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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 픽사베이

글을 쓸 때 제목을 먼저 뽑아야 할까? 나중에 뽑아야 할까? 다소 김빠지는 말이겠지만 정답은 없다.

언론사의 경우, 취재 기자가 직접 뽑은 제목으로 기사가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편집기자의 손을 거쳐 나간 제목도 있을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블로그나, 브런치 등 각자의 글쓰기 플랫폼에 쓰는 글의 제목은 대부분 글을 쓴 사람이 직접 지은 제목일 것이고. 하나씩 짚어보자. 

제목 먼저 or 제목은 나중에

우선, 제목을 미리 정하게 될 때가 있다. 지난해 12월, 가수 이효리가 해외로 입양 보낸 강아지들을 만나러 가는 프로그램 <캐나다 체크인> 관련해서 시민기자들에게 시청기를 청탁해 보려고 후배와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후배가 말했다.

"제가 써볼까 하고 프로그램을 보긴 했는데... 한번 써볼까요? ㅋㅋㅋ"
"쓸 거리가 있어요?"

"제목만 지어놨어요."
"뭔데요?'

"캐나다 체크인, 두 번은 못 보겠습니다."


'왜 두 번은 못 보겠다'는 건지 그 이유가 단박에 궁금해졌다. 그런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글로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특히 후배는 반려견을 키우며 임시 보호 경험도 있어 필자로 딱이었다.

글을 검토하는 내내 제목을 생각하며 읽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지만, 이번 사례처럼 제목부터 떠올리고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취재기자는 취재 도중에 제목이 떠오르는 일도 있을 테고.


제목을 먼저 짓게 되면 뭐가 좋을까? 제목을 먼저 짓는다는 건,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핵심 내용을 정하고 글을 쓴다는 말이다. 목적지가 분명한 여행은 좀처럼 길을 잃는 법이 없다. 그처럼 글쓴이가 글의 주제를 제목 한 줄로 정리해 두면 목표한 방향으로 충실하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마치 경주마처럼 골인 지점만 보고 쓰게 되는 거다. 분량을 줄일 때도 제목은 좋은 기준점이 되어 준다. 쓸데없는 대목은 빼면 되니까.

디자이너가 포토샵에서 수많은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해 나가는 걸 보며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 있다. 디자이너 역시 철저하게 계획된 목적을 향해 레이어를 만들고 수정하고 삭제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업무 현장에서는 글을 쓰고 난 뒤 제목을 뽑는 일이 더 잦은 것 같다. 이런 경우에는 기사의 시의성과 사람들의 관심도, 기사의 전체 분위기 등 좀 더 다양한 사항들을 고려해서 제목을 지을 수 있다.

제목을 뽑을 때의 마음은 글을 쓸 때의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이 글을 독자에게 어떻게 잘 어필할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따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미 있는 기사라도 의미만 부각하면 외면당하기 쉬운 세상 아닌가.

후배가 쓴 글 역시, 최종적으로는 한 번 더 고려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이효리의 캐나다 체크인, 두 번은 못 보겠습니다'로 독자를 만났다. '캐나다 체크인'과 '이효리의 캐나다 체크인', 이 두 문장을 내밀었을 때 독자 반응이 다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체크인'이라는 방송을 모르는 사람도 '이효리의 캐나다 체크인'이라고 하면 궁금하고 반가울 수 있다. 당신이라면 뭘 선택하겠는가. 나부터도 후자다. 독자의 선택도 당연히 이효리였다(실제로도 이 기사는 당시 인기기사 1위를 기록했다).


좋은 제목은 좋은 글에서부터
 
 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싱싱하지 않으면 맛있다고 할 수 없다.
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싱싱하지 않으면 맛있다고 할 수 없다. ⓒ 픽사베이

언젠가 '제목을 잘 뽑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럴 때 내가 말했다. "원고가 좋으면 제목도 잘 나온다"고.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다. 과일 포장을 아무리 잘한다 한들, 과일이 싱싱하지 않으면 맛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제목도 그렇다.

간혹 글보다 제목이 튀는, 다소 '오버'해 제목을 뽑는 경우를 보게 될 때가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수위를 조절한다. 잘 지은 제목은 시너지를 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글의 분위기를 해친다. 이런 태도는 글쓴이에게 민폐를 주는 행위이기도 하고(제목이 이상하면 글 쓴 사람이 욕을 먹는다, 또한 잘 못 뽑은 제목에 항의하는 경우는 많아도 잘 지은 제목으로 칭찬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요한 건 튀는 제목이 아니라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글이다. 좋은 제목에 부합하는 완성도 있는 글을 쓰려면 글을 쓰는 사람이 쓰려는 걸 맞게 쓰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다면 뭐가 부족한 것인지, 어떻게 보강하면 되는지 하나씩 다시 점검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명쾌한 답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글을 쓰는 일을 두고 '나에 대해 잘 알게 된다'고 하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혼자 묻고 답하는 일이 많아서. 많이 질문할수록 좋은 글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내가 직접 글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을 하면서 뽑는 제목은 대부분 검토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오랜만의 산행', '봄의 길목에서' 등 글쓴이가 직접 지어서 보낸 제목이 다소 밋밋하고, 궁금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어떤 글의 내용인지 뻔하게 유추가 되는 제목이라면 고친다. 독자가 끌릴 만한 문장으로.

편집기자가 글쓴이의 제목을 손보는 가장 큰 이유는, 글쓴이가 정성을 다해 취재하고 공들여 쓴 좋은 글을 더 많은 독자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내가 편집한 기사가 영향력 있는 글이 되고,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을 때 일하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하지만 감동도, 공감도, 정보도, 새로움도 없는 글을 제목만으로 어필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목을 먼저 쓰는 게 나을지 나중에 쓰는 게 좋을지에 대해 꼭 답을 해야 한다면, 그건 글 쓰는 사람이 '선택'할 문제라고 하겠다. 본인이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취하면 된다. 제목 한 문장을 포함해서.

덧붙이는 글 | 제목 뽑기에 대한 모든 질문을 환영합니다. 기자에게 쪽지로 궁금한 내용을 보내주시면 새로운 글에서 응답하겠습니다.


#제목 뽑기#글의 제목#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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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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