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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덜 미안하고 싶어서" 상점 연 이 엄마의 이유 > ( http://omn.kr/22127 )에서 이어집니다.
유정란을 부화시킨 닭과 누에를 키우고,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시위를 하는 학교가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분리수거를 하고, 물티슈가 아닌 걸레로 청소한다. 학생들은 산을 뛰어다니며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산에서 아이들은 자연과 공감한다. 학교 뒤 거마산은 학생들의 친구다.
이곳은 경기도 부천시 대안학교 '산학교'. 이 학교는 2001년부터 삶과 하나 되는 교육을 목표로 운영을 시작했다. 목공이나 연극처럼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자연 체험은 스스로 꿈을 찾도록 하는 교육과정이다. 덕분에 산학교 아이들은 세상에 단단히 자기 두 발 딛고 서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과 더 좋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하경 환경운동가는 산제로 상점의 대표지만 산학교의 학부모이기도 하다. 산제로 상점은 산학교의 매점이다. 산학교 부모들이 학교 별관에 만든 제로웨이스트 상점이다. 이 매점은 지역 환경운동과 환경교육의 거점 역할도 하고 있다. 이하경 대표와 학부모들은 어린이, 청소년, 청년,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재활용 교육, 건강한 생활용품 만들기 강좌 등, 교육 캠페인을 진행한다.
산학교가 추구하는 환경교육의 가치는 무엇일까? 환경 교육 현장에서 직접 일하고 있는 이하경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11월 17일 진행됐다.
지렁이를 구조하는 아이들
삼형제 엄마 이하경 대표는 시누이에게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권유받았다. 처음엔 고민이 많았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던 조카가 지렁이를 시멘트에서 들어 올려, 흙에 가만히 놓아주며 "얘는 여기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이곳이라면 아이가 자연과 교감하며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배울 것 같았다.
공동체에서 다양한 생명과 어울려 사는 경험 덕분에 삶은 180도 달라졌다. 결혼 전 직장을 다니며 돈 버는 일에만 집중했던 이하경씨는 공동육아를 하며 공동체의 힘을 실감하고 생태적 감수성도 키워나갔다. 덕분에 공동체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산학교에 아이들을 망설임 없이 보내게 됐다.
이하경 대표는 플라스틱 방앗간을 가지고 다닐 만큼 교육에 열정적이다. 사람들에게 제로웨이스트를 알리고, 재활용이 어려운 작은 플라스틱을 녹여 티코스터, S자 고리, 비누받침 등의 제품으로 탈바꿈하는 '업사이클링' 교육도 진행한다.
산제로 상점의 다른 부모는 비누, 주방세제, 세탁가루 등등의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생활 용품을 직접 만드는 '되살림' 강좌도 진행한다.
- 환경교육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환경문제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더 많은 이들이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실제 삶에서도 환경을 위한 행동을 실천할 수 있게끔 돕기 위해 환경교육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쓰레기는 단순히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석유를 버리는 사람은 없겠죠? 쓰레기를 자원이라고 생각하면 쓰레기양은 자연스레 줄게 돼요."
- 진행한 캠페인 중 특히 '장난감 병원 프로젝트'가 눈에 띄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처음엔 저희 아이들 장난감을 보고 시작하게 됐어요. 우리 학교는 뭐든 잘 안버리니까, 장난감이 엄청나게 쌓이더군요. 대부분 장난감은 나사, 고무 등 여러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재활용이 되지 않아요. 일반 폐기물이죠.
차라리 100% 플라스틱이면 재활용이 될 텐데. 만들 때부터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한 가지 소재로만 만드는 게 좋을 텐데. 현실적으로 아직은 힘들죠. 그래서 망가진 장난감을 무작정 버리지 말고 고쳐서 오래 써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시작된 게 장난감 병원 프로젝트죠."
이 대표는 상품으로 진열 하기도 전에 버려지는 장난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매년 수조 톤이 넘는 장난감이 만들어지는데, 그중 240만 톤이 넘는 장난감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판매도 되지 않고 버려진다. 이것은 한국인 1인당 하루 9개에서 10개의 장난감을 버리는 것과 같은 양이다. 마침 장난감을 고쳐서 멀쩡하게 만드는 시민단체가 있었다.
인천 '키니스(kinis)' 장난감 병원은 은퇴한 할아버지들이 모여 고장 난 장난감을 무상으로 수리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할아버지들과 함께 장난감을 고치는 걸 배우고 직접 장난감을 수리한다. 장난감 작동 원리를 배우며 과학 지식을 얻는 이중 학습효과도 있다. 또한 지역 단체와 협업을 하고 아이들도 어른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게 됐다.
이 대표의 환경 운동은 학교와 지역 그리고 생활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이 살 미래를 직접 만드는 중이다. 장난감 병원 프로젝트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다. 부모가 돼 보니 보이는 문제를 당장, 직접 해결하겠다는 그의 실천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 마음은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아이들의 마음과 같다.
학생들이 아니라 환경 운동가다
산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제로웨이스트나 친환경적인 삶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학생들은 누에를 직접 키우고 토끼를 키우고 유정란을 부화시켜 닭으로 키우고 수업을 한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직접 관찰하면 자연과 공감 능력은 저절로 커진다.
누에도 닭도 아이들의 친구다. 자연 안에서 이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동료다. 아이들은 자연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학교, 즉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을 익힌다.
- 산학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산학교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그러면서 자기 생각이 뚜렷해지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어요. 주관이 뚜렷하니까 서로 부딪칠 때도 있지만 괜찮아요.
우리에겐 갈등을 안전하게 풀어갈 수 있는 자연이라는 교육환경이 있거든요. 자연에서 갈등이란 두려워할 끝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예요. 공동체는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서로를 존중할 때, 계속 나아갈 수 있어요."
- 환경교육을 받는 산학교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제로웨이스트를 하나요?
"아이들이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멈출 수는 없어요. 아이들 스스로 분리수거를 하고, 물티슈 없이 걸레로 청소하는 등의 일들이 생활화 돼 있어요. 산제로 상점이 처음 생겼을 때, 부천시에선 큰 화제였지만 저희 아이들은 신기해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겐 익숙한 일상인 거죠. 아이들의 생태적 감수성이 뛰어난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죠."
-산학교의 환경동아리 '구해줘지구' 아이들과 함께 환경운동도 한다고요?
"아이들에게 '나와 함께할 활동가가 필요해. 너희들이 그 활동가가 돼 줬으면 좋겠어'라고 했어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활동을 하고 싶었거든요. 생각보다 큰 일은 아니에요. 아이들이랑 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워요. 기후정의 행진도 나가고 부스도 운영하고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산학교 환경동아리 '구해줘지구'는 최근 부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넘어지지 않는 모임' 프로젝트를 함께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겨울, 빙판길을 녹여줄 불가사리로 만든 친환경 제설제를 마을 어디에 뿌리면 좋을지 알아보는 활동을 했다.
산학교는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몸에 익히지 않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초·중등 학교에서 의무로 해야 하는 환경교육
이하경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는 아이가 커갈수록 더 기다려주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또한 자신에 대해 먼저 알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산제로 상점같은 환경 교육장에 가지 않더라도 부모가 집에서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환경 운동가가 된다.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친환경적인 일상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이다. 가정에서 부모의 노력이 있다면 공교육에서는 어떻게 환경 문제를 다루어야 할까?
2023년부터 초·중등학교 환경교육은 의무 교육과정이 된다. 1992년부터 환경 과목을 독립교과로 개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9년부터 환경 과목 신규 교사 선발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14년 만에 공교육에서 환경교육이 다시 의무가 된 것이다. 환경 학교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에게 공교육에서 중점을 둬야 하는 환경교육에 대해 물었다.
- 2023년부터 환경교육이 의무가 됩니다. 환경교육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이뤄져야 할까요?
"역시 지속성이죠. 이론에서 끝나면 아무 의미 없어요. 아이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게끔 습관으로 만들어야 해요. 학부모들은 직접 환경 교육을 진행하지만, 애들한테 한 번도 제로웨이스트가 뭔지 설명해 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주변 환경은 무척 중요해요. 환경 위기를 맞은 인간들의 삶이 변하듯 교육 환경도 생태적으로 바뀌어야죠. 가정에서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로 확장해야 합니다. 현수막을 걸고 환경을 구하자는 캠페인도 중요해요. 습관으로 익힌 생태주의적 생활은 아이들의 환경 의식을 항상 깨어있게 할 수 있어요. 머리가 아니라 몸에 익히는 게 교육 아닐까요?"
덴마크나 독일, 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주, 캐나다, 프랑스, 핀란드 등 많은 국가에서 청소년들의 '환경교육권'을 보장하고 있다. 핀란드는 1~10학년까지 환경과목을 교육하고 있으며, 호주는 '환경과 과학'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1992년 개발된 국제 환경생태 교육 프로그램인 '에코 스쿨'은 현재 덴마크, 독일, 그리스, 영국에서도 설립돼 진행 중이다. 이들 국가는 시험을 보기위한 환경 교육을 하지 않는다. 환경 실천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과 참여 교육을 통해 환경 습관을 만들고 있다.
이하경 대표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환경 교육을 강조한다. 지속 가능성은 습관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
이하경 대표가 산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온몸으로 느끼는 인디언 격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남겨주고 싶어 시작된 활동들이 지금은 아이 뿐만이 아닌 청년, 노인 등등 많은 이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대표는 모두가 함께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을 삶에서 지속할수 있도록 환경교육이 공교육에서도 제대로 안착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녀와 인터뷰가 끝나고 난 다음, 산학교의 격언을 생각해봤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자연이 필요하다."
자연을 파괴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장을 망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윤서연 기자와 이향진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