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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출판되어 널리 읽힌 지 오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 상처로 웅크린 안타까운 아이들의 소식이 올라옵니다. 새해에는 부디 아이들의 슬픈 소식이 들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기자말]
지역 복지관에서 정서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돌봐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엄마 없이 할머니와 사는 아이였는데, 2주에 한 번씩 만나 간단한 놀이와 간식을 먹으며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 밝은 아이였지만 대화하다 보면 주변의 자극적, 폭력적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 감지되어 위태로움이 종종 느껴졌다. 짧은 프로그램 시간 동안 나누는 말과 행동들은 미력하여 바로잡아 주기에는 무리였다.

온전한 사랑으로 보호받지 못해 무너져 가는 아이들을 응시하는 일은 슬프다. 제대로 사랑과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섣불리 어설픈 어른이 되어 버리는 일 또한 가슴 아프다. 사랑은커녕 믿을만한 사람에게 돌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폭력에 시달린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삶의 막다른 길로 내몰리기도 한다.

위태로운 남매의 일상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을 목격하며 두려움과 공포 속에 자라는 두 남매가 서서히 병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 있다. 오정희 작가의 장편소설 <새>이다. 잘 쓰인 문학작품은 사태의 경각심을 고취시키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폭력과 불안에 잠식된 어린 남매와 남매 주변의 어른들을 통해 소설은 어른이 아이에게 주는 사랑의 의미에 대한 고찰과 지켜야 할 이들을 마땅히 지켜내는 어른의 책무에 대한 성찰로 독자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오정희 작가의 장편소설 <새>
오정희 작가의 장편소설 <새> ⓒ 문학과지성사

소설은 우선 주인공 남매가 어떻게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구박, 냉대속에 생존해 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초등학교 3학년 우일이와 5학년 우미는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셋방에서 둘이 산다. 엄마는 아빠의 폭력을 못 견뎌 오래전에 집을 나갔고, 아빠가 새엄마라고 데려왔던 여자도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셋방에 오기 전에는 친척들 집을 전전했는데, 친척들은 대놓고 두 남매에게 험한 말을 해대며 윽박질렀다.

생존을 어딘가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어린 남매는 공포스러운 아빠의 폭력이든, 친척들의 서러운 멸시든 그저 속절없이 당하며 공포와 냉대, 천시 속에서 사는 법을 익힌다. 소리 내지 않고 웃기, 소리 내지 않고 울기, 어떤 경우에도 소리 내지 않는 것이 자신들을 지키는 방편임을 터득했다는 사실이 읽는 이를 가슴 저리게 한다. 

한편 유일한 구원일 수 있는 엄마의 얼굴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일그러져 나타난다. 친척집에 걸린 달력이건 오래된 사진첩이건 활짝 웃고 있는 여자들의 얼굴을 오려내는 것으로 말이다.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사랑과 행복에 대한 시기심을 소심하게 풀거나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분풀이를 하는 것으로 읽힌다.

아빠가 셋방에 들르지 않는 날이 길어지며 남매의 일상은 급격히 위태로워진다. 우미는 동생 돌보기를 자처하며 새엄마란 여자가 쓰던 고무장갑을 낀다. 아버지도, 엄마도, 새엄마란 여자도 버려버린 돌봄의 책임을 어린 누나가 지려하는 게 눈물겹다. 그런 우미의 의지에 셋방 이웃 어른들도 선의의 관심으로 도움을 주지만 그들의 처지 또한 편치 못한 건 매 일반이다.

하나 같이 자신의 결핍에 매몰되어 인간적 한계를 지닌 채 황폐하게 살아가는 외로운 어른들이다. 이들 역시 자신들이 마땅히 지켜내야 할 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지극한 사랑으로 연숙 아줌마 곁에 머물던 남편은 직장을 잃고 괴로워하다 결국 떠나버린다. 이씨 아저씨는 어두워져도 키우는 새장을 방에 들여놓지 못한다. 우일이의 발을 치료해 준 침 봉사 아저씨는 잡아먹힐 줄 뻔히 알면서도 곧 출산을 앞둔 자신의 개를 동네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만다.

모두 암담한 사정들로 우미가 굳건히 의지할 만한 곳을 일절 찾을 수가 없다. 이 와중에 진짜 엄마이기를 내심 상상하며 우미가 잠시 마음을 의지하려던 유일한 어른이 있다. 바로 학교에서 우미를 정기적으로 만나러 오는 상담어머니이다. 그는 우미가 좋아하는 팥빙수를 사주며 어려운 환경이라도 꿋꿋이 버텨내면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좋은 말을 해 주지만 안타깝게도 우미는 곧 절망하고 만다.

고층 아파트에서 다복한 가족을 꾸리고 사는 상담어머니의 찬란한 세상은 우미가 넘볼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속해 있음을 처절히 실감했기 때문이다. 상담어머니란 존재는 우미에게 마치 이씨 아저씨의 새장 속 외로운 새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허상의 친구로 삼는 것처럼 상은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꼴이었다. 이 인물은 독자로 하여금 허위의식에 찬 도움이라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케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우미남매의 가장 깊은 상처는 그들을 서울역에 버리려 했던 아버지였고, 간절히 기다리지만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였다. 이 소설이 더욱 비극적인 건 이 남매가 정작 가슴속에 꼭꼭 숨겨 둔 그 상처를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감히 꺼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우미 가슴속에 꾹꾹 눌러 왔던 온갖 공포스러운 기억과 질문들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시점에서야 우일의 주절거림 형태로 분출하기 시작한다.

"누나, 엄마가 왜 그랬을까. 아주 추운 날인데도 엄마는 우릴 발가벗겨 내쫓곤 했었지. 엄마는 늘 울었어. 왜, 왜 그랬을까?"(152쪽)
"그때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려고 갔던 거야, 누나, 아버지는 나를 내던졌어. 생각나지? 엄마를 때리고 아주 아기인 나를 3층에서 던져 버렸어. 그래도 나는 말짱하게 살아났어. 나는 날았던 거야. 떨어지면 죽거든. 나는 그때 벌써 그걸 알았어."(159쪽)
"엄마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방 한구석에서 숨죽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그랬을까, 누나?"(163쪽)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소설

생존하기 위해 어떤 경우에도 소리 내지 않아야 했던 우미남매가 그토록 세상에 내뱉고 싶었던, 아버지에게 끝내 묻고 싶었던 절규였음이 분명하다. 슬픔 가득한 작품이다. 우미 남매에게 도대체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가늠키 힘들다. 이 소설의 제목이 <새>인 것은 위험하고 상처뿐인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길 꿈꾸는 우일과 우미의 바람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1996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16쇄를 증쇄하고, 2009년 개정판으로 7쇄 발행, 2017년 개정 2판으로 다시 6쇄째 발행되며 오랜 세월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2003년 독일에서 번역 출간되며 독일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 상을 수상했다. 이는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1947년 서울 출생의 오정희 작가는 2009년 개정판 '작가의 말'을 빌려 이 소설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혔다. 아름다운 문체로 알려진 작가답게 이 소설 또한 섬세한 문장들이 곳곳에 돋보인다. 특히 주인공 우미의 고통스러워하는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또한 내내 사건 단위로 짧게 끊어 간결하게 전개해 나가는 구성이라 쉽게 읽히지만 함축된 메시지는 진중하여 독자에게 주는 울림이 깊다. 

아이들은 무릇 자신을 돌봐주는 누군가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랑에 갈급하기는 어른도 마찬가지겠으나 자신의 책임 아래 있는 이들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어른된 자의 책무 중 중요한 한 가지임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오정희 지음, 문학과지성사(2017)


#오정희 작가#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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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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