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마약 사건일 수 있는데 부검해볼 생각이 있으신가요."
지난해 10월 30일,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은 참사 희생자 조한나씨 오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찰은 "마약 사건일 수 있으니 (한나씨를 가족에게) 인계할 수 없다"라고도 했다.
"외상도 없고 교통사고도 아니고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무슨 부검이냐"면서 거절하자 경찰은 "언제 (한나씨를 데려갈 수 있도록) 결재가 날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계에)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나씨 어머니 이애란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의문점이 남는다"고 했다.
"대체 어떤 결재를 기다려야 하는지, 일주일 혹은 한 달 그 시간에 아이에게 뭘 하려고 했는지 되물었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서...가족인 걸 확인했으면 바로 (한나를) 인계할 수 있었을텐데. (결국) 그날 밤 11시에 한나를 영안실에서 옮길 수 있었지만, 제가 영안실에서 4시쯤 나왔는데 '그 사이에 뭘했을까, 피검사를 한 건 아닐까' 제가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그걸 했어야 했는데..."
어머니는 "참사 때 구조에 집중한 게 아니라 오로지 마약 수사에 꽂혀 있던 거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이처럼 경찰 혹은 검찰이 이태원 희생자 유가족에게 부검을 제안한 사례는 비단 한나씨뿐만이 아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만 18명의 유가족이 부검 제안을 받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0.29 이태원참사 대응 TF는 이태원 유가족을 상대로 설문을 진행했고, 이중 부검 제안을 받았다고 밝힌 유가족이 18명에 달한다고 12일 밝혔다.
이 같은 부검 제안에 대해, 참사 직후 마약 등 범죄와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검·경 모두 혈안이 됐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검찰청은 이태원참사진상규명과재발방지를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아래 국조)에서 '검사가 유가족에게 마약과 관련해 부검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경찰이 '부검은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민변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부검 제안을 경찰이 했다고 밝힌 유가족은 총 11명(이중 2명은 검사와 경찰이 모두 물어봤다고 답변)이다. 검사가 제안했다고 답한 유가족은 7명(이중 2명은 검사와 경찰이 모두 물어봤다고 답변) 모르겠다고 답한 유가족은 2명이었다.
이같은 부검 제안을 하며 '마약과의 연관성을 언급했다'고 답한 유가족은 5명, '마약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답한 유가족은 12명이었다(해당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유가족 1명).
한 유가족은 "일산에 있는 영안실에서 중랑 쪽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희생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찾아와 부검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했다"라며 "범죄나 마약에 연루됐을 수 있다며 부검 제안을 했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한 유가족은 "경찰이 부검을 제안하는 정도를 넘어 '부검은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강요에 유가족은 "처음에는 부검을 의무라고 생각했다"라며 "이후 경찰서에서 유가족 진술을 할 때 부검은 범죄 혐의점이 있는 경우 선택사항이라고 전해 들어 부검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라고 밝혔다.
한 유가족은 부검제안을 한 경찰의 이름을 밝히며 "부검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 해당 경찰이 '검사가 마약 관련해서 부검을 제안할 수 있다'고 말해 화를 낸 사실이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장례식장에서 장례 준비를 논의하고 있을 때 광주지검 검사가 찾아와 처제에게 'SNS상에 마약 얘기가 떠돌고 있다, 정황 확인을 위해 (부검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검사로부터 부검 제안을 받았다고 답한 한 유가족은 "사인을 알기 위해서 부검을 해야 한다, (사인으로) 마약 등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유가족의 증언은 대검찰청이 '먀악 부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과 대치된다. 앞서 김보성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과장은 지난달 29일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부 검사가 이태원 참사 유족에게 부검 절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마약 보도를 언급했을 뿐이고 검사가 마약 부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대검찰청은 기관보고 자리에서, 부검 제안은 특정지검 검사의 독자적인 판단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오늘 유가족들을 통해 확인된 사실은 검찰의 답변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국정조사 이후에라도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하여 이에 대한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