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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인물들이 많습니다.

무강(武剛) 문일민(文一民:1894~196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이승만 탄핵 주도·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문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일민이라는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무강 문일민 평전>을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중국 측의 후원금을 둘러싸고 벌어진 독립운동 진영의 내홍은 결국 '항저우 판공처 습격 사건'이라는 폭력 사태를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한국독립당은 상하이파(이유필)·항저우파(조소앙·김철)·자싱파(김구)로 분열됐다. 특히 습격 사건의 배후에 자싱파가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항저우파와 자싱파 사이의 골은 깊어졌다.

임시정부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이러한 사실이 중국 측에 알려지게 되면 어렵사리 쌓은 신용을 잃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는 수습을 위해 6월 상순 자싱에서 두 차례 국무회의를 열었다. 국무회의에서는 항저우 판공처 습격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한국독립당 이사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하순에 항저우 시내 한 소학교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당시 이사회에는 사건 관련자인 조소앙·김철·김석·김구 등이 참석했다. 또한 판공처 습격 사건에 가담한 박창세·김동우를 호출하여 습격 사건의 전말을 보고토록 한 뒤, 사건의 진상조사위원으로 한독당 이사 박찬익·엄항섭·김두봉을 선임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오히려 김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습격 사건의 배후에 자싱파가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적개심을 품게 된 항저우파는 물론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상당한 후원금이 들어왔음에도 자싱으로 떠난 뒤 상하이에 남겨진 한인들을 돌보지 않는 김구에 대해 상하이파 역시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이에 1932년 10월 5일 한독당 이사장 송병조는 김구의 한독당 복귀를 촉구하고자 김구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구는 부재 중이라는 이유로 만남을 거부했다. 이에 박창세·송병조·이유필 등 한독당 간부들은 김구의 금전 문제를 조사하여 성토하기로 하고 김철의 공직 피탈 취소를 약속했다. 따라서 김구의 자싱파만이 한독당에서 배제되는 모양새가 됐다.
 
1933년 자싱(가흥) 피난처에서 김구, 이동녕, 엄항섭
 1933년 자싱(가흥) 피난처에서 김구, 이동녕, 엄항섭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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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의 책임이 없다" 석연찮은 진상조사 결과

"본 건의 책임자는 지주칭 한 사람인 것으로 판명되어 조소앙·김철 2인은 하등의 책임이 없다."

1933년 1월 15일에 개최된 제6차 한독당 대회에서 조소앙과 김철은 <시사신보>에 안창호 비난 기사를 사주했다는 혐의를 벗었다. 대신 "조소앙과 김철, 김석 등에게서 들어 아는 것"이라고 변명했던 중국인 지주칭의 '단독 행위'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시사신보>에 지주칭이 직접 사죄문을 올리게 하는 것으로 길고 길었던 항저우 판공처 습격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진상조사 결과는 왠지 석연찮다. 조소앙·김철이 모든 혐의를 벗었다고 하지만, 문일민 등이 판공처를 습격해 추궁했을 당시 그들 스스로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건 직후 조소앙·김철이 책임을 지고 국무위원직에서 사퇴했던 것을 보면 이들에게 정말 '하등의 책임'이 없었을까?

그렇다면 이들에게 내려진 '무혐의' 결론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판공처 습격 사건 이후 자싱파를 견제하기 위해 상하이파와 항저우파가 다시 손을 잡았던 사실에서 미뤄봤을 때 결국 김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정치적 타협을 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로 당시 김구가 한독당과 대립적 관계에 있던 한국혁명당 세력을 이용해 임시정부의 실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6차 대회에서는 김구 세력(박찬익·안공근·엄항섭)이 새로운 표적이 됐다. 임시정부와 한독당 업무에 대한 '직무유기'로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결국 이들의 거취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왔다.

다만 김구는 독립운동의 원로인데다 상하이를 떠나 자싱에 머물고 있는 것은 일제의 마수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예외로 하고,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서만 한독당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로 인해 한독당 내에서 김구 세력의 입지는 매우 약화됐다. 대신 이사장 송병조 이하 이유필·최석순·김두봉·장덕로·차리석·박창세·김현구 등 흥사단 출신들이 대거 간부로 재선출됐다.

즉 한독당 내에서 김구 세력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주도권이 송병조·이유필 등 상하이파에게 넘어간 것이었다. 이에 따라 송병조·이유필 등과 함께 '대한교민단'을 이끌던 문일민 역시 해당 대회에서 감사(監事)로 선출되는 등 간부급으로 진출했다.

교민단 이끌며 친일파 처단 공작

대한교민단은 임시정부의 감독을 받으며 상하이 한인들의 교육·위생·직업 소개·민적(民籍) 증명 등의 사무를 관장하는 자치기관이었다. 한편 국내에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므로 각 도별 임시의정원 의원 선출의 기능도 대행하는 임시정부의 기반 조직이기도 했다.

문일민은 1933년 4월 27일 개최된 이사회에서 송병조(정무위원장)·박창세와 함께 정무위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교민단은 정무위원 3인의 합의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였다. (3인 중 1인이 정무위원장)

새롭게 선출된 지도부는 프랑스 관헌을 상대로 한인들의 체포 및 석방 문제에 대해 교섭하는 한편 치안조직인 '의경대'를 동원하여 그해 8월 친일 밀정 석현구를 암살하고 상하이 한국인친우회 위원장 유인발을 저격하여 중상을 입히는 등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다. 

그런데 그해 8월 정무위원장 송병조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로 피신하는 바람에 교민단 조직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 이때 문일민은 홀로 상하이에 남아 교민단을 이끌며 혼란에 빠진 교민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독립당 이사장 및 대한교민단 정무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송병조(1877~1942)
 한국독립당 이사장 및 대한교민단 정무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송병조(1877~1942)
ⓒ 흥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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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일민의 <이력서>와 <공적서>에 의하면 1933년 대한교민단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이는 정무위원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일민이 정무위원장(단장)을 역임했다는 기록은 해당 기록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송병조가 항저우로 피신한 1933년 8월부터 김홍서가 송병조의 후임으로 정무위원장에 취임한 1934년 1월까지 정무위원장 자리가 공석이었으므로 그 사이에 문일민이 잠시 정무위원장(대리)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에 문일민 홀로 남아 교민단을 이끌었다는 기록이 그를 뒷받침한다.

1934년 1월 김홍서가 정무위원장에 취임하자 문일민은 김홍서·양기탁과 함께 각각 삼일절과 경술국치일이 되는 3월 1일과 8월 29일에 <3.1절 기념선언>, <국치기념선언>을 발행하는 등 교민단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35년 7월 민족혁명당이 결성되고 김홍서와 문일민 등이 항저우·난징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교민단 역시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 14부에서 계속 -

[주요 참고문헌]
1) <문일민 이력서>
2) <애국지사 고 문일민 공적서>
3) 경성헌병대장, <韓國獨立黨ノ第六次全體大會ノ狀況ニ關スル件(通牒)>, 1933.2.2
4) 김정명 편, <朝鮮獨立運動> 2, 原書房, 1967
5)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4, 1972
6)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28·31, 국사편찬위원회, 2008·2009
7)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3, 국사편찬위원회, 1973
8) 김희곤, <『中國關內 韓國獨立運動團體硏究>, 지식산업사, 1995

태그:#문일민, #무강문일민평전,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교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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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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