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
주말에 같은 패턴의 셔츠를 세 벌 완성했다. 이 셔츠는 이전에 세 벌 만들어 보았다. 하나는 잔골의 코듀로이 원단으로 또 하나는 린넨으로. 린넨 셔츠는 아이 옷장에 걸어두고 코듀로이 셔츠는 내 옷장에 넣었다.
아이는 그 셔츠에 조끼를 덧입고 아이돌 언니들 사복패션 같다고 좋아했다. 어느새 자라서 내 옷을 같이 입는 걸 보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나 싶어 빙그레 웃음을 짓다가 아이를 갓 출산한 시절로 타임슬립을 하곤 한다.
견디는 시간 속에서 배운 것
그 기억 속에는 빨간 원숭이 같던 아기를 방에 재워놓고 식탁 의자에 앉아 방금 나온 방문을 아득하게 쳐다보던 삼십대 초반의 내가 있다. 그때 나는 다시 저 방문을 열면 다 큰 아이가 누워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워주지 않아도 되고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만 집에 두고 한나절 바람을 쐬고 와도 되는 나이의 아이로 자라 있었다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이십대 초반에도 했었다. 대학 4학년 때 IMF가 터졌고 취업은 전에 없이 힘들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취직을 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더 이상 버틸 돈도 명분도 없어서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매일 아침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생활이었다. 대학을 다닌다고 하면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시절이 끝나고 '요즘 뭐하니?'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시절이 온 것이었다.
그즈음 팔뚝에 이마를 얹고 낮잠을 청할 때면 '자고 일어나면 서른 다섯살이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소원을 빌며 잠들었다. 그러면 취직이든, 결혼이든 뭔가 결론이 나 있을것만 같아서였다.
어려운 부분은 다 건너뛰고 싶어했던 어린 나는 매일매일 바라던 어떤 기적도 만나지 못했다. 마침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그 아이가 나와 같은 사이즈의 옷을 입게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저 하루하루가 흘렀을 뿐이다.
가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게 일어나있길 바랐던 기적은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다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루하루 잠에서 깨어나 그날그날 주어진 일들을 해오는 사이 아이는 먹여주고 씻겨주지 않아도 자기를 돌볼 수 있을 만큼 컸다. 아이 걱정 없이 하루종일 일을 보고 와도 괜찮을 시기가 온 것이다. 어쩌면 기적은 뭔가를 염원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셔츠를 세 번째로 만들었던 것은 얼마 전 학교 축제에서 반별로 치어리딩 무대를 선보이는데 흰 셔츠를 입기로 했다고 해서였다. 치어리딩을 할 때 입을 거라 팔을 격렬하게 돌리며 움직여도 부대끼지 않을 디자인의 셔츠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 셔츠를 떠올렸다.
나는 바느질을 해온 오랜 시간 동안 셔츠포비아(공포증)가 있었다. 흐물흐물 움직이는 천을 자를 대고 접은 종이처럼 반듯하게 접어 박아야 하는 앞단, 정확하게 일자로 박아 날렵하게 뒤집어야 하는 카라, 곡선이지만 직선의 천 위에 박아야 하는 카라밴드, 트임이 있는 소맷단, 다 완성된 옷 위에 칼을 대어야 하는 단추구멍까지.
셔츠를 구성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걸려넘어질 부비트랩이 가득한 정글을 때가 묻으면 안 되는 흰 드레스를 입고 무사히 지나가야 하는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셔츠를 만들어 입고 싶으면서도 셔츠를 만들 생각을 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입는 타협을 더 많이 해왔다.
셔츠 만들기 공포가 없어질 때까지
둘째를 낳고 출산휴가 기간에 처음 재봉틀 바느질을 시작했으니 둘째가 중2가 되는 올해면 햇수로 15년간 바느질을 해 온 셈이다. 그렇게나 오래 바느질을 하고도 셔츠 만들기는 자신 없는 사람으로 계속 남고 싶지는 않았다.
이십대, 삼십대의 나라면 자고 일어나면 셔츠포비아가 극복되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소원을 빌며 고뇌속에 잠들었겠지만 이제는 안다. 셔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그저 오늘 한 번 더 만들어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아이가 이 셔츠를 입고 치어리딩을 하는 모습을 보니 예뻤다. 신이 나서 새해의 목표를 '셔츠포비아 극복하기'로 정했다. 그러기 위해 셔츠 백 벌을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매우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이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하나씩 만들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신이 난 김에 친구들 몇 명에게 이 셔츠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셔츠를 만들 때 겪는 어려움 중 앞단추와 소매 트임을 생략한 패턴이라 이 패턴으로 셔츠를 만들어서 셔츠포비아를 극복하겠다는 것은 정면승부 전략은 아니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조각내어 만든 백신을 맞고 항체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감염되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듯, 처음부터 어려운 셔츠에 도전하다 지레 나가 떨어지는 것보다는 조금 만만한 이 친구로 도전을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정당화해 본다.
이제 6벌을 만들었으니 셔츠포비아 극복까지 94벌이 남았다. 기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조금은 눈치를 챈 나는 이 목표가 정말 이루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여정에 어떤 셔츠들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나에게 남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크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아는 사십대의 나는 이삼십대의 나처럼 매일매일이 고통스럽지 않다. 이삼십대의 내가 견뎌낸 시간들이 준 가르침이 감사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