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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한 직장 생활에도 찾아보면 소소한 재미 거리가 분명 있다. 퇴사가 열풍이 되어버린 요즘, 어쩌면 그 재미 거리가 계속 회사를 다닐 큰 힘이 되어줄지 모른다. 여기에 18년 차 직장인의 재미를 전격 공개한다.[기자말]
"한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책임을 다하는 방패들이다."

군대 시절, 새벽의 찬 서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웃통을 벗고 연병장을 돌며 목이 터져라 불렀던 군가의 한 소절이다. 그 시절 정말 그랬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막사 뒤에서 동료들과 피웠던 담배 한 개비는 하루의 피로를 모두 씻어내고도 남았다.

특히 이등병 시절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을 때, 내무반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마음 편히 숨 쉬던 시간은 담배를 필 때였다. 그러다 옆 소대 동기라도 만나면 어찌나 반갑던지. 이 순간이 멈추길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다. 혹여나 담배가 떨어지면 빌리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엔 나눠 피기도 했었다.

하지만 담배 한 갑이 5000원에 육박하는 요즘은 한 개비 달라고 하는 것조차 실례가 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전자담배가 유행하면서 담배를 나눠 피는 일은 까마득한 추억 속 이야기가 되었다.
 
일하는 중 잠시 휴식 시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잠시 밖에 나와 담배 피는 시간은 머리를 식히는데 제격이었다.
일하는 중 잠시 휴식 시간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잠시 밖에 나와 담배 피는 시간은 머리를 식히는데 제격이었다. ⓒ tvn 드라마 '미생' 중
 
얼마 전 회사에서 회식을 했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선배가 얼큰히 취하더니 예전에 웃픈(웃기고 슬픈) 일화를 늘어놓았다. 골초인 선배는 그때도 일하다가 종종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장님에게 보고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김 대리는 보면 자주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네. 나같이 안 피우는 사람은 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김 대리 월급 일부를 깎아야 하는 것 아냐. 허허."

뼈있는 농담이었다. 그 말에 선배는 한동안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그래도 꿋꿋이 담배를 피웠다며 해맑게 웃었다. 회식 분위기를 띄우려고 예전 이야기를 했는데 분위가 묘하게 흘렀다.

"저는 왠지 그분 마음이 공감이 가는데요. 솔직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수시로 밖에 나가잖아요. 어쩔 땐 나도 담배를 피워 볼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네요."
"그래도. 담배 피우는 것까지 간섭하는 것은 아니지. 명백히 개인의 기호 문제인데."
"에이. 꼭 담배 피워야만 밖에 나가나. 그냥 잠깐 바람 쐬러 나갈 수도 있잖아." 
"담배 피우는 사람은 잘 몰라요. 그냥 나가는 것이 어디 쉽나요."


그저 웃자고 한 이야기에 한바탕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담배 피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팽팽한 의견이 오가는 도중에 회식이 종료되었다. 한창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이 문제로 금세 식었다. 그동안 의식하지 않았던 일이라 신선하면서도 나 또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30대 초반에 담배를 끊었다. 그 기간이 벌써 15년이 다 되었다. 회사에서 우리 팀 5명 중 흡연자는 3명, 비흡연자는 2명이다. 흡연자는 평균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점심을 제외하곤 종일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무직이라 업체 면담이 있거나 외근을 나가지 않는 한 바깥 공기 마실 일이 드물었다. 담배라도 피웠다면 주기적으로 나갔을 텐데. 사무실에 있으면 귀찮기도 했고, 일하다 보면 까먹기도 했다. 그렇다고 종일 집중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야근을 위해 팀원들과 저녁 식사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흡연하는 동료들과 같이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이야기꽃이 피었다. 주제는 다양했다. 골치 아픈 회사 문제, 이상하게 사면 떨어지는 주식, 사춘기에 말썽부리는 아이, 때론 시시껄렁한 농담까지 10분에서 15분 남짓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지 몰랐다.

사무실에서 보는 어둡고 무거운 얼굴이 아닌 한결 편한 모습에 나 역시도 긴장이 풀렸다. 담배 피우는 동료들은 그렇게 업무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잠시 일에서 벗어나 환기하는 시간은 오히려 업무 효율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물론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만 빼곤).

그 뒤로 같이 담배를 필 수는 없기에, 나도 작은 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두 가지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먼저 '물 마시기 알람'이라고 시간대별로 물 마시는 시간을 설정하면 알람이 오는 애플리케이션 활용이다.
 
물 마시기 알람 이 어플리케이션 덕분에 주기적으로 물을 마시러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났다.
물 마시기 알람이 어플리케이션 덕분에 주기적으로 물을 마시러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났다. ⓒ 신재호
 
알람이 울리면 억지로라도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나 정수기까지 걸어가 물을 마셨다. 다 마신 후 물컵 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누적해서 내가 얼마나 물을 마셨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거리지만 몸도 움직여보고, 물 마시는 양도 점검하면서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졌다. 하루 2리터 물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물론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니 무조건 따르지는 말자). 알람에 맞추어 실천하면 '잘하셨어요!'라고 응원 메시지도 받으니 재미도 있고, 은근히 목표를 달성하고픈 승리욕도 생겼다.

다른 하나는 오후에 3시쯤 가장 나른한 시간, 옆 부서 친한 동료와 만나 회사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일이다.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주변 풍경도 눈에 담으며 노곤한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가끔은 서서 하늘도 보고, 팔을 죽 뻗어 잔뜩 뭉친 어깨도 풀었다. 하루에 만 보는 걸으려고 하는데 산책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휴식의 참맛을 알고부터 왜 진즉 못했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랬다면 만성 손목터널 증후군이나 거북목에서도 조금은 벗어나지 않았을까. 요즘은 오후 그 시간만 되면 몸이 먼저 들썩거렸다. 

직장인은 일에 충실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잠시나마 자신을 위한 휴식 시간을 갖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담배나 커피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산책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시원한 공기를 마시러 밖에 나가면 어떨까. 붙들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젯거리에서 잠시 해방될 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회사#휴식#흡연#산책#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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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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