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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동네 헬스장 샤워 라커룸에서 벌어진 일이다. 얼굴을 닦으려고 탁자 위에 잠시 벗어 둔 안경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내 것인데, 왜요?" 말하는데 그는 정작 자신의 안경을 이미 쓰고 있는 상태였다. 자기 안경을 쓰고도 남의 안경을 가져가는 이 어이없는 착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도 멋쩍은 행동에 새삼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가 무안할까 봐 더 이상 주시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잃어버린 라커 열쇠를 찾기 위해 헬스장을 샅샅이 뒤지기도 했는데 결국 사이클 밑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모두가 열쇠를 간수하지 못한 사람을 탓했지만 그게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운동가방을 두고 갔다가 다시 가방을 챙겨가는 사람도 자주 보는데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지금은 찾으러 오는 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평소 쓰는 안경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가끔 본다.

최근 5년 새 달라진 일들

사실 나도 위와 유사한 경험을 자주 하고 있다. 가령 안경을 쓴 채로 세수를 할 때가 있다. 그것도 여러 번 겪었다. 이후 세수할 때마다 주의하지만 생각하면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또 집에서 가끔 요리를 하는데 식칼을 들고서도 칼 보관함을 찾는 경우도 있다. 내 손에 칼을 쥐고도 인지하지 못하다니 정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핸드폰도 '주의대상'이다. 외출을 서두르다 핸드폰을 휴대하지 않아 다시 집에 가는 적도 여러 번이다. 이럴 때마다 자책하지만 좀체 개선되지 않는다. 4년 전에는 새로 구입한 핸드폰을 지하철에 두고 내렸다. 바지 주머니에 둔 핸드폰이 저절로 빠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도로 찾았지만 그때부터 애들처럼 핸드폰 목걸이를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약속을 잡아놓고 날짜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경우도 있다. 퇴근하기 직전까지도 기억해 두었는데 귀가해서야 약속장소가 생각나 갑작스러운 변명을 꾸며대고 펑크 낸 적이 있다. 나 스스로도 도저히 믿기 싫은 상황이다. 내가 잡은 약속을 스스로 어길 때의 죄책감과 상대가 느낄 허탈감 때문에 한동안 약속하기를 주저했다.

읽다가 접어 둔 책 귀퉁이에서 독서를 이어가는데 이미 읽은 부분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블랙아웃'을 없애기 위해 마지막 본 구절을 한두 번 더 읽는 습관을 들이지만 기억은 여전히 가물거린다. 불과 수개월 전에 읽었던 책을 처음 대하는 책처럼 착각해 다시 책을 구입할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집에서 화장실 전등을 끄지 않은 실수도 잦다. 나는 분명 소등했는데 지적당하기 일쑤다. 빈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아내는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번득이는 관리감독에 긴장한 탓인지 또 다른 실수를 야기한다.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바지의 그곳(?)을 닫지 않고 나오는 것이다. 이 괴팍한 행동은 과거 강의하던 시절에도 종종 발생한 해프닝이다.

이달 초 전지전능할 것 같은 아내도 실수를 범했다. 친구들 모임에 모처럼 새로 장만한 금목걸이를 치장하고 외출했다가 잃어버려 상심하고 집에 왔는데 화장대 위에 문제의 목걸이가 그대로 있었다. 꺼내놓고 목걸이를 하지 않고 당당히 외출했던 것이다. 아내의 '양심고백'을 들으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에 적은 사태들은 대부분 최근 5년 새 경험한 것들이다. 사건을 접할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두려움이 오래 남는다. 최근 답답한 마음에 정신건강테스트 앱을 깔고 치매, 우울증, 스트레스 등 각 부문별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결과는 모두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점차 달아나는 기억력과 건망증을 막을 도리가 없다.

갑자기 늘어난 건망증은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내 경우 특히 전신마취 하는 몇 번의 대수술 때문에 더 심한 것으로 추측해보기도 한다. 문제는 떨어지는 인지력을 단순히 노후 질환으로 여기고 방치하면 언젠가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요새는 새벽 명상과 메모일기 등 '루틴'한 일상을 연습 중이다. 휴대폰도 가급적 멀리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실수는 연발되고 있다.

치매검사한다던 동료를 비웃었지만

사실 치매는 우리 집안도 옭매어 놓았다. 작은 어머니는 10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 가족들도 오랜 간호로 지쳐있다. 작은 아버지는 "치매야말로 가장 고약한 질병"이라며 치를 떨고 있다. 70대의 고모부뻘 되는 아저씨 부인은 경우 바르고 사리 분별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5년 전 갑자기 요양원에 가있다.

먼 과거 일은 어느 정도 기억하는데 며칠 전 상황은 쉽게 잊어버리는 부인 걱정에 애타는 지인도 있다. 그는 부인의 안타까운 치매현상을 가까이 지켜보며 자신도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멀쩡했던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가족들의 충격과 상실감은 더 크다고 한다.

우리 같이 노년에 접어든 세대에게 치매 전조라 할 수 있는 기억력 상실과 건망증은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정상적으로 지내면 다행이라 말할 정도다. 주변의 치매환자와 가족을 보고 들으면서 치매를 결코 남의 일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간 치매검사를 받은 친구나 동료들을 볼 때마다 비웃었는데 그게 아니다. 그들이 나보다 먼저 현명한 대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치매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어딘가에 처박아둔 치매검사 신청 안내장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치매검사를 먼저 받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검사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해방됐다고 한다. 치매검사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노년성 치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했다는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검사를 통해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으면 좋겠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할 일은 치매검사로 결정했다.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 중 10%가 치매환자라 한다. 치매가 경계할 질환이라는 데 공감한다. 모든 병이 그렇듯 치매도 예방이 중요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매일 운동하고 있다는 헬스장 80대 어르신의 외침이 마음에 확 와닿는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서도 발행한 글입니다.


태그:#치매, #건망증, #성탄절, #헬스장,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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