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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콘서트 "도킹" 이승윤 공식 응원봉
이승윤 콘서트 "도킹"이승윤 공식 응원봉 ⓒ 김미영

지난 19일은 좋아하는 가수의 단독 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며칠 감기로 고생하며 혹시나 코로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여러 지인들에게 티켓팅을 부탁해서 어렵게 구한 표이기도 했고, 너무 가고 싶은 공연인데 코로나로 혹여 못가게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였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몇 번이나 했는데 다행히 코로나도 독감도 아닌 그저 심한 감기였다. 공연날이 다가오는 데도 통 낫지를 않아 결국에는 영양제까지 맞았다. 그렇게 어렵게 가게 된 공연은 링거투혼을 해서라도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공연장은 자리를 꽉 채운 팬들과 가수가 숨소리까지 하나 되어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거대한 우주의 블랙홀 같았다.

클래식이나 대중가요도 좋아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민중가요나 그 언저리의 노래였다. 따라 부르기 쉽고 노래 속에 담긴 진솔하고 어쩌면 조금은 과격한 내용이 미사여구 없이 그대로 가슴속에 들어와서 좋았다. 그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마음은 여전히 그시절을 부유하며 중년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민중가수나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응원하고 간간이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는 동생이 동영상을 몇 개 틀어서 보여줬다. 언니가 좋아할것 같다며 보여준 영상에는 어느 방송국의 경연대회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무명가수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이름도 내세우지 못하고 번호로 자신을 알리고 있는 "30호 가수".

노래를 듣자마자 나는 너무나 새로운 그의 편곡에 혀를 내둘렀다. 같은 노래를 이렇게 부른다고? 이걸 이 가수가 스스로 편집해서 부르는 거라고? 듣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그의 노래를 더 검색해서 들었다. '덕질'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된 셈이다.

그가 나와서 경연을 펼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음을 다 해 응원했다. 결승날엔 처음으로 가수를 응원하는 투표도 참여했고, 그는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편곡을 잘 하는 것도 심지어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것도 좋았는데, 내가 그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은 그가 내뱉는 말들과 노랫말이었다.

이미 너무 많이 회자되고 있는 그가 한 말들을 가끔 곱씹어 본다. 1등을 한 후 그의 위치는 당연히 바뀌었을 것이다. 아무도 몰랐던 무명가수 30호에서 '이승윤'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고, 적지 않은 팬들도 생겼을 것이다.

그 즈음 어느 라디오에 방송에 출연을 했다. 라디오의 진행자가 '자신이 인기 있다는 것이 언제 실감되느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는 '지금 여기 선배님 앞에 앉아있는거요'라고 대답을 했다. 상대방과 하는 대화에서 그는 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히는 대화법을 쓴다.

높임을 받는 상대방도 기분이 좋고 그것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을 낮춘 그는 더 빛나보인다. 결국 모두가 반짝반짝 스스로 빛나게 되는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노랫말들은 또 어떤가. 직설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대상이나 의미를 나의 입장에 어울리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이것은 마치 정답이 없는 노랫말에 내가 생각하고 쓰는 것이 답이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의 노래 속에는 이렇게 세대와 공간을 고민한 흔적이 보여서 좋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나이든 이들은 나이든 이들대로 각자의 답안지대로 해석이 더해져서 시대를 어우르는 노래가 되는것 같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하게 지켜낸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부모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니, 그 뜻을 지켜낼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 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물론 늘 묵묵히 지켜봐주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채찍질로 다른 길을 유도하기도 했을 것이고, 속 터지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기다리며 응원한 부모의 애절했을 마음도 알 것 같다.

그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자기의 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라는 힘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은 이 점을 가장 높이 산다고 했다. 포기하는 것이 훨씬 쉬운 길이었을텐데 모든 유혹과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가수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 매우 존경스럽다고 했다.

그에게 매력을 느꼈던 그때부터 인터넷을 검색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그가 참여하는 공연장을 가게 되었다. 갱년기가 와서 조금은 의기소침하고 이곳저곳 아픈 곳도 많아 아주 조금은 무기력해지는 날도 있었던 나에게 이런 열정이 어디에 숨어 있었던건지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거니와 관심조차 없던  페스티벌을 지난 여름 내내 다녔다. 이렇게 신나고 즐거운 음악의 놀이터를 왜 지금까지 몰랐던 걸까.

이승윤 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이 함께 하는 그 자리는 하루종일 이어져도 힘든 줄 모를만큼 즐거웠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펼치고 미리 준비한 음식을 먹고 마시며 함께 간 지인들과 근심없이 온몸으로 느끼는 그 열기는 일상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 뿐인가.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아들과도 한결 통하는 엄마가 되었다.
 
2022년 뷰티플 민트 라이프 햇살 좋던 날 처음 갔던 페스티벌
2022년 뷰티플 민트 라이프햇살 좋던 날 처음 갔던 페스티벌 ⓒ 김미영

함께 공연장을 다니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공유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혼자만 듣던 노래를 들려주며 나의 감상평을 묻기도 했고, 아들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기다려 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더 공고히 다졌다.

19일 오후 5시에 시작된 공연은 8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잠시도 한눈을 팔 틈이 없는 공연에 객석에서는 연신 탄성이 나왔다. 객석 구석구석 무대와 먼 곳까지 가수가 직접 움직이며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팬들과 호흡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가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가끔은 아쉬울 때도 있다. 나와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때가 묻을 수도 있죠. 살다보면 그런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너무 많이 묻는다 싶으면 털어 버리면 되고."

라이브방송을 하며 유명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그가 한 대답이다. 이런 자세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그는 결코 무뎌지지 않을 것이다.

#이승윤#단독콘서트#덕질#음악#도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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