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나오는 흘러나오는 고소한 냄새를 이틀 동안 싣고 다니다가 자원봉사센터 조리실로 향했다. 오늘은 곡물을 이용한 강정 만들기를 하는 날이었다. 작년 한해 동안 봉사단 이모님들은 변함없이 남을 위한 활동으로 일상을 즐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정 만들기로 자신들에게 힐링을 주고 싶어했다.
"여러분, 지금부터 쌀이나 보리강정, 깨(흑임자) 강정을 만들 거예요. 정량을 잘 지켜야 맛있고 잘 썰어져요. 욕심 많게 조청 많이 넣으면 바싹한 맛이 없고 썰 때 모양도 안 이뻐요. 먼저 이 프라이팬의 크기에 맞추어서 만들 거니까 정량 준비해 주세요. 튀긴 쌀이나 보리를 종이컵으로 10컵, 조청 1컵, 설탕 3스푼, 생강가루와 식용유 1티스푼, 그리고 각자의 취향대로 견과류 넣으시면 되요. 깨 강정은 물 1스푼만 추가하면 됩니다."
봉사단장(희망틔움, 김영림씨)의 말이었다. 코로나 시작부터 급식봉사현장에서 함께 활동하는 이모님들은 무엇이든 못하는 게 없는 살림의 고수여서 강정 만들기 역시 당연히 잘 만드는 줄 알았다. 단지, 집에서 하려면 이런저런 준비 과정이 복잡해서 함께 만들자고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처음 만들어 본다는 분들이 많았다.
"아이고, 나는 이 나이 먹도록 강정은 처음 만들어보는 거여. 설 앞두고 잘 만들어서 내 생전 처음으로 만든 강정을 제사상에도 놓고, 자식들도 줄라고 허네. 기대되는고만 그려."
평소에 학생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 중 가장 참여도 높은 내용은 '음식만들기' 부분이다. 김밥 만들기, 샌드위치 만들기, 떡볶이 만들기, 단팥빵 만들기 등은 학생 가족들에게 인기다. 특히 봉사활동을 통하여 가족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자녀의 진로에 대한 특별한 길을 찾기도 한다. 그만큼 유익한 교육 활동 시간이다. 강정 만들기에 임하는 봉사단 이모들의 마음도 같았다. 꼭 어린 아이들처럼 맘이 둥둥 떠서 만들기 준비에 들어갔다. 쌀과 보리 강정 만들기를 위한 단장의 말이 이어졌다.
첫째, 프라이팬에 조청 1컵과 설탕 3스푼, 식용유 1스푼을 넣고 그대로 두세요.
둘째, 내용물이 뽀글뽀글 기포가 생길 때까지 절대 젓지 마세요. 저으면 달고나(사투리로 띠기)되니까 꼭 기억하시구요.
셋째, 기포가 생기면 쌀이나 보리를 종이컵으로 10개, 취향대로 생각가루 쬐끔 넣어도 맛있어요.
넷째, 땅콩이나 호두, 호박씨 같은 견과류를 추가하고 싶은 사람은 넣으세요. 단, 너무 많이 넣어서 강정의 본 맛을 잃지 않도록 하시구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멀티 기능이 약화되는 것일까. 여기저기서 급한 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아고야, 불이 세서 다 조청이 다 타버리네."
"조청에 기포 생길 때까지 젓지 말라고 했는데 그새 까먹고 저어서 어쩐데요."
"쌀을 몇 컵 하라고 혔어? 식용유를 1컵이나 넣으라고?"
"쌀을 너무 많이 넣었는가벼, 윤기가 안 흐르네, 내거는 푸석거리고만."
갑자기 강정 만드는 현장이 정신이 없게 수다스러웠다. 이곳저곳에서 목소리가 올라가고, 누구 말이 맞네 그르네를 하는 선생들이 생겨났다. 이모님들의 이런저런 통통 튀는 말에 나는 현장 사진을 찍으면서도 웃음만 나왔다.
당신들의 일거수가 어찌나 귀엽게만 보이던지,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서 드리고 싶었다. 이제는 봉사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얼굴이라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인 줄도 안다. 아침마다 받는 편지로 시 한 편 읽으면 행복하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니 오히려 받아주셔서 고맙다고 답한다.
볶아서 버무러진 강정 재료들이 10여 개의 도마 위에 펼쳐졌다. 흰쌀강정, 보리강정, 현미강정, 검정깨강정, 갈색깨강정 등등, 다시 한번 봉사 단장의 지시사항이 전달되었다.
"일회용 장갑에 식용유 살짝 묻혀서 강정을 꾹꾹 눌러주세요. 모양을 네모나게 만들어 가져온 방망이로 밀면서 재료들이 잘 달라붙도록 하세요, 너무 건조해도 자를 때 부서지고, 너무 촉촉해도 자를 때 힘드니까, 손으로 만져 보면서 적당히 바람 쐰 후 이쁘게 잘라요."
사진만 찍을 수 없어서 나도 장갑을 끼고 프라이팬에서 버무러진 내용물을 도마 위에 놓았다. 식용유를 장갑 위에 묻히라는 지시를 그 잠깐 사이에 잊고서 뜨거운 깨 강정을 만졌다. 두 손은 검정깨로 범벅이 되어 모양은 비틀어지고, 음식이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서 손가락마다 붙어있는 깨를 먹기도 했다.
하얀 쌀과 빨간 대추, 견과류를 넣어서 만든 쌀강정을 만든 세원언니는 어릴 때 흰쌀밥 먹는 것이 소원이어서 당신은 오로지 하얀 쌀로 만든 강정이 제일 좋다고 했다. 함께 짝꿍이 된 순화 언니는 강정을 만드는 솜씨 또한 정갈하고 꼼꼼해서 흰쌀강정은 단연 돋보였다. 게다가 한 판을 만들어 선물로 주셔서 감지덕지했다.
"강정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지만 설을 앞두고 우리 고유의 음식을 이렇게 만들어 볼 수 있어서 의미가 있네. 지켜야 할 전통은 꼭 지키면서 우리 학생들을 가르쳐야지"라고 말하는 지인은 선생님 출신다웠다.
활동은 못했지만 함께 나눌 사람들의 몫을 챙기고 난 후 두 손에 가득, 고소하고 달콤한 강정봉지를 들고 삼삼오오 얘기했다.
"누구랑도 나눠 먹어야겠네. 설날에 상에 올려야지. 이 나이에 처음으로 내 손으로 만든 강정을 먹네."
강정하나를 서로 나눠주고 먹여주면서 그 달콤한 맛보다 더 달콤한 마음을 주고 받는 사람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 말에 있는 '속 빈 강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가 할 정도로 '속 찬 강정'을 만든 시간. 행복했던 새해 첫 달의 봉사단 활동이었다. 올해도 봉사활동은 나의 큰 행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