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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임석해 자료를 살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임석해 자료를 살피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안타깝지만 새해부터 싫은 소리를 해야겠다. 윤석열 정부 이야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 기획, 공동 연습' 개념을 논의하고 있고 미국도 이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로이터 기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과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고 있느냐'고 질문했고,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미 상황이 단단히 꼬인 셈인데 이후 대통령실의 대응은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지난 3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 자료를 통해 로이터 기자의 질문이 잘못되었고 그래서 바이든 미 대통령이 단호한 부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오늘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로이터 기자가 거두절미하고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고 있는지' 물으니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후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은 핵 보유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공동 핵 연습을 논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하며 한미동맹 및 핵 확산 억제와 관련한 원론적인 코멘트를 전했다. 현재 사태는 그 정도에서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록 기자를 통한 것이라도 윤 대통령의 발언을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정면으로 부정하고 한미 양국 정부가 입장에 혼선을 빚은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적어도 이게 무슨 일인지는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일의 원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대통령의 말실수다. 즉 말하려던 게 '공동 핵 연습'과 다른 무언가인데, 실수로 오해의 소지가 높은 다른 단어를 써버린 것이다. <프레시안>은 "윤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공동 연습'이라는 단어를 다소 경솔하게 사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며 "실제 김은혜 수석 및 주무부처인 국방부도 해당 사안에 대한 설명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공동 연습' 대신 '공동 실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부분에 주목했다. 

새해부터 벌어진 외교 참사, 필연적이었을까?

이 소동의 정확한 내막을 알기는 사실 불가능하다(어쩌면 긴 시간 이후에 누군가의 회고록에 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논란의 원인은 대통령의 말실수'라는 추측을 전제로만 몇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겠다. '만약 이렇게 했다면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말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점입가경이 될 필요는 없었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을 텐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대통령이 발언을 하자마자 기자가 바로 질문을 하는 것이다. '공동 핵 연습은 핵 보유 국가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하려는 게 정말 그게 맞느냐'고 말이다. 이 단계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정정하면 지면에 실릴 일도 로이터 기자가 해당 발언을 읽고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질문할 일도 없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터뷰를 한 기자 중에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동 핵 연습'은 그렇게 친숙한 개념이 아니니 그 말이 어떻게 읽힐지 몰랐을 수도 있다. 혹은 알았다고 해도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기자가 질문까지 하는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보다 예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통령의 말을 다시 질문할 수 있는 기자가 현장에 있었으면 된다. 다양한 매체의 여러 기자가 있을수록 그런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공개된 행사에서 곧바로 발언의 의미를 질문 받는 게 당혹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수습의 기회는 가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이유로 신년 기자회견이 아니라 특정 매체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선택이 득이 아니라 실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결국 독이 된 책임 회피와 이어진 불통

두 번째 경우의 수가 있다. 그냥 빠르게 '대통령의 실수였고 원래 말하려던 건 그게 아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면 당장은 비판을 받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미 정부가 혼란스러운 입장을 내고 상황이 더욱 꼬이는 일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김은혜 홍보수석은 기자의 질문이 잘못됐다는 자료를 냈고 그마저도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백악관이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 다시 반복하고 확인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새해부터 마주한 것이 대통령실의 외교 혼선이라는 게 슬플 따름이지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나는 이번 사태가 돌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지금껏 윤석열 정부가 보인 태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부에서 누가 봐도 대통령의 실수인 일들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응은 변명과 부정뿐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9월 미국 순방 중 벌어진 대통령 비속어 사용 논란이다. 책임지고 사과를 해도 수습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반응은 어땠나. 해당 발언의 '바이든'이 '날리면'이며, 비속어는 미국이 아닌 한국 국회를 향한 것이라 변명했다. 그 결과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못 막게 되어버렸다. 외교 결례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국회 모독까지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변명과 부정은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 명백한 실수의 책임을 외부에 떠넘기는 일은 나쁜 의미로 일관성 있는 행동이었다. 앞서 언급한 사태의 결과로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동남아 순방 때 MBC 기자들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마치 보도를 한 언론이 문제고 그들만 없으면 없었을 일이라는 식의 태도였다.

이어진 이 명백한 실책에 대한 언론의 질문이 이어지자 대통령은 소통의 문을 닫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그나마 참신한 행보로 평가받은 출근길 문답(도어스태핑)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대통령과 언론의 접점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리고 신년 기자회견 대신 돌아온 것이 현 정부에 비교적 우호적인 보수 일간지와의 단독 인터뷰였다.

새해부터 윤석열 정부를 불안하게 보게되는 이유

원인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같은 사고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다. 잘못에 대해 변명과 부정으로 일관하고 책임을 외부로 돌리며 그 결과 소통의 창을 닫고 이를 통해 사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태도는 애초에 잘못도 실수도 자신이 했다는 인식이 대통령에게 부재함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행보가 당장은 여론을 잠잠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벌어진 외교 참사에서 드러나듯 그런 태도는 사고를 원천 차단하기는커녕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라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 그걸 무시하고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이들을 주변에 두면 사고가 발생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일련의 사태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도 공직자도 사람이고 실수를 한다. 그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통령의 행보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는 엄격해야 한다. 그럼에도 최대한 잣대를 낮추어 주장하자면 실수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실수보다 더 중요한 건 태도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 이를 만들어낸 자신의 책임에 대한 태도. 인정하고 소통하며 더 나아지려는 태도.

이런 모습이 있을 때만 벌어진 사고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을 기대할 수가 있다. 하지만 지금껏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모습에서 그런 기대를 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2023년에도 윤 대통령의 행보를 불안하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석열#대통령실#불통#책임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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