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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만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동천하구 갯벌은 흑두루미들의 잠자리다. 아침에 일어나 1km 떨어진 대대뜰의 먹이터로 이동한다.
순천만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동천하구 갯벌은 흑두루미들의 잠자리다. 아침에 일어나 1km 떨어진 대대뜰의 먹이터로 이동한다. ⓒ 김병기
 
"오십... 음... 오십... 이번엔 재두루미 2마리 해서 오십."

순천만 갯벌의 부드러운 곡선이 하나둘씩 깨어나자 강나루 순천만 명예습지 안내인(63)은 망원경(필드스코프)을 놔두고 쌍안경으로 바꿔 들었다. 디귿(ㄷ)자 형태의 순천만 동쪽 농주리의 동천하구 갯벌은 흑두루미의 잠자리다. 일출 30분 전부터 깨어나 동이 틀 때쯤 본격적으로 먹이터로 이동하는 흑두루미 수를 세려면 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지난 12일 새벽 6시 20분경, 그는 가파른 바위 산길을 올라 해발 80m 높이의 해룡면 농주리 용산전망대에 망원경을 설치했다. 매년 10월부터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이듬해 4월 초까지 월동하는 흑두루미를 모니터링하기 시작한 지 13년째다. 동전만한 망원경 렌즈 속으로 갯벌 위를 S자로 휘갈기듯 그은 물길이 나타났다. 숨죽인 물길은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갯벌 위로 군데군데 둥그렇게 원판형으로 조성된 갈대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산 전망대] 새벽녘, 순천만 박차고 오른 흑두루미 5117마리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원시 자연 습지를 보는 듯했다. 천적을 피해 컴컴한 갯벌과 갈대 군락에서 무리를 지어 잠을 자던 흑두루미들이 하나둘씩 깨어나자 강씨의 입도 바빠졌다. 서너마리씩, 대여섯마리씩 가족 단위로 갯벌을 박차고 올라 1킬로미터 떨어진 '희망농업단지'에 마련된 아침 식탁으로 줄 지어 날아가는 행렬. 그는 녹음기를 켠 채 주문을 외듯 숫자를 셌다.
 
"뚜루루 뚜루루 뚜루루~"
 
 흑두루미 사진공모전 수상작(입선, 이오남, 흑두루미 비상)
흑두루미 사진공모전 수상작(입선, 이오남, 흑두루미 비상) ⓒ 순천시 제공
 
갯벌을 붉게 물들이며 밝아오는 새벽녘 순천만을 가득 채운 이 소리. 공룡시대부터 살았던 이 새를 '두루미'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관악기에서 나온 것 같은 소리가 5~6km 떨어진 곳까지 넓게 울려퍼지는 건 울음관이 가슴뼈를 관통하면서 가슴뼈와 함께 얇은 판이 오디오처럼 소리를 증폭하기 때문이란다. 흑두루미 울음소리가 거세질수록 그의 주문은 더 잦아졌다.

점심 때 다시 만난 강씨는 이날 농주리 갯벌에서 잠을 잔 두루미는 5117마리라고 했다. 재두루미 19마리, 검은목두루미 9마리, 캐나다 두루미 2마리도 함께 잤다. 이곳에서 작년에 월동한 흑두루미는 3400여 마리였는데, 2000마리 가깝게 늘었다. 전 세계에서 1만 7000여 마리만 남아있어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천연기념물 제228호로 지정해 보호하는 상당수의 개체가 순천만에서 6개월간 월동을 한다.
 
"처음 모니터링할 때만해도 200~300여 마리였죠."
 
 강나루 순천만 명예습지 안내인이 용산전망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강나루 순천만 명예습지 안내인이 용산전망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김병기
 
강씨가 말했다. 이때만 해도 순천만은 3000~4000km의 거리를 날아서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出水) 월동지로 향하는 흑두루미의 중간 기착지였다. 하지만 2010년 525마리, 2014년 1005 마리, 2017년 2176 마리, 2020년 3132 마리로 늘었다. 작년 11월 21일에는 9800여 마리가 관찰됐다. 왜일까? 순천시는 지난 11일, 12일 흑두루미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대대뜰+인안뜰] 2009년 전봇대 282개 뽑았다... 14년 후
 
"하나, 둘, 셋 하면 당깁시다. 하나, 둘, 셋!"
 
노관규 순천시장과 이완섭 서산시장이 밧줄을 당기자 비닐하우스가 쓰러졌다. 11일 인안뜰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였다. 흑두루미가 늘자 먹이터 제공 장소를 확대했다. 이를 위해 순천시는 흑두루미 먹이터 주변 비닐하우스 7개동 보상을 마무리했다. 현재 흑두루미 보호 지역은 62ha. 순천시는 추가로 인안뜰에 109ha를 확보해 이곳의 전봇대 161개도 뽑는다.

14년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09년, 순천시는 당시 난개발을 막으려고 대대뜰에 생태계 보호지역을 설정한 뒤 전봇대 282개를 뽑았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걸려 죽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였다. 개발보다 생태를 선택한 순천시의 획기적인 결정, 당시 많은 언론이 주목했다. 2009년 452마리였던 월동 개체수가 10배 이상 늘어난 데에는 이같은 노력이 주효했다.

흑두루미를 위한 특별한 식탁
 순천시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인 대대뜰에서 2000여 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다.
순천시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인 대대뜰에서 2000여 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다. ⓒ 김병기
 
경관 농업단지를 운영하면서 '겨울 진객' 흑두루미의 특별한 식탁도 마련했다. 희망농업단지에서 생산하는 무농약 쌀이다. 지난 2021년 만해도 200톤의 벼를 겨울철새 먹이로 제공했다.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사업을 시행해 농가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기에 가능한 일이다. 흑두루미 영농단 참여 농가들은 벼를 수확하지 않고도 총 1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순천시 장익상 순천만보전과장은 "농가에서 수확하면 1m² 당 1,320원을 벌 수 있는데, 이 단지에서는 장려금을 포함해 1,680원을 보상한다"면서 "농민들은 1m² 당 360원의 추가 소득을 얻는다"고 말했다.

10월부터 날아드는 흑두루미는 12월까지 대대뜰에 흩어진 볍씨를 먹다가 1월부터 매주 순천시가 뿌려주는 볍씨 8톤을 먹으며 4월까지 지내왔다. 올해는 흑두루미가 1만여 마리 가깝게 날아 오는 날도 있어서 지난해 12월부터 먹이공급을 하고 있다.

올해 유독 많은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을 찾은 이유는 뭘까? 기후변화 요인과 풍족한 먹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전한 잠자리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초 전 세계 흑두루미 73%가 월동하는 일본 이즈미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농주리 갯벌과 대대뜰로 잠자리와 먹이터가 분리된 순천만과 달리 이즈미 104ha 규모 서식지에는 고인 물로 인공 조성된 잠자리 '무논'이 있다. 이곳이 오염되면서 1300여 마리가 폐사했다. 지구상에 생존한 흑두루미의 7.6%에 달하는 수치이다. 멸종위기를 먼저 안 건 흑두루미였다.
 
▲ 무려 6천 마리 바다 건너왔다... 그 이유가 기막히다 김병기의 환경새뜸 : ‘겨울 진객’ 월동지, 순천만을 가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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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흑두루미는 왜 순천만을 택했나

순천시 황선미 순천만보전과 주무관은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하고 있던 흑두루미들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면서 "이를 피해서 일부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으로 유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이즈미 흑두루미 6000여 마리가 바다 건너 순천만으로 역유입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3일, NHK 서울지부와 가고시마 방송국도 '순천만 흑두루미 1만 마리 도래' 뉴스를 전하면서 야마시나 조류 연구소 오자키 기요아키 부소장의 다음과 같은 분석을 소개했다.
 
"죽거나 약해진 개체가 보이면 두루미도 상당히 놀랍니다. 더욱이 죽거나 허약해진 새를 회수하려고 평소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두 가지 요인으로 두루미가 위험을 느껴 이동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순천은 일부 개체가 이즈미 평야로 건너올 때 들르는 곳이기도 하니까, 두루미들도 알고 있어서 순천으로 긴급 피난한 것으로 보입니다."(번역 :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전 SBS 환경전문기자)
 
이 방송은 또 "순천만 습지는 이즈미시와 마찬가지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어 지자체와 시민들이 '두루미의 고장'으로 오랜 동안 환경보전에 힘써왔다"면서 흑두루미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순천시의 정책도 조명했다. 결국, 일본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을 선택한 건 전봇대를 뽑고, 안전한 먹이를 제공하는 등 그간 순천시가 공을 들인 효과였다.

[순천만국제습지센터] 7개 지자체 '남해안 흑두루미 벨트' 업무협약, 정부 건의
 
 지난 12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서 열린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업무협약식.
지난 12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서 열린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업무협약식. ⓒ 김병기
 
순천시가 흑두루미 서식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흑두루미 개체수에 비해 현재 희망농업단지 62ha가 비좁기 때문이다. 매년 증가 추세이고, 최근 일본 흑두루미들이 대거 역유입되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2020년 1월에 실시한 환경부 겨울철새 동시 센서스 결과, 전국 200개 주요 습지 중 동천하구 습지보후지역에서 멸종위기종 조류가 가장 많이 관찰되기도 했다. 특히 흑두루미가 밀집하면 AI와 같은 전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서식지 확대와 분산을 위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12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서 열린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업무협약식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인간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흑두루미 서식지는 매년 줄어들고 있고, 한정된 서식지에 흑두루미가 밀집하면서 조류 인플루엔자 등 전염병 발생에 취약한 구조가 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자체간 협력체계를 구축해..."(업무협약서 내용 발췌)
 
이날 협약식에는 순천시장을 비롯해 강원도 철원군, 충남 서산시, 전남 여수시, 광양시, 고흥군, 보성군 등 7개 지자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지자체장 네트워크 구성, 흑두루미 분산 및 상시 방역 시스템 구축 협력' 등의 내용을 담은 협약서에 사인을 했다.

생태가 밥 먹여주냐? "사람 살리고 순천도 살린다"

순천시측은 "국내에 유입된 흑두루미는 순천만 주변인 경남 하동 갈사만, 건남여수-광양-고흥-보성이 인접한 여자만, 서산 천수만까지 분산됐다"면서 "흑두루미의 이동은 한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지자체간 연대, 국가간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날 협약의 취지를 밝혔다.

국제두루미재단 스파이크 밀링턴 부회장도 이날 협약식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통해 "흑두루미의 잠재적 월동지를 발굴해 서식 환경 개선, 먹이주기 등을 통해 월동지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흑두루미를 여러 지역으로 분산해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 보전될 수 있도록 공동협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노관규 순천시장(좌)이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노관규 순천시장(좌)이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김병기
 
이날 협약식을 마친 노 시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멸종위기종 흑두루미 종 보존을 위한 남해안 흑두루미 벨트를 완성하겠다"면서 "순천 인안뜰의 전봇대 지중화 사업과 영농단 운영에 필요한 국비 지원 등 흑두루미 서식지 분산을 위한 정부 지원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노 시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흑두루미를 살리자고 했더니, '생태가 밥 먹여주냐'고 반문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전봇대를 뽑았더니 흑두루미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2009년에 연 15만명에 불과했던 순천만 관광객이 300만명까지 늘었다. 농민들에게도 수익뿐만 아니라 일자리 혜택도 돌아가기에 농촌도 산다. 생태가 경제를 견인한다는 것을 순천시가 전세계에 증명했다. 흑두루미가 사람을 살리고 순천도 살리고 있다." 
 
 순천시 관광인구 현황
순천시 관광인구 현황 ⓒ 관광지식정보시스템
 
 

#흑두루미#순천시#순천만#멸종위기종#대대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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