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성탄절 저녁, 서울 용산구청 근처 시민 분향소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 참석했다.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마련한 미사였고 전국에서 많은 신부님들이 달려와 미사를 함께 집전했다. 하지만 거룩하고 엄숙하게 지내야 할 미사는 엄청난 소음과 방해 속에 간신히 진행되었다. 분향소 앞 작은 광장은 극우성향 보수 단체들이 몇 시간 전에 절반을 차지해 버려, 미사 참석자들은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서거나 골목으로 들어가 미사를 드려야했다.
뿐만 아니다. 미사 시작 두 시간 전부터 미사 시간 내내 엄청난 음향 소음과 거친 발언을 쏟아내 평생 겪어 보지 못한 강력한 소음공해에 시달렸다.
자신들도 천주교 신자라 주장하며 마이크를 잡은 두 사람은, 이날 정의구현사제단을 맹렬하게 비난했고 사제들에게 거의 욕에 가까운 막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사제단 총무 송년홍 신부님이 '종교행위를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니 저 사람들을 막아 달라'라고 경찰에게 몇 번이나 요구했지만, 경찰은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거의 고문 수준에 가까운 소음 속에서 미사가 시작되었음에도 미사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고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그 어떤 사제도 험한 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신자도 항의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은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태원 상인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이제 그만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기도는 다락방에 숨어서 하는 것이라며 가르치듯이 야단쳤다.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은 신부도 아니라며 옷을 벗으라고까지 했다. 천주교 신자라는 그들은 미사 시간 중에서 가장 거룩한 순간, 숨소리도 내지 말아야 하는 성체성사 시간에도 소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때 그들이 진짜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밀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그 신비를 믿는 진짜 신자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송년홍 신부님은 강론에서 "오늘 이 미사야말로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을 제대로 묵상할 수 있는 미사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화려한 조명과 황금 이불이 깔려 있는 교회나 성당이 아니라 길거리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말들과 양들이 음매음매 떠들고 냄새나는 마굿간에서 태어나 짚풀이 깔려있는 먹이통에 누우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네가 진짜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하고 조롱하며 외치는 군중들 속에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태어나고 죽은 예수님은 늘 고통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 편에 계셨다. 그래서 사제단도 예수님처럼 바로 이곳 이태원에 와서 미사를 드리는 것인데 천주교 신자라는 저 사람들은 사제단 신부는 신부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약자와 함께 하며, 현장에서 고통 당하는 사제단 신부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요 사제가 아닐까 싶었다.
진짜 신자라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본 영화 <탄생(A Birth)>에서, 당시 시대의 선각자로 나온 김대건 신부를 죽이라고 악을 쓰며 외쳤던 궁궐 대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 속 그들은 조선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출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다. 그 결과는 매우 가혹해서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식민통치 기간 동안 조선 사람들은 한강의 모래알만큼이나 죽었다.
지금 저렇게 소리 지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짓을 하는지 과연 알고 있을까?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지른 사람들, 김대건 신부를 죽이라고 소리 지른 사람들처럼 정의구현 사제단 옷 벗으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소리 지르는 저 사람들은 과연 그들이 역사에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예수님은 숨을 거두기 전에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니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나도 조용히 기도한다.
"하느님, 제발 저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빨리 깨닫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