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사고 유가족들이 모인 유가족협의회가 10일을 기해 출범한다고 합니다. (...) 한편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도 출범을 알렸습니다. 참여연대와 민노총 등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 그러나 지금처럼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결합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발언이다. 권 의원은 여기서 "우리는 재난 앞에서 성숙해야 한다"면서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와 같은 길'은 대체 뭘까. 권 의원은 특정 시민단체의 '횡령'을 주장했다. 그는 "일부 시민단체는 세월호 추모사업을 한다며 세금을 받아가서 놀러 다니고 종북 교육에 사용했다. 이러한 횡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즉각 비판을 불러일으켰다(관련 기사:
유가족협의회 출범에 권성동 "횡령수단 될 수도"... 야당 "극우 유튜버냐" http://omn.kr/21ya8 ).
"또 다시 이런 꼴, 참담하다"는 세월호 유족... 국민의힘이 두려워하는 것
권성동 의원의 발언이 알려진 뒤 몇몇 세월호 유가족들은 '또다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니 참담하다'는 취지로 내게 연락을 해왔다. 권 의원의 발언은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고 있을 뿐 아니라, 과거 자녀를 잃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또 모욕을 줬다는 점에서 매우 악의적이다.
나아가 그의 말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라고 협의체를 직접 만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더는 행동하지 말라는 말로까지 읽힌다. '참담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의 출발점이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는 것을 국민의힘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국민의힘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당시 국정농단이 불거지면서 범국민적 촛불시위가 전개됐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라는 서명에 국민 100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 한국 대다수 시민사회단체, 노동계가 여기에 함께 했다.
권성동 의원이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 보인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민단체의 정부 압박 방식은 지양해야" "시민단체는 유족 옆에서 정부를 압박하기 전에"라는 등 '정부 압박'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가 정말 우려했던 건 '시민단체 횡령'이라기보다 이태원 참사가 윤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까 하는 것 아니었을까.
이미 정부 심사 거쳐 받았던 예산인데... 또 한 번 '종북' 딱지
권성동 의원은 '횡령' 의혹을 운운했지만,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국민의힘은 지난 11월 초 세월호 참사로 과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경기 안산시(참사 희생자의 반 이상이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었음 - 편집자 주), 여기에 지원된 정부 예산의 집행 내역을 들추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안산에 세월호 시설만 최소 7곳'이라는 등 제목으로 이를 다뤘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또한 안산 시민사회의 세월호 예산 낭비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 또한 사실과는 다르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경기 안산시에 '미래세대 치유회복 사업'의 집행을 위해 지원된 예산은, 과거 박근혜 정부의 국무조정실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의뢰해 수행한 연구결과로 마련된 가이드라인에 맞춰 집행됐다. 한마디로 정부의 심사를 이미 거쳐 진행된 예산이란 얘기다.
이들은 이 예산사용이 '횡령' 또는 '세금낭비'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공동체 회복'에 방점이 찍혀 세월호 참사 뒤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는 안산 시민들을 위한 사업이었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바로 당시 정부 예산의 기본 취지였기 때문이다. 경기 안산 국회의원들(민주당) 또한 성명을 내고 "서범수 의원이 세월호와 관련 없다고 했던 다수 사업들은, 시민들이 애도의 마음을 승화시키고 공동체 회복 당사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였다"라고 반박했다.
<조선> 등이 문제삼은 경기 안산 시민단체의 '북한 바로 알기' 등 프로그램 또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가 활발했을 시점, 남북교류 활성화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심지어 '정부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에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진행된 행사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를 '종북 프레임'으로 둔갑시켰고, 정부 예산이 마치 특정 시민단체들에 의해 악용됐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세월호 참사 상기시키는 이태원 참사... 대한민국은 안전해졌나
권성동 의원은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선 안 된다'라고 적었지만, '세월호의 길'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고 온 국민이 합의한 유례없는 길이었다. 이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실종자 유가족, 생존자를 비롯해 시민사회 포함 다수 국민이 힘을 모은 범국민적 운동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지난 10월 말, 윤석열 정부에서 우리는 159명이 세상을 떠난 참사를 마주하게 됐다. 이는 되레 '세월호의 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교훈을 안겨준다고도 볼 수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안전해지지 않았다.
현재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유가족 단체를 결성, 49재 추모제 등을 통해 강도 높은 진상규명, 관련한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할 것을 선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권성동 의원과 서범수 의원 등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예산 사용 의혹 제기, 사실 왜곡까지 시도하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정부 압박을 사전에 차단하려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과거 정부가 어떻게 대했는지를 지켜보고 그 결과를 기억하는 국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세월호 때 그랬듯, 망언을 내뱉은 정치인들 또한 국민은 기억하고 있으며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있는 시민분향소를 설치한 뒤 한 발언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맺으려 한다. 윤 대통령을 향해 울며 흐느끼고 부르짖은,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의 발언이다.
"(대통령님이) 축구선수들이 공을 잘 찼다며 눈물 참으며 얘기하는 걸 봤습니다. 기쁨의 눈물은 참으면서 이런 대참사에 대한 눈물은 참으시네요. 당신의 심장은 AI입니까. 사람이 맞습니까. 어찌하여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는 겁니까. (유족을) 보듬고 슬픔에 공감해야지요. 어찌하여 유족과 싸우려 하십니까. 이 분향소에 와서 진정으로 머리 숙여 이제라도 잘못 했다고 하면,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 무서워서 못 오시는 겁니까. 금요일까지 와서 머리 숙여 사과하십시오. '지나고 보니 내가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청소년들에게 죄송하다, 유족에게 잘못했다'고 여기 (희생자) 사진들 앞에서 머리 숙여 눈물 흘리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 더는 참지 않을 것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와서 사과하십시오. 국민 여러분, 다음은 여러분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배서영씨는 전 4.16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촛불행동' 조직국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