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은 굵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노동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 멈춰 선 생산 설비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최윤미 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 분회장은 "다행히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라고 말했다.
폐업을 위해 오는 8일부터 청산절차에 들어가는 ㈜한국와이퍼(안산 반월공단)가 1일부로 휴업을 하며 공장 문을 걸어잠갔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자동차 부품 기업 덴소(DENSO)가 100% 출자해 만든 회사로, 한국와이퍼가 만든 와이퍼 부품은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를 통해 현대자동차 등에 납품됐다.
노동자들 2일 즉각 '공장 사수 투쟁'에 돌입했다. 이대로 폐업하면 200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노동조합에 공문을 보내 기물 보호 등의 이유로 공장 입구를 닫았다고 밝혔다. 이에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을 할 권리를 주장하며 회사 측에 구내식당과 화장실 개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생산 설비 등이 외부로 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공장을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분회장은 <오마이뉴스>와 만나 "회사 설비를 빼 가려는 의도가 없다면 공장 문을 걸어 닫을 이유가 없다"며 "이를 막기 위해 후문에 집회 신고를 하는 등 지킴이 활동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요구는 고용 보장이다. 회사가 지난해 협약을 통해 이를 약속했는데도 지키지 않았다"며 "덴소의 한국 지사인 덴소코리아가 고용 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노조 "고용 보장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아" - 회사 "8일부터 청산 절차 개시"
지난해 10월 노조와 회사 측이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서에는 '회사는 청산, 매각, 고장 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조와 협의해야 하고,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매각할 경우 모든 직원 또는 해당 직원의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이 협약서에 일본기업 덴소(DENSO)와 덴소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가 연대책임자로 서명했다.
이를 근거로 노조는 덴소코리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한국와이퍼에 대한 덴소코리아의 사용자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법원은 노조가 사측(한국와이퍼)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협약위반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해산 결의는 주주총회의 전권 사항이라 단체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등의 이유다.
최 분회장은 "일본이 한국 노동자와의 약속을 어겨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일본 자본이 기만적으로 고용 약속 등을 어겨도 한국 정부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답답하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와이퍼의 폐업 이유는 '적자 누적'이다. ▲심해진 가격 경쟁 ▲임금 인상에 따른 원가 상승을 원인이라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원가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게 인건비 상승"이라며 "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1월 8일부터 청산 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노조는 "일본 자본 덴소가 10년간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 놓은 뒤 자기들 배만 불린 게 원인"이라고 맞섰다. 최 분회장 등은 이같이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40일 넘게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9월 19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따르면 한국와이퍼는 원가에 못 미치는 금액으로 덴소코리아에 납품을 해 지난 10년간 440억 원의 적자를 냈다. 현대차에 납품한 덴소코리아 역시 지난 10년간 360억 원의 적자를 봤다. 이렇게 적자가 나는 동안 덴소는 10년간 덴소코리아로부터 2400억 원의 기술사용료를 받아 챙겼다(관련 기사 :
44일 단식 중단... 한국와이퍼 12월 31일 폐업 초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