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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60살 생일 때, 돌돌 말린 돈이 케이크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거, 그거 나도 해줘."

시아버지 환갑 잔치를 치르고, 노곤한 채로 돌아오는 차 안. 남편과 나는 아이 덕분에 웃었다. 케이크 토퍼 아래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던 5만 원 돈뭉치가 머리에 맴돌았던 모양이다.

"그래. 2075년에 꼭 해줄게! (네 환갑은 이렇게나 먼 훗날이란다. 돌돌 말린 돈, 그거 받으려면 한참 남았어.)"

남편은 '2075'를 짓궂게 강조했다. 그런데 2075년이란 숫자를 입 밖으로 꺼낸 순간 우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를 놀려주려고 숫자로 가늠해본 건데, 오히려 어른이 당황하고 말았다. 단순히 숫자가 크고, 미래가 멀게 느껴져서 놀란게 아니었다. 문제는 2050년이었다. 아이의 환갑이 2050년 너머에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50년. 이때는 우리에게 약간 두려우면서도, 희망을 품는 해다.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탄소 중립을 성공해야 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오랫동안 실천하느냐에 따라, 2050년 이후에도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가 탄소를 배출하는 면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즉 인류의 산업 활동이 지난 30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30년 동안 동일한 상승 곡선을 그린다면 21세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오늘날 기준에서 살 만한 지역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 <2050 거주불능 지구> 중, 데이비드 월러즈 웰즈 지음

기후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2050년이면 거리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이 아직 환갑도 채 안 된 때라는 걸 눈치채지 못 했다. 60살은 청춘으로 여기는 시대에, 어린이들이 60살을 얼마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니. 아이들은 환갑에도 여전히 풍요로울 수 있을까. 무탈한 너희의 환갑을 위해 어른인 엄마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플라스틱 줄여봤다, 그럼에도 쓰레기는 나온다
 
 한 달 동안 플라스틱 제로 도전 후, 플라스틱 배출 기록.
한 달 동안 플라스틱 제로 도전 후, 플라스틱 배출 기록. ⓒ 최다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봤다. 가볍게 노력해서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한 달 동안(2022. 11. 19.~12. 18.)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바닥에 하나씩 펼쳐도, 평소 일주일 치 쓰레기보다 덜 나왔다. 원두 사고 증정으로 받은 테라로사 컵커피(거절했어야 했는데!), 포켓몬 찐빵 트레이, 포켓몬빵 트레이, 두부 포장, 햄버거 젤리와 보석 사탕 포장, 초코픽 과자 소스 통 등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비결은 딱 하나, '용기'다. 장바구니, 천 주머니, 텀블러, 밀폐용기. 이미 갖고 있는 온갖 용기들에 알맹이만 담아오면 된다. 시장에 가서 느타리버섯은 천 주머니에 담아오고, 금요일 퇴근 후에 커피랑 곁들일 얼그레이 롤케이크는 밀폐용기에 포장하니, 일상의 재미도 여전히 놓치지 않았다.
 
 플라스틱 줄이기의 단순한 원칙 하나, '용기'.
플라스틱 줄이기의 단순한 원칙 하나, '용기'. ⓒ 최다혜

하지만 플라스틱 '제로'는 어려웠다. 호빵을 골랐더니, 두부를 샀더니, 증정품을 받았더니 플라스틱 쓰레기도 따라왔다. 자책할 일은 아니었다. 호빵을 먹은 게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니까 말이다.

개인이 노력하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는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좋을까.

플로깅을 해보았다, 쓰레기는 계속 생산된다
 
 좋아하는 장소에서 산책삼아 플로깅 하기.
좋아하는 장소에서 산책삼아 플로깅 하기. ⓒ 최다혜
 
플로깅도 해보았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을 욕했다. (물론 여전히 욕한다.) 버려진 홍삼즙 껍데기를 주울 때에는, 껍데기를 고스란히 버린 사람 입속에 넣어주고, 담배꽁초는 콧구멍에 꽂아주고 싶다며, 반쯤 진심인 농담을 뱉으며, 남편이랑 신나게 웃었다.

하지만 플로깅을 거듭할수록 욕이 줄었다. 버려진 쓰레기들을 보면 너무나 일상적인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마스크, 일회용 커피컵, 택배 박스 테이프, 컵라면 용기, 견과류 믹스. 이 쓰레기들의 가장 큰 문제는 썩지 않는다는 점이다. 햇빛과 바람에 잘게 부숴져 미세 플라스틱으로 남아 생태계의 기초 단계부터 교란하게 된다. 썩지 않는 물건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점이 쓰레기 문제의 뿌리 깊은 원인이었다.

나는 이런 물건을 돈 주고 산 적 없나? 결백할까? 길가에 함부로 버린 사람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무결하지 않다. 바닥에 버린 그들도, 쓰레기통에 버린 나도, 지구에 부담을 주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플로깅을 하다보면, 일상적인 물건들이 버려져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었다.
플로깅을 하다보면, 일상적인 물건들이 버려져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되었다. ⓒ 최다혜
 
개인의 한계를 확장하는 방법, 지구를 위해 돈쭐을 내자

플로깅을 하지만, 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 그리고 샴푸바와 설거지 비누를 쓰지만, 면 생리대를 쓰지만, 고기를 줄이고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구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까?

"내 고생은 비효율이지만, 정부와 기업의 변화는 확실한 한 방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트에서 비닐이나 플라스틱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다면? 포켓몬빵 로켓단 초코롤에 플라스틱 트레이가 없다면? 담배꽁초의 필터를 플라스틱 말고 생분해 물질로 만든다면? 카페에서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된다면? 우리가 쓰는 전기가 친환경 에너지라면? 공공기관에서 환경표지인증 제품을 써야만 한다면?

누구나 애쓰지 않아도 이미 주어진 상품과 서비스들이 환경에 덜 해롭다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꽤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을 설득할 방법, 없을까?

있다. 정부의 정책을 움직이고, 기업의 친환경 경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멋진 언니, 오빠들이 득시글한 곳. 바로 환경단체다. 정부의 목표는 GDP 상승이고 기업의 목표는 매출 상승이며, 비영리 환경단체의 목표는 환경보호다. 그래서 비영리 환경단체는 정부나 기업 상대로 용감하게 활동하고, 신랄하고 신명나게 친환경으로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들은 태평양에 떠있는 쓰레기 섬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북극의 빙하가 녹지 않도록 세계의 정부를 상대로 탄소배출량을 줄일 것을 호소한다. 담배꽁초를 주워 모아 한국담배인삼공사로 꽁초 어택을 통해, 담배에서 플라스틱 필터를 없애줄 것을 요구한다.
 
 개인의 실천을 확장하는 방법, 기부
개인의 실천을 확장하는 방법, 기부 ⓒ 최다혜
 
개인의 한계를 확장하려면 환경단체에 기부하면 된다. 환경단체가 오래도록 힘낼 수 있도록, 돈쭐을 내자. 자본주의 때문에 지구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비영리 환경단체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 또한 '돈'이다. 비영리 환경단체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그 누구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

돈을 버는 성인인 나는 기부를 통해 돈으로 환경을 조금씩 산다. 2050년 너머, 세상 아이들이 풍요로운 환갑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리고 2075년에는 돌돌 말린 돈이 계속 튀어나오는 케이크를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환경단체와 아무런 이해 관계 및 친분이 없음을 밝힙니다. 쓰레기 몇 개 줍는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더 효율적인 친환경 실천을 위해 정치와 기업이 변화할 수 있도록, 환경단체에 기부를 합니다. 기부 또한 친환경 실천임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구를구하는가계부#기부#돈쭐#제로웨이스트#플로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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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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