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공동체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 채 삶을 포기한 태평동 모녀의 '죽음'에 참담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빚 독촉과 생활고에 세상을 떠난 모녀에 대한 '촛불추모제'가 지난 14일 저녁 성남시의료원 앞 숯골문화공원에서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지난달 9일, 경기 성남 태평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딸로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70대 노모와 40대 딸이 '장사하면서 빚이 많아졌다' '폐를 끼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는 유서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 달 가까이 드나든 사람 없는 두 모녀의 집의 현관문은 잠겨 있었고 불은 꺼져 있었다.
소득이 없는 노모는 병환 중이었고 이혼한 딸이 장사를 하며 홀로 생계를 책임졌다. 어려운 형편에도 월세와 밀린 공과금은 없었다. 두 모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은 월세를 걱정하고 주변 사람에게 미안해했다.
이에 시민들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주민교회, 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성남교육희망네트워크, 열린교회, 성남4.16연대 등이 이날 추모제를 마련했다.
묵념, 헌화, 추모 공연 등으로 진행된 추모제는 서덕석 열린교회 목사·이훈삼 주민교회 담임목사·심우기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최만식 경기도의회 의원·김철호 목사(희년 빚탕감 상담소 소장)·장지화 진보당 수정구지역위원회 민생특별위원장 등의 추모사 및 발언, 선언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성남시, 서민 빚탕감프로젝트 지속됐어야"
참석자들은 '사회적 비극, 태평동 모녀의 죽음을 추모합니다'는 추모선언문을 통해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졌던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며 "가난한 이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가난한 이들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대로 된 민생대책과 복지정책이 시행되고, 서로 돕고 함께 사는 손길이 있었다면 이분들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 죽음을 단순한 비극으로 치부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많은 시민들이 지금 태평동 모녀의 죽음을 '사회적 비극'이라고 여기며 깊이 슬퍼하고 있다"며 "고금리·고물가 속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된다면 제2와 제3의 사각지대 방치 희생자가 나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는 죽음보다 가난이 두려운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며 "이제 멈춰야 한다. 가난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아무런 구조신호도 보내지 않고 그저 침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분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한 최만식 도의원도 "성남 모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성실히 납부한 공과금 때문에 지원대상에서 배제됐다"며 "말 그대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런 위기의 가구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성남시 서민 빚탕감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시행이 됐다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수원 세 모녀'나 '성남 모녀' 사건 같은 복지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대책의 하나로 '명예 사회복지공무원' 제도를 확대 운영에 들어간다.
지역주민들과 접촉이 잦은 통장 등이 위기 상황으로 예상되거나 어려움을 호소하는 주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시‧군에 신고 또는 제보할 수 있도록 도가 2018년 도입한 제도다. 지난해 기준 4만4천여 명인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을 올해 5만 명 이상으로 늘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설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