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단골이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다. 단골이는 우리 집에 수시로 들락거리는 길고양이다. 연두색 눈에 검은 등, 흰 하부와 다리를 가진 제법 예쁘게 생긴 길고양이다. 지난해부터 매일 드나드는 녀석을 '단골'이라 부르게 됐다.
아 그런데 이 녀석이 담요를 터느라 잠깐 거실 창을 열어놓은 틈을 타 슬그머니 집 안으로 진입하고 있지 않겠는가. 먹이는 줄지언정 집안으로 들일 생각은 없던 나는 그 애가 집 안으로 진입한 광경에 당황해 그만 고성을 지르고 말았다. '야 깨끗이 청소 다 해놨는데 그건 아니지' 하는 마음에 소리를 너무 크게 질렀나. 이 녀석이 내 소리에 얼마나 놀랐던지 후다닥 달아나버렸다.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달아나냐고, 미안하게...
단골이를 익히게 된 건 지난 봄 무렵이다. 내가 사는 집은 단독주택인데, 남향집이다 보니 양지바르다. 해가 잘 들어 지나가는 길고양이들이 볕을 쐬며 쉬어가곤 한다. 그러다 매일 오는 한 녀석이 있어 '재가 또 왔네' 하게 됐다. 식구들끼리 단골로 드나드는 그 애를 단골로 부르게 됐다.
물론 단골은 제 이름이 작명된 사연이야 전혀 모르지만,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되니 뭔가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는 뭘 먹고 사나' 걱정하게 된 것도 이름을 부르게 되면서다. 안 오는 날이면 궁금해졌다.
지난 여름처럼 비가 많이 오거나 요즘같이 추울 때는 더 마음이 쓰인다. 며칠 안 보이면 어디 아픈가 혹시 사악한 자의 해코지로 다친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러다 떡하니 밥 달라도 거실 창 앞에 꼬리를 말고 앉아 있는 게 눈에 띄면 어찌나 반가운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남편이 일터에서 기르는 개와도 안면을 트기 어려워하던 내가, 고양이 사료를 사 볼까 하는 말에, 남편이 이 무슨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냐는 표정을 하고 나를 봤다. 그러다 온 동네 고양이 다 몰려들면 어쩌냐기에, 무슨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했더니, 어디서 주워들은 말들을 쏟아내며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아니 개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길고양이 한 마리 먹이 좀 줘보겠다는 데 왜 그리 인색하냐고 대꾸하고는, 남편 단골 사료 가게에서 고양이 사료를 좀 사 오라고 부탁했다.
부탁한 지 두 주가 지나도록 남편은 깜박했다며 오늘 사올게 내일 사올게 하며 번번이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니 그걸 왜 기다리나, 슈퍼에도 있던데. 동네 슈퍼에 가보니 종류가 많았다. 그게 그것 같아 고민하다 하나를 점지하고 구매했다. 빈 사각 두부 통에 사료를 넣어두고 기다렸다.
드디어 단골 입장. 두부 통에 접근해 입질하는데 몇 개 먹더니 그만이다. 맛이 없나? 그렇게 싸구려도 아닌데 왜 안 먹지? 며칠을 줘 봐도 안 먹는다. 거 참 이상하네. 내 안달 난 혼잣말을 듣던 딸애가 검색해 보더니 참치나 맛살 같은 걸 잘 먹는다고 한다. 쓰다 남은 게맛살이 생각나 뜯어 넣었다. 첨엔 킁킁대더니 어머,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먹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갔어도 어찌나 흐뭇하던지. 그래 너도 먹고살아야지.
애초 버릇을 잘못 들여 이젠 사료를 절대 먹지 않는다. 고양이가 사료를 먹어야지, 만날 맛살이랑 참치를 달라면 어쩌니. 하루는 이번엔 버릇을 고치리라 다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했다. 단골이 사흘이 지나도록 사료를 건드리지 않던 다음날, 나는 결국 못 견디고 다시 참치 캔을 따고 말았다.
매일 오고, 눈을 맞추고, 내게서 밥을 얻어먹어도, 단골은 절대 곁을 주지 않는다. 먹이를 주고 거실 창을 닫아야만 그제야 먹이에 다가와 먹기 시작한다. 밥을 먹을 때도 어찌나 주변을 살피는지 야생살이의 긴장감이 전해진다. 단골의 아는 척(?)은 단지 먹이 주기 전까지 약간의 아양(?)만 있을 뿐이다.
거실 창 앞에 앉아 털을 고르거나,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 있거나, 제 꼬리로 발목까지 목도리 두르듯 감싸 안고 앉아 있거나, 어쨌든 거실 창을 통해 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혹시 들어오고 싶은 건가? 어느 날은 바빠 밥을 좀 이따 줘야지 하고 보면 포기하고 가고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반드시 오후에 다시 온다. 그 녀석이 출근하는 시간은 대략 10시 전후인데 빠를 땐 9시에도 온다.
버럭 사건이 있던 날은 단골이 좀 늦게 왔는데 청소 중이었다. 담요만 털고 밥 줘야지 하던 참인데, 어느새 집안으로 기어들어가려다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놀라 다시 안 오겠구나, 되게 미안했다.
그런데 웬걸. 아침에 신문보다 일어나 화장실 가려는데, 거실 창 앞에 오도카니 앉아 집 안을 들여다보는 단골이 보이지 않은가.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단골이 왔냐, 혼자 인사한다. 단골은 문을 열면 즉각 물러나서는, 아 됐고 밥이나 주시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알았다 알았어. 단골! 어제는 미안했고, 밥 많이 먹어. 오늘도 또 참치 캔을 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