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1급 선비의 자질은 문ㆍ사ㆍ철ㆍ시ㆍ서ㆍ화에 일가를 이루고 여기에 거문고 등 예악을 첩가하였다. 좀체로 갖추기 어려운 학인이자 예술가에 속한다. 현대인들에는 더욱 어려운 학업이고 과제이다.
군소리 빼고, 한승헌은 이를 상당 수준 두루 갖춘 학인이라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시인이다. 27세에 첫 시집 <인간 귀향>을 내고 33세에 제2시집 <노숙>을 펴내었다. 그리고 한국문인협회(시분과)에 가입하여 평생 이르렀다. 시화전도 열고 행사장에서 시낭송도 하였다. 대학시절에 이미 신문에 시를 발표하여 신석정 선생 등의 평가를 받았다.
법조인이 되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도 가끔 문학지와 일간지에 시를 발표하여 문인들로부터 "이젠 시인으로 돌아오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2016년 만추에 시집 <하얀 목소리>를 간행했다. 시전문의 서정시학에서 '서정시학 시인선 127'의 넘버를 달고서였다.
시인은 새시집 <시인의 말>에서 "<인간귀향>과 <노숙>에서 추리고, 그후 여기저기 실었던 작품을 함께 묶어 이 <하얀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하나의 '정리 요구'에서 나온 작업이다. 부질없는 늑장에 부끄러움을 숨길 수가 없다." (주석 3)고 썼다. '정리 욕구'는 이별을 앞둔 '노숙자'의 '귀향'을 의미하는 듯 하여 마음이 무겁다.
시집은 제1부 <하얀 목소리>에 11수, 제2부 <노숙>에 10수, 제3부 <인간귀향>에 10수, 제4부 <병동기>에 9수, 말미에 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해설 <젊은 변호사의 정신적 노숙시대>가 '미수에 이른 젊은 변호사'의 시혼을 분석한다.
책의 제목으로 뽑힌 <하얀 목소리>와 시인 스스로를 형상화한 듯한 <노숙>을 소개한다.
하얀 목소리
하얀 종말 곁에
마주 보던 목숨이여!
- 또 오셨군요,
- 할 수 없지요,
혈액원 앞뜰에서 인사를 하던
한 젊은이가 쓰러지는
서울의 정오 뉴스 -
그것은
우리 시대의 만가(輓歌)였다.
저만치 보이다가 침몰해버린
파도 속의 얼굴
지워진 내 이름의 자리
지금은 누가 있는가.
미운 자들의 웃음소리에도
귀먹은 유월은 그저 푸르구나.
여기 미친 자들의 공간
몸살을 하다하다
꽃잎은 진다.
혼자만의 물줄기 가눌 길 없는
초여름 긴 하루의 종착
결국 아무도 만나지 못한
헛걸음이 끝나는 자리에서
당신은 그렇게 쓰러져갔다.
누구 안에도 내가 머물지 못 하듯
내 안에 이제 아무도 없다
아쉽고 착한 것은 으레
먼저 떠난다.
- 또 오셨군요.
- 할 수 없지요.
슬픈 산하에 잠기는 하얀 목소리
오늘 나는 부끄러운 조객(弔客)인 것을… (주석 4)
노 숙(露宿)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대지는 말이 없다.
남루한 연륜이 서린
오늘 이 부끄러운 계단에 서면
허물어진 폐허에
그래도 장미는 피고
다시 지고…
너와 나의 의지할 곳 없는 입김이
희미한 신호등 아래 서성거릴 때
그것은 한 방울 이슬 같은 것.
그 오랜 세월
인종(忍從)의 거리와 거리 모퉁이마다
사랑도 없이 해는 저물어
싸늘한 벽돌 담 아래 밤마다
진실과 내가 부둥켜안고 노숙할 때
가슴 깊이 받들어 온
염원의 숨결
주르르 적셔 내리던 뜨거운 눈물
아, 무너지는 형상을 위하여
무릎 꿇고 손 모으던 나…
산다는 것은 하나의 진실을 마련하는 일
그것은 외로운 작업
벅차고 눈물겨운 일이다.
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몸부림 속에 복이 있나니. (주석 5)
임헌영 문학평론가 '해설'의 한 대목이다.
그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와 난해한 모더니즘의 전성기에 형성되었으면서도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창성을 돋보이게 했다. 그에게 시는 역사와 민중으로 다가서기 위한 정서적인 자기 내성이자 다짐이며 투지의 단련 과정이었다. 그가 이룩한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원동력은 바로 이 시기의 이 시집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변호사, 수필가로서의 명성에다 이제는 시인이란 칭호를 하나 더 붙여주는 게 도리일 것이다. (주석 6)
주석
3> 한승헌, <하얀목소리>, 시정시학, 2016.
4> 앞의 책, 13~14쪽.
5> 앞의 책, 41~42쪽.
6> 앞의 책, 10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