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7일 금요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주관한 49재 추모제가 열렸다. 글쓴이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이태원역에 설치된 추모제 무대로 행진할 때 돕는 길잡이를 맡았다. 영정과 위패가 놓인 분향소 앞에서 희생자 가족들은 절규를 쏟아냈고 시민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무겁고 뜨거운 분위기에서, 어느 차가운 한 마디가 귀에 박혔다.
"자식들 죽음 가지고 시체팔이하는…."
순간적으로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한 남성이 서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노려보자 그는 군중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몇몇 유가족분들은 그의 말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과 지지자들로부터 2차 가해 발언이 지속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어쩜 그렇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가슴이 쓰라렸으나 고통은 낯설지 않았다. 이미 8년 전에 겪어본 고통이었다.
피해가족을 향했던 혐오와 피해자다움
우리는 8년 전, 세월호참사 유가족에게 쏟아졌던 수많은 혐오와 조롱들을 잊을 수 없다. 유가족의 요구를 억압하기 위해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은 '종북', '빨갱이', '세금도둑' 프레임을 생산했고 정보기관, 보수 인사, 보수 언론, 보수 커뮤니티는 이를 확산했다.
한 세월호참사 희생자 어머니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밥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 슬퍼서가 아니라,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유가족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식사를 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겨우 웃어보는 순간, 누군가는 가족의 진정성을 의심했고 피해 가족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은 울기도 하지만 웃기도 하는 피해자, 화내는 피해자, 새누리당을 지지하기도 하고 노조에 가입하기도 하는 다양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순수한 유가족' 프레임에 저항하고 '피해자다움'를 깨부셨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살아간다면 누구나 될 수 있었던 '유가족'으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해오고 있다. 참사를 '불운한 개인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회와 싸우고, 사회 전체 문제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법,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다시는 당신과 같은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시민들에게 국가 존재의 이유를 묻고 국가가 안전사회와 피해자권리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참사 피해자가 확장하는 안전권
세월호 가족은 '누구나' 어디서든 안전할 수 있도록, '누구든' 수학여행을 가다가 죽지 않도록, '누구든' 재난참사 피해자라면 국가에게 응당 보장받아야할 것들을 보장받도록 싸워왔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밤을 보내고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할 수 있도록 이태원참사 가족들도 싸우고 있다.
마치 인간의 범주를 점차 확장하며 '인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온 것처럼, 재난참사 피해자와 그에 연대하는 우리는 계속해서 안전권의 개념을 만들어가고 확장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안전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는 국가의 부작위에 의해 국민의 생명을 잃은 참사라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세월호참사 당시, 해경지휘부는 승객 인원과 침몰 예상시각, 선내 구조에 따른 구조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구조세력에게 유의미한 퇴선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결국 100분이라는 충분한 골든타임에도 304명이 희생되었다. 해경으로 대표되는 국가가 '의무를 하지 않음'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세월호참사로 만들었다.
필자는 이태원참사의 핵심 질문이 왜 이전에는 있었던 대책과 계획이 이번에는 부재했는가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서울특별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 등 법률에 따라, 관할 지역의 재난을 예방, 대비하고 대처하는 등 책임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 실제로 2020년, 2021년 핼러윈 데이 때 서울시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밀집 지역에 특별 방역 대책을 수립하고 특별 현장지도를 실시한 사실이 있다.
하지만 2022년 10월 29일 당일, 서울시장을 비롯한 국가 공직자는 압사 등 다중운집 사고에 관한 사전예방 계획 및 대책수립 의무 자체를 불이행했고, 사전 대책 수립 및 사전예방조치로서 지하철 무정차 통과 등을 계획하거나, 재난안전상황실을 상시 설치하지 않았다. 서울시 및 중앙정부와 경찰, 행정안전부로 대표되는 국가는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아' 참사를 초래했다(2022. 12. 8. 민변·참여연대 - 오세훈 시장 등 서울시 수사촉구 기자회견).
이처럼 국민의 안전에 대한 주의 의무를 가진 공직자 여럿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대형재난참사는 일어난다. 하지만 부작위 처벌에 대한 대한민국의 인식은 너무나 안이하다. 고의로 저지른 것이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범죄가 될 수 있냐'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주의의무를 지닌 공직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된다. 첫째로 그 피해규모가 크기 때문이며, 둘째로 작위/부작위한 공직자에 대한 책임자 처벌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명의 책임자라도 제 역할을 다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으나 다수의 공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에만 참사가 일어나므로, 전체에게 경각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 지휘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아야 희생자는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자의 고통은 위로받으며 공동체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세월호참사를 아직까지 얘기하냐는 사람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아직 해경지휘부 중에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사 외압과 은폐 등으로 해경지휘부를 기소하는 데에만 6년이 걸렸으며, 그마저도 1심 재판부는 작년 2월, 해경지휘부에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관련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곧 2심 선고가 23년 2월 7일에 내려진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방해건도 2월 1일 선고가 내려지며, 기무사 세월호 유가족 불법사찰의 건도 1심에서 징역 2년이 내려진 뒤, 2심이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똑같이 힘든 길을 걷지 않도록 세월호참사에서 공직자의 부작위/공권력 남용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하여 판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해야 한다.
피해자 가족들이 요구하는 건 이미 삶을 빼앗긴 당사자로서 원하는 최소한의 것들이다. 또, 손쉬운 혐오와 구별짓기 대신 우리의 일원으로써 피해 가족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누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는 용기이자 위로가 된다.
반복되는 재난참사 앞에 외롭고 힘들 때,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제작한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같은 책을 읽거나, 유가족과의 간담회에 참여하는 것,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먼저 말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시혜의 대상이 아닌 가치담지자로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재난참사 피해자를 시혜의 대상이 아닌,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보면 좋겠습니다. 재난참사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에 함께 분노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