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을 바라보며 돌봄을 주고 받는 우리 어르신들과 함께 노화를 겪어가고 있는 물리치료사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알지 못했고, 마냥 부정적으로만 여겼던 노화과정에는 새로운 신비가 숨어 있음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있습니다. 노화와 이에 따른 만성통증이 안겨주는 선물이야기(?)입니다. 노화와 만성통증을 좀 더 밝게 볼 수 있도록 색다른 안경을 나눠 쓰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
늙어봐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가 있습니다. 바로 늙어감의 세계입니다. 늙어감의 과정은 누구나 하루하루가 첫 경험입니다. 100살이나 먹었어도 아직 101살이 되어가면서 겪는 늙음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이 늙어감의 과정은 100명이면 100명 모두 다 다르기까지 하니 섣불리 입을 댈 수도 없습니다.
저는 노인 관련 기관에서 물리치료사로 있습니다. 운동지도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노인 분들을 돌봐드립니다. 노인 분들에 비하면 한참 못하지만 50을 지나 6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제 나이가 맘에 듭니다. 나이 오십이 괜히 지천명이 아닌가봅니다. 젊은 시절의 열기가 식고 불안이 가라앉으니 하늘의 뜻이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최근 일을 하면서 이게 어쩌면 하늘 뜻의 한 조각일 지도 모른다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젊은이는 아직 디뎌보지 못한 세계인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늙어감에 거의 필수로 동반되는 만성통증에 얽힌 사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보통 만성통증은 중장년기에 서서히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죠. 노년기에 이르러선 호전과 악화를 끝도 없이 반복합니다. 만성통증을 돌보고 있는 저에겐 마치 두더지잡기게임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노년기에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만성통증. 저는 당연히 처음에는 초전에 박살내야할 악으로 규정하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의 통증일수록 만만치 않습니다. 기이할 정도입니다. 마치 옷감에 물감이 들 듯 몸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입니다. 내 몸의 일부가 된 이 녀석을 악으로만 규정한다면 마음의 고통까지 덤으로 배가 될 것 같았습니다. 결국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가 바뀌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쳐부숴야할 원수가 아니라 어쩌면 친구로 지낼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겁니다. 어떤 학자는 사람은 평생을 통해 발달한다는 이론을 내세우면서 노년기에 풀어야 할 숙제로 '자아통합'을 이야기 했다지요. '자아통합과 절망'간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만성통증이라는 친구가 노년기의 이 숙제를 최대한 빨리 풀 수 있도록 도와줄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 숙제해결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한번 들려드릴까 합니다.
만성통증의 숨겨진 얼굴
송지혜(가명)할머니는 저희 물리치료실의 최우수 고객이십니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죠. 할머니는 80을 훌쩍 넘기고 90을 넘보는 나이입니다. 제법 넉넉한 살림을 건사했고 젊은 시절 고생도 덜 해서인지 연세에 비해 꼬부랑 허리도 덜하시고 건강하셨습니다. 너른 마당을 낀 주택에서 80을 넘기고도 몸소 텃밭 일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농사일은 텃밭이라도 철 따라 해야 할 일은 비슷합니다. 지혜 할머니는 봄이면 파종, 여름이면 풀매기, 가을이면 수확과 말리기를 몸소 당연한 듯이 지금껏 하셨습니다. 간간이 무리를 한 덕에 물리치료를 자주 받으셨지만 소싯적부터 몸에 벤 소일 습관을 포기한 적은 없습니다.
한동안 소식이 없으시다 물리치료실에 대뜸 나타나실 땐 어느 정도 예상이 되죠. "아 텃밭일 하셨어요?" 물으면 어김 없었습니다. "송지혜님~ 이젠 마음만 이팔청춘이지. 몸은 절대 아니예요" 하고 말씀드리면 "맞다, 맞다, 이제 안해야 되는데..." 하십니다. 그리곤 한동안 뜸하시죠.
그러다가 "아이고, 제사라고 좀 신경을 썼더만 내가 죽겠다" 하시며 또 나타나시죠. "며느리 없으세요? 왜 직접 그렇게 챙기세요?", "내 손이 안 가면 일이 안 된다." 할머니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게 윤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고 다시 나는 윤회는 잘 모르겠고 늘 후회하면서도 또 다시 그걸 하고 있는 습관의 무한반복 말입니다.
사실 이런 살아서의 윤회는 너나 할 것 없습니다. 이런 말 하는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 살아서의 윤회를 과연 깨뜨릴 수 있을까요? 경험상 극강의 의지력도 이 습관의 힘 앞에서는 위력을 잃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습관의 반복을 극복하는 이 힘을 정말 의외의 곳에서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늙어감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만성통증입니다.
송지혜 할머니는 작년에도 텃밭 일을 하시다가 또 통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양상이 좀 달랐습니다. 코로나로 한참을 못 뵈다가 오셨는데 말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쭈구려 앉아 일을 좀 했는데 엉치('엉덩이'의 방언)가 아프기 시작했어." "병원에서 시티(CT)까지 찍고 치료를 받았는데 안 낫네. 이제 사타구니, 다리까지 아파."
이렇게 시작된 통증은 해를 넘겨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한방병원에서 한 달 보름을 입원해서 권하는 치료를 다 받았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최선을 다해 돌봐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통증은 괴이할 정도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해불가! 도대체 이건 뭐지?
그런데 이 비슷한 일이 저에게도 생겼습니다. 제 일의 특성상 목,어깨, 팔에 통증이 종종 생기곤 합니다. 많이 사용하는 오른팔에 주로 탈이 나는데 이번엔 신기하게 왼팔에 통증이 왔습니다. 지금까진 직업적 지식과 기술을 적당히 사용하면 해결되었는데 이번엔 좀 신기했습니다. "혹시 이번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 그 정도로 내 몸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물리치료를 갓 시작했을 때에는 만성통증의 위력을 잘 몰랐습니다. 내가 겪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노인 분들의 만성통증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저 어르신은 매일 치료 받으러 오실까?", "내 실력이 형편없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죠. 이랬던 제가 50을 넘기면서 그 이해하지 못할 통증이 온 겁니다. 이 정도면 나아야 되어야 되는데, 왜 안 낫지? 왜 그렇지? 왜지?
늙음에는 신비가 있다
송지혜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제 왼팔에 붙은 통증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머니는 거의 1년을 고생한 끝에 크게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이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는 이 녀석은 평생을 나와 함께 같이 갈지 모른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전의 습관을 거의 떼버리셨습니다. 텃밭 일도 놓고, 집안 일 간섭도 놓으신 겁니다. 끝없이 윤회할 것만 같았던, 평생을 반복했던 습관의 패턴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계십니다. 그리고 통증을 뿌리 뽑고자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기 보다는 받아들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전처럼 아등바등 살지 않는다고 말이죠. 저 역시 비슷합니다. 떨어지지 않는 통증이 늘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몸을 무리하게 굴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단으로 통증을 활용합니다.
노년기에는 절망감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몸은 갈수록 쇠약해져 오만 곳이 아픕니다. 기억은 날로 쇠해집니다. 능력의 상실은 자존감의 상실과 절망감으로 이어집니다. 이 절망감을 넘어 자아통합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울, 불안, 분노에 매일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심한 심리적 고통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어떤 완충적인 적응과정이 있었을까요? 저는 서서히 나타나는 '만성통증의 심리치유 효과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년을 지나면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만성통증이 노년기의 절망감에 서서히 적응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성통증은 삶에 대한 기대감을 서서히 낮춰줍니다. 그리고 집착과 욕망을 서서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인생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잦아들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까지도 편안하게 내 인생의 일부로 통합 하는데까지 돕는 듯합니다.
제가 만난 노인 분들, 특히 고령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만성통증이 죽음까지도 통합할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킨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쁜 것을 그렇게 나쁘지 않는 걸로 받아들이도록 말이죠. 늙음에 수반되는 장애와 무기력함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면 절망과 비통함만이 있을 것 같은데 많은 경우 객관적인 예상을 벗어납니다. 늙어감에는 젊은이들은 모르는 또 다른 신비가 분명 있는 게 틀림없나 봅니다.
덧붙이는 글 | 2월 초 부산환경운동연합의 웹진, 건강이야기 코너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