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아들을 잃고 살 수가 없습니다."
용산 대통령실 정문 앞 아스팔트 보도 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아들 이지한씨를 잃은 엄마 조미은씨가 무릎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로막는 경찰들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오열했다. 아버지이자,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인 이종철씨가 31일 참사 이후로는 처음으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려던 중, 경비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자 벌어진 일이었다.
경찰 "집시법상 못한다는 의미 아니지만..." 경호구역 이유로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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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 앞 아스팔트 무릎으로 긴 이태원 참사 유가족 "윤석열 대통령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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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20여 분간 땅바닥에 누워 소리쳤다.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내 뱃속에서 열 달을, 유산될까봐 조심히 길렀다. 제 전부였다. (배우였던 아들은) 다음 작품이 MBC 드라마 주인공이었다. 그게 쉽나. 늘 못 먹었다. (하늘로) 가는 날도 못 먹었다. 배가 너무 홀쭉했다"고 울부짖었다.
그는 부축하며 일으키려는 경찰을 향해 "붙잡지 마라"고 소리치면서도 "제발 도와주세요. 윤석열 대통령을 불러주세요. 지한이 엄마가 기다리겠다고 전해주세요. 용서해 줄 거라고 말해주세요"라고 간청했다. 조씨를 달래던 남편 이씨는 자신의 패딩 점퍼를 벗어 아내에게 덮어주고, 이내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 베게로 아내의 머리를 받쳤다.
1인 시위를 위해 팻말을 접어 들고 각자 걸어가던 유족은 총 5명. 애당초 길을 지나던 유족들을 에워싸고 통행을 저지한 것은 경비 경찰들이었다. 현장에서 이태원참사시민대책위 소속 변호사가 1인 시위가 가능한 법적 근거를 제시했지만,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상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라면서도 경호 구역이라는 해명을 반복했다.
경찰 : "가신다면서요. 지나가신다면서요. 왜 막느냐면서요."
유가족 : "그날은 다 어디가 있었습니까. 이 경력들이. 다 대통령 경호하고 있었습니까."
경찰 : "모르죠. 돌아가는 사정은 모르죠."
유가족 : "아니 애들은 다 죽게 만들어놓고, 네?"
"왜 막느냐"는 유가족들의 항의와 "(대통령실) 건너편에서 하라"는 경비대의 저지가 맞붙는 동안, 일대 경력은 계속 추가로 배치됐다. 이씨가 현장에서 직접 "대통령실에서 한 분이라도 나오시면 안 되냐"고 요청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씨는 드러누운 아내의 곁에서 외쳤다.
"우리 때문에 이렇게 경찰이 많이 왔는데...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10월 29일은 뭐했냐고요, 다!"
실랑이 끝에 결국 유가족들은 대통령실 횡단보도 건너편인 전쟁기념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국가 책임 인정하고 대통령은 사과하라" 등의 메시지를 피켓에 담았다. 경찰은 이후 이 대표가 "피켓을 접고 가겠다"며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에도 통행을 저지했다. "전력이 있으니 (못 간다)"는 이유였다.
조미은씨는 전쟁기념관 앞 벤치에 앉아 한참을 오열했다. 두 여경이 조씨의 등을 쓸고 위로하며 곁에 섰다. 조씨는 추위를 걱정하는 경찰들에게 "이름을 외울게요, 대통령보다 낫네요. 너무 따뜻한 분들이구나"라면서 "전 어느 날부터 안 추워요. 따뜻한 곳에 있는 내가 너무 밉거든요. 내 아들이 추운 데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대통령 사과 요구한 유가족들, 159배 끝 한마디 "이것밖에 못 해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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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사과 요구한 유가족들, 159배 끝 한마디 "이것밖에 못 해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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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같은 날 오전 10시, 이태원시민분향소에 모인 유가족들은 시민들과 함께 다시 영정 앞에 섰다.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정쟁에서 자유로운 독립조사기구 설치,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기 위한 159배를 올리기 위해서다. 159배는 이태원참사로 희생된 159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정한 숫자다.
유가족들은 159배를 올리기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난해 12월 16일 보냈던 여섯 가지 요구사항이 답변 없이 행정안전부로 이송, 지난 9일 약 한 달 만에 '민원처리 안내'라는 짧은 공문으로 되돌아온 사실을 공개했다. 해당 요구는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책임규명 ▲피해자 참여 보장 진상규명 ▲참사 피해자를 위한 인도적 조치 ▲희생자들의 기억과 추모를 위한 조치 ▲2차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 등이다.
유가족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49재 시민추모제를 마치고 유가족들이 요구사항을 전달하러 가자 참사 당시에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경찰들을 대통령실 인근에 무더기 배치해 유가족들을 막았던 기억이 난다"면서 "대통령이 진정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을 생각했다면 참담한 죽음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면, 이렇게 성의 없이 유가족들을 대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59배를 위한 구령에는 이름을 드러내길 희망한 102명의 희생자들의 이름도 함께 포함돼 있었다. 그 이후에는 "이름 불리지 못한 사람들"을, "이름 불리지 못한 사람들의 가족들을 위로하며" 절을 올렸다. 153배 무렵부터 절을 마치는 동안엔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유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고, 일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부축했다. 절을 마친 뒤 한 유가족은 영정을 바라보며 "미안해, 너희들한테 이것밖에 못 해줘서 미안해"라고 했다.
한편, 유가족들은 오는 2월 4일 이태원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앞두고 정부서울청사, 용산 대통령실에 이어 오는 1일에는 국회를 찾을 예정이다.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진행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