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폐기한다고 공언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불거진 의료영리화, 의료공공성 후퇴 논란을 한사코 부인해왔지만, 끝내 민생의 최후 저지선인 건강보험을 공격하며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 발언과 관련된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은 지난 8일에 발표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빌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를 너무 많이 이용해서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도덕적해이' 빌런, 그리고 이주민 '무임승차자' 빌런 등을 상정하며 이들이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므로 정부가 이들을 이른바 '공정과 상식'의 이름으로 척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환자들과 이주민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축냈는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도덕적해이'라는 미신
보도자료는 도덕적해이가 문제라며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축소하고, 암 등 중증 희귀질환에 대한 산정특례 혜택 축소, 본인부담상한제 보장 축소를 이야기하고 있다. 축소가 예고된 이 정책들은 저조한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에 대해 급여항목을 확대하고, 비급여항목이 많고 장기간 투병하며 의료비부담이 큰 중증질환에 대해서라도 본인부담금을 완화하는 정책이었다.
그러니까 정부는 암 등 중증질환으로 투병하는 환자들과 재난적의료비에 처한 이들의 주머니까지 살뜰하게 털어보겠다고 집요한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그런데 정말 이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회원국 평균 80%에 비해 65.3%로 저조한 성적이다. 건강보험이 사람들을 얼마나 보호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지표인 재난적의료비 발생율도 7.6%로, OECD평균 5.4%에 비해 높다. 평범한 가정도 가족구성원 중 한 명이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순간, 가계파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한국 건강보험의 현실이다.
과잉의료는 도덕적해이가 아니라 상업적 의료행위가 만연하도록 방치한 제도의 문제이다. 한국의 의료체계에서는 의료행위 하나별로 수가가 책정된다.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할수록 의료기관은 더 많은 수익을 거두는 구조가 과잉의료를 조장하고 있다.
정부가 든 사례와 같이 극단적인 사례들도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극소수다. 극소수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하고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폐기하여 시민 대다수가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있지도 않은 빈대가 있다고 주장하며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한편 이번 보도자료에서 정부는 의료공공성 강화가 아니라 수가인상으로 필수의료를 확보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계획을 내놨다. 사실 정부의 속내는 도시괴담을 앞세워 복지를 긴축하고 민간보험사와 민간병원들을 중심으로 의료영리화의 야욕을 펼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애꿎은 초가삼간 태워서 의료영리화 세력들과 캠프파이어라도 하려는가.
'무임승차'라는 허깨비
무임승차자로 매도되고 있는 이주민들은 또 어떤가? 정부는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한다며 자격조건을 6개월 이상 체류시로 제한하고, 그 전까지는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지불하라고 한다. 이주민에 대한 지역가입자 보험료 책정기준은 재산규모를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주민들 소득에 비해 더 높게 부과되고 있다. 게다가 미납시 체류자격 상실의 위험이 있으니 이번 부과체계 개편은 이주민들에게는 실로 위협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주민들은 정부가 보도자료 속에 그려놓은 '빌런'이 아니라, 오히려 빈틈 많은 제도의 피해자다. 이주민 직장가입자 1인당 피부양자 수는 0.4명으로, 내국인이 1명대인 것에 비하면 매우 적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오히려 최근 이주민 가입자에 게 부과된 보험료가 대폭 증가했고, 이에따라 이주민 건강보험 재정에서 흑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주민들은 건강보험 납부 때문에 생계난을 겪고 있는데, 건강보험 재정은 이주민들의 건강보험료로부터 상당한 흑자를 거두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외국인 대상으로 부과된 보험료는 2020년 기준 1조 5417억 원으로 2016년 대비 두배로 뛰었다. 이주민들의 건강보험을 당연가입으로 전환하고,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체류자격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차별적 제도로 인해 가입자가 대폭 늘어난 결과다.
덕분에 이주민들은 과도한 보험료로 생계고에 시달리면서도, 출국조치가 두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한편, 공단부담금인 총 급여비(직장+지역)는 동기간 겨우 4천억 원 증가하였다. 흑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늘어난 보험료 납부액에 비해 이주민에게 건강보험 혜택이 돌아가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주민들에겐 건강보험의 본래 목적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할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무임승차라는 프레이밍 자체가 보편적 복지의 근간에 어긋난다. 게다가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인 이주민을 대표적인 무임승차자로 부각한 것은 악질적이기까지 하다.
진짜 빌런은 누구인가?
기만적이게도 대통령은 복지를 이야기할 때마다 '약자복지론'을 이야기한다. 이 '약자복지론'이 얼마나 뻔뻔하게 약자를 외면하는가를 생각하면, 수원 세모녀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건은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포함한 사회안전망의 커다란 구멍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었다.
지금은 중단된 출근길 문답에서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발굴론으로 답했다. '약자'를 발굴해서 지원하는 '약자복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계적 규모로 드러난 건강보험의 약자들이 있는데 무엇을 더 발굴해야 한다는 말인지 정말 의문이다. 수원 세모녀는 건강보험료 1만 원을 낼 수 없었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 이들이었다.
통계에서 생계의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는 이들을 '생계형 체납자'라고 부른다. 이 생계형 체납자가 2022년 올해 상반기에만 67만이었다. 2021년 1년간의 체납가구가 69만이었는데 불과 반년만에 체납 세대수와 미납액이 1년치만큼 달성된 것이다. 물가상승률은 2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가계부채 또한 최대치를 기록하는 경제상황 속에서 노동자-서민들은 기본적 권리인 건강보장조차 포기할 정도로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건강보험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단적으로, 국고재정에서 겨우 20% 책임지도록 되어있는 건강보험 국고지원조항마저 일몰로 폐지되도록 방치해 두었다. 프랑스는 50%, 일본은 40%에 달하는 국고지원율에 비하면 법정기준을 한참 늘려도 모자랄 판에, 아예 책임을 삭제해버리자는 것이다.
민생은 이토록 철저히 외면하는 반면에 건강보험 재정에 책임이 있는 또 하나의 행위자인 기업들에 정부는 한없이 너그럽다. 사회보장기여금을 OECD평균에 비해 35조 원이나 덜 내고 있는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묻지는 못할망정, 정부는 오히려 법인세 , 부동산세를 완화해주며 부자감세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건강을 상품화해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자 하는 의료영리화에 대해서도, 정부와 여당은 규제완화 법안을 연일 발표하며 지원사격에 나서는 데 여념이 없다.
종합하면 정부의 건강보험 기조에서 드러나는 것은 냉혹한 신자유주의다. 윤석열 대통령의 세계관에서는 최소한의 건강보장을 책임지는 '사회같은 건 없다'. 정부는 건강보장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게 아니라, 능력에 따라 쟁취해야만 하는 선택적 상품으로 만들고자하는 위험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누가 진정한 약자인가, 누가 치료받고 건강할 자격이 있는가를 심판하는 정부는 누구의 건강도 지킬 수 없다.
나도, 너도 빌런이 아니다. 그럼 누가 빌런인가? 우리를 빌런이라 하는 자, 그가 바로 빌런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