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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김지성의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지천명을 앞두고 연말증후군이 찾아온 건가.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별안간 앞 날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지난 날의 못다한 사회적 성과(성과주의 마인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자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여러 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늙으신 어머니께 송구스러웠으며, 폭넓지 못한 인간관계와 아직도 미숙하기만 한 스스로를 탓했다. 새해가 밝아오고 또 속절없이 쌓여만 가는 하루들 속에서 불안정하게 일렁거렸던 마음은 잠시나마 가라앉았어도, 현실적인 근심은 여전히 머리 속에서 떠날 줄 몰랐다.

'나는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인가...!'라는 입에 풀칠도 못할 사유는 집어치우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에 희망 없다는 답안을 받아든 심정이랄까. 그러다 지난 설에 두 편의 TV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다.

[송골매 콘서트] 내게도 저런 벗이 있다면
 
 송골매 콘서트
송골매 콘서트 ⓒ KBS

설날 연휴 때 방송된 송골매 콘서트 실황. 오빠와 형부가 본방 시청 후 다음날까지도 붙잡고 있던 감동의 여운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재방송 예약 녹화까지 해놓고 기다렸다.

둘 다 50대 중반을 맞아 여러모로 인생의 고민이 깊어가던 차에 70대의 구창모, 배철수를 보며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단다. 구창모의 여전한 미성의 고음과 배철수의 날씬한 체구, 숱 많은 흰머리까지 찬사를 보내며.

사운드를 즐기기 위해 볼륨을 높이는 순간, 배철수, 구창모가 무대에 등장했다. 오프닝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전주가 일렉트릭 기타로 짜릿하게 튕겨지자, 송골매가 긴 잠에서 깨어난 듯, 큰 날갯짓으로 드높이 비상했다. 객석 함성은 물론, TV 밖에서도 심장이 뛰었다.

이 음악 듣고 울컥하면 바로 나이대 나오는 거라던데, 두 줄기 눈물도 주룩 흘러내리니 민증번호까지 다 털린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중학생 오빠 덕에 들었던 노래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따라 부르는 걸 보면, 메가 히트곡들을 다수 보유한 시대의 아이콘이었음이 분명하다.

배철수는 송골매 해체 이후 라디오 DJ로 30년간 안정적인 직장을 유지중이고, 구창모 또한 오랜 사업과 저작권 수입이 있으니 노후는 걱정없겠구나...! 그런 생각은 찰나였고, 보는 내내 스며들었던 울림은 '저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료이자 친구가 나에게도 있는가...!'였다. 

팀 안에서 동고동락 했을 때는, 서로의 재능에 동경과 시샘이 교차했을 것이고, 각자의 길로 들어섰을 때는,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 또한 적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했기에 지난한 인생의 과정을 거쳐 결국 벗을 얻었다. 나도 70세 넘어 저렇게 벗 하나 곁에 둘 수 있다면.

그리고 또 하나의 발견, 송골매 1집 전곡 작사가이자 베이스기타 이응수. 송골매의 옛스럽고 귀에 쏙쏙 박히는 아름다운 가사들이 이미 중학교 때부터 삼국사기, 삼국유사, 청구영언의 고시조까지 두루 섭렵한 그로부터 탄생되었다 하니,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퀸이자, 지니어스 클럽 아닌가. '곰비님비 님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송골매 6집 젊은이를 위한 음악시리즈 '하늘나라 우리님' 가사 중에).'

[다큐 어른, 김장하] 어른답게 늙는다는 것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 경남MBC

한편 고민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1월 초, 급기야 20년 만에 연기 스승님을 무작정 찾아 뵈었더니 도움이 될 거라며 추천해주신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도 보게 되었다. 

경남 MBC에서 제작, 유튜브에서 입소문을 타고, 설날연휴에 MBC 전국방송으로까지 편성된 다큐멘터리. 18세에 한약사가 되어 60년간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지역사회에 거액을 기부한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다.

진행 방식이 좀 독특했는데, 기존 다큐멘터리와 달리 주인공인 김장하 선생이 단 한번도 카메라 정면에 자리잡고 얘기하질 않는다. 오히려 그 분을 취재하는 기자가 해당 의자에 앉아 줄곧 인터뷰를 당한다. 보통 그런 장면에서 기자는 뒤통수 3분의 1정도만 걸리는 오버컷이 대부분인데.

평소에도 자기 칭찬이 유도되는 질문이면, 아예 말문부터 닫아버린다니, 극도로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분을 전면 배치할 수도 없기에, 취재기자를 시작으로 그와 관련된 주변인들이 줄지어 빈 의자를 채운다. 끝까지 매끄러운 전개가 이어질까 싶었는데, 보다보니 2부작도 턱없이 부족했다.

한 사람을 취재하다 보면 거기서 또 다른 미담과 수혜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엮어져 나와 캐도캐도 끝이 없다. 그들의 증언에서 들려주는 김장하 선생의 사회와 개인에 대한 크고 작은 다양한 기부와 후원의 일화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동으로 생생하게 전해져 가히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한약방에 찾아온 아픈 이들의 돈을 허투루 쓸 수 없다며, 많은 이들에게 도로 베풀었다. 생색없이. 줬으면 그만이라고. 잠깐 마스크 벗으셨을 때 비로소 뵌 어르신의 평온한 얼굴, 소년같은 눈에서 느껴지는 온화한 인품이 화면 너머로 향기가 되어 품어져 나오는 듯했다.

방송 끝자락에 김장하 선생은 "산에 오를 때 하는 좋은 말이 있는데, 사부작 사부작, 꼼지락 꼼지락 그렇게 걸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혹시 앞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 PD가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선생께 질문했나?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선생의 사부작 꼼지락 가란 말에 PD는 웃으며 "그건 할 수 있습니다!" 했다. 그러자 선생은 그럼 된 거라며 따라 웃으셨다.

닮고 싶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송골매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 김장하 선생같이 어른답게 늙고 싶다는 생각들. 서로 잘 되길 바라는 좋은 친구 하나 오래 두면 그냥 멋져지는 거고, 주어진 능력껏 행하고, 내세움 없이 베풀고 살면 어른에 다다르는 것을. 난 아직도 삶에 대한 심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안달하고 있다.

스승님께 좋은 프로그램 소개해줘서 감사드린다 했더니, 60대를 넘어가는 당신께서도 요즈음 점점 힘들었는데, 이 다큐를 보며 반성하고 또 마음을 다지겠다 하셨다. 함께 방송을 지켜본 80대의 어머니도 아침 밥상을 내려다 보시며, 밥 먹는 것도 부끄럽다 반성하셨다. '그럴 것까진 없진 않냐', '김장하 선생과 엄마의 삶은 다르다' 해도 고개를 절래절래 하셨다.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중년을 훌쩍 넘기고도, 삶을 조금씩 정리해 나가는 연세임에도, 걸어온 삶에 대해 여전히 반성하고, 앞날에 대한 막막한 고민의 끝에 이르다, 결국 또다시 출발선상에 자신을 세운다. 

어디로 어떻게 비행할지 알 수도 없고, 혹여 나보다 더 훌륭한 누군가 마주하더라도, 닮고 싶어도 닮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기를. 우리, 지금까지도 아주 잘해왔다.

#송골매#배철수#구창모#어른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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