 혐의로 기소된 이동재 전 <채널A>기자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언론인 취재 윤리 위반의 정도를 볼 때 해고 사유가 되기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 정봉기, 배석 김성준·이진희)는 15일 오전 10시 이동재 전 기자가 <채널A>를 상대로 청구한 해고 무효 소송의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이동재)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2020년 11월 소송이 청구된 지 2년 1개월 만의 선고다.
재판부는 그 이유로 "신라젠 수사와 관련해 원고가 이철(전 VIK 대표)과 그 가족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 형기가 늘어날 뿐 아니라 가족도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며 "(또한)검찰 핵심 고위 관계자와 친분이 있어 추후 수사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플리바게닝이 가능한 것처럼 언급해서 취재 정보를 획득하고자 한 행위는 정당한 취재 윤리 범위를 벗어난 행위"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제보자 신뢰를 얻기 위한 행위라도 특정 검사와의 대화 내용을 허위로 작성한 녹취록을 제시하는 것도 정당한 취재라 인정하기 어렵다"며 "한국기자협회 실천요강 등은 기자들이 정보를 취득할 때 위계나 강압적 방법을 쓰지 않아야 하며 취재원을 접촉할 땐 예의를 지킬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 행위로 <채널A>가 방송국 승인이 철회될 수도 있는 조건부 재승인 처분을 받았고, 원고는 이 사건 후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은폐하는 여러 방안도 검토했다"며 "이에 대한 해고의 양정(징계 정도) 자체도 적정하다"고 밝혔다.
강요미수 혐의 1심 무죄 적극 항변했으나...
이 전 기자는 당시 취재 방식이 부적절하지 않았고 부적절한 언행도 없었으며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지도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수사나 재판에 불이익을 거론한 행위도 위협이나 강요로 볼 수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철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보도 등으로 널리 알려진데다 법조 출입기자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므로, 이를 언급했다고 해서 상대가 강요로 받아들인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 전 기자는 이철 전 대표에 대한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된 형사사건 1심 재판의 무죄 판결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16일 "검찰 제출 증거만으론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대표에게 실제 발생할 것으로 생각될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취재윤리를 어기려고 한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이지만, 언론 자유는 최후의 보루이기에 형벌로서 다스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요지를 설명하기 전 "취재 대상자와 그 가족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거론하고 검찰 고위 관계자와 친분을 내세워 검찰 영향력을 취재에 활용한 행위 자체, 그리고 녹취록을 가공한 행위 등이 취재 윤리 위반했는지가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었다"고 먼저 밝혔다. 때문에 "비록 원고의 (강요미수 혐의) 형사 재판에선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인정되지 않아 무죄 판결이 선고됐지만 취재 윤리 위반이 인정되기에 해고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15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검언유착 사건의 핵심은 일부 검찰 권력과 유착한 언론이 취재원에게 협박 및 회유라는 부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라며 "언론의 취재윤리 위반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신 사무처장은 "지난해 형사재판의 무죄 선고 이유는 검찰이 사건 초기 적극적 수사를 하지 않으면서 유력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취재윤리 위반은 명백하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론 강요미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었다"며 "당시 재판부는 '무죄판결이 피고인들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명심하라'며 '취재윤리 위반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질타한 바 있다"고 말했다.
"무혐의라고 사건이 무(無)가 될 수 없다"
이 사건은 신라젠 수사 개시 당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현 법무부장관)와 사건을 상의한 녹취록이 발견되면서 이른바 '검언유착'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녹취록에선 이 전 기자가 2020년 2월 13일 부산고검에 있던 한동훈 당시 차장검사를 만나 '취재목표는 유시민이며 관련해 이철 전 대표와 그 가족들을 취재하고 있다'며 상의한 내용이 확인됐다.
검찰은 그 해 8월 이 전 기자와 같은 팀 백아무개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하면서 당시 취재 기간인 2020년 1월 26일부터 3월 22일까지 이 전 기자와 한 장관이 카카오톡 문자 및 보이스톡, 전화 등으로 327회 연락을 나눴다고 밝혔다. 또 이 전 기자가 관련 내용을 백 기자에게 전하면서 "한동훈이 '일단 그래도 만나보고 나를 팔아'라고 말했다. '윤의 최측근이 했다' 이 정도는 내가 팔아도 될 것 같다" 등의 말을 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이와 관련 내용을 2020년 3월 31일 MBC가 보도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후 '검언유착' 논란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이 전 기자는 그 해 6월 <채널A>로부터 징계해고됐다. 민언련으로부터 강요미수 공범으로 고발된 한 장관은 지난 4월 증거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수사팀이 지난 22개월동안 (한 장관) 아이폰 포렌식 시도 외에 추가로 다른 증거를 입수하기 위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며 "무혐의로 종결되더라도, 사건 자체가 완전히 무(無)가 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이 전 기자에 대한 강요미수 혐의 2심 선고는 2023년 1월 19일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