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그냥 집 같아요."
아이들이 '작공'을 찾는 이유다. 서울 은평구에 마련된 대안교육공간이자 위기청소년들의 버팀목과도 같은 곳이다. 여기 오면 밥을 먹을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다.
아이들은 작공을 들락거리며 세상 밖으로 한 발 내딛어도 될지 가늠해본다. 그 시간은 몇 달이 될 수도 어쩌면 1년, 2년이 될 수도 있지만 작공은 그런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지지하며 기다린다.
"밥 시간 맞춰오면 얼마나 좋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그럴만한 준비가 덜 돼 있어요."
작공 선생님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 밥상을 차려야 하는 이유다. 밥 먹는 것만 그럴까?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간 맞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기 위해 선생님들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전화를 돌린다.
10년째 작공을 지키고 있는 장보성 선생님은 "생활시설에서 성장하고 퇴소하고 자립을 준비하던 청년들이 서럽고 억울한 존재조건을 이겨내고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대학을 갔어요. 이제 비로소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청년들이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이 필요해요"라고 전했다.
올 초에는 8명의 작공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대학은 사치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한 발 한 발 용기를 내고 도전한 결과다.
"'제 주제에 대학을 어떻게 가요' 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대학을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을 해요. 계속 아르바이트 인생으로 사는 것보다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고득점에 도전한 끝에 마침내 대학합격 소식을 들을 때 얼마나 좋아하는지..."
장보성 선생님은 아이들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다 잠시 말을 멈춘다. 쉽지 않은 도전과정, 아니 그저 쉽지 않다는 말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우여곡절과 아픔 그리고 성장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돈을 버는 게 먼저지, 대학은 사치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합격소식을 듣고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해요. 이런 장면은 단지 대학합격의 기쁨으로만 보면 안 되고 아이들이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 지점들로 이해해야 해요. 작공 아이들은 마음을 내서 시도하고 그 결과를 얻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거든요. 대학에 가서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자각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계속 할 생각이에요."
행정주체 서울시→시교육청으로 바뀌면서 공백 발생
하지만 올 초부터 위기청소년들의 버팀목이 되고 주고 있는 작공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만으로도 빠듯한데 그동안 서울시로부터 받던 지원이 모두 중단됐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임금은 물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줄 수 있는 운영비,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임대료 등이 모두 사라졌다.
작공을 비롯한 학교밖청소년을 위한 기관들은 그동안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2022년 8월 서울시의회가 '서울시대안교육기관지원조례'(2019년 제정) 폐지안을 발의하며 대안교육기관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서울시의회는 2022년 1월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교육감이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권한과 책무를 갖게 됐기에 관련 조례를 계속 존치할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입장이다.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에는 아직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실제 지원을 규정한 조문이 마련되지 않은 반면 '서울시대안교육기관지원조례'제7조에는 서울시가 대안교육기관들을 지원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구체적 지원체계를 시교육청이 수립하기 전에 서울시 조례가 폐지되면 서울시에 신고 된 50여 개의 대안교육기관들은 교사 인건비, 교육프로그램개발비, 수업료지원비(저소득층 가정), 학생급식비 등이 모두 끊기게 된다.
이에 서울시대안교육기관협의회를 중심으로 조례 폐지 강력 반대에 나섰지만 시의회는 계획대로 지난해 12월 22일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시는 당장 지난 1월부터 대안교육기관 지원을 중단했다.
대안교육기관 행정주체가 서울시에서 시교육청으로 바뀌면서 작공과 같은 대안교육기관은 시교육청에 다시 기관 등록 및 지원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다. 시교육청은 이제야 관련 조례를 마련한 단계다. 대안교육기관지원 인력조차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작공 교사들은 "시교육청 등록, 대안교육기관지원사업 공고, 지원사업 심사와 선정, 실지원에 이르기까지 최소 행정공백이 약 6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며 "학교밖청소년들의 교육권을 지키고 대안교육기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밥 적게 먹을 테니, 작공 문 닫지 말아 달라"
작공의 태동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 놀이터를 배회하던 아이들이 건넨 첫마디는 "밥 좀 주세요"였다.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1년 2월 그렇게 만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처음에는 역촌 중앙시장 안에, 2012년 말에는 갈현동 길마공원 앞에 마련했다. 작공이라는 이름도 아이들이 지었다. 작은 공원, 작심하고 공부한다, 작지만 큰 작업장 등의 의미를 담았다.
이렇게 작공은 학교밖청소년 사업이 본격 시작하기도 전에 은평 지역사회의 따뜻한 마음이 모아져 만들어진 공간이다. 학교밖청소년, 위기청소년들은 작공을 오가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허전한 마음을 채워나갔다.
"정말 문을 닫아야 할까? 6개월을 어떻게 버티지?" 갑작스런 행정공백에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 장보성 선생님은 수차례 자문했다고 한다.
"작공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작공이 많이 힘들어. 우리가 같이 먹을 밥값도 없고, 공간 임대료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젠 너희도 컸으니 작공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심각한 질문에 아이들의 답변은 간단했다.
"돈 없는데 왜 말 안했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디 가서 밥 먹어요?"
"5년만 버티세요. 그러면 우리가 돈 벌게요."
장보성 선생님은 "아이들이 작공 문 닫으라는 말은 안 하더라. 돌아가면서 알바를 하겠다, 밥을 적게 먹겠다, 갑자기 없어지면 안 된다는 말만 하더라"며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던 아이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고 이만큼 성장했는데 이렇게 끝내는 건 아니란 걸 새삼 깨달았다"고 전했다.
생색내기 지원말고 기다려 주는 지원 필요
현재 작공에는 40여 명의 아이들이 등록돼 있다. 교육과 돌봄의 사각지대, 행정지원의 테두리 밖에 있던 위기청소년, 자립준비청소년 등이 이 곳을 버팀목 삼아 미래를 꿈꾸고 있다.
"작공에서는 자립준비청소년들과 8년째 인연을 맺어오고 있어요. 그 청소년들의 친구, 언니, 동생들과 조금씩 관계를 맺고 알아가고 성장하는 중이죠. 자립준비청년센터를 만들면 아이들이 막 올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현장에서 만난 위기청소년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힘이 든다. 성가시기도 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거부당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한 상처가 깊은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이 자기 발로 찾아와서 밥도 먹고 상담도 하면 좋지요. 하지만 그럴 힘조차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우리가 찾아가고 그 아이들이 문 밖으로 한 발 내딛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요."
장보성 선생님이 전하는 "한 발 내딛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말은 곧 작공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눈에 바로 보이는 성과를 요구한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성장할 의지가 아직은 부족한 아이들을 위한 지원을 이끌어내는 건 쉽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우후죽순 나서서 지원한다, 어쩐다 해요. 그마저도 잠깐 관심 표하고 정치인들 나서서 사진 찍고 끝이죠. 아직 아이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런 생색내기 말고 1년이든 2년이든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지원이 필요해요."
성과지표나 정량평가로는 바로 나타나지 않지만 작공의 아이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감히 꿈을 꾸는 건 생각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기쁨을 맛보고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량평가로 드러나지 않는 작공의 성과
"더 이상 자해하지 않는 것, 진심으로 부끄러워 할 줄 알게 된 것, 자기 삶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것,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 시작한 것, 오랜 무기력에서 걸어 나와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알게 된 것."
장보성 선생님이 전하는 작공의 성과다.
"가족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힘닿는 데까지 맞춤형 교육을 하려고 해요. 상처 깊은 아이들에게도 맞춰주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진심으로 자신의 눈을 바라봐주는 한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말이에요. (아이들이) 늘 누군가를 탓하고 살아야 하는 '탓하기게임', 희생자로 규정하는 '희생자게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는 그런 시간들이 참 경이로와요."
늘 사연도 많고 변수도 많은 작공을 함께 지켜온 건 지역주민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아이들을 기다려준 자원봉사자들, 작공의 교사들, 후원자들과 든든한 지역사회가 없었더라면 진즉에 없어졌을 공간이다.
"작공 걱정을 하며 아이들과 울고 웃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작공이 처한 어려움을 그대로 지역사회와 나누고 연대하면서 방법을 찾아보려 해요. 이곳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곳도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이 지켜온 공간도 아니죠.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 어려움도 이겨내고 행정공백의 벼락같은 어려움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작공이 힘을 낼 수 있게 함께 응원해주세요."
[청소년 배움터 '작공' 후원의 밤]
일시 : 2023년 2월 24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3층 힐림캠프
후원 등 문의 : 070-7657-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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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