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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시 번화로 골목 배움터’ 둥지작은도서관 이경희 관장 .
‘서산시 번화로 골목 배움터’ 둥지작은도서관 이경희 관장. ⓒ 최미향

독서 생태계의 혈맥을 관장하는 서산 둥지작은도서관에는 오랫동안 학생들과 함께 생활해 온 교사 출신 이경희 관장이 있다. 지난 20일 그를 만났다. 

"학교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요. 특히 우리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에 너무 많이 사용하면서 지내잖아요. 성인들도 책을 읽는 시간보다 인터넷이나 TV 시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요. 물론 쉽지 않겠죠. 저는 도서관을 통해 손에 책이 들려지고 책을 읽는 문화가 확산되는 데 작지만 기여하고 싶어요."

어르신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나아가 노인들의 지혜를 도서관과 접목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이경희 관장. 그녀는 "번화로 주변 공방과 문화 공간들과도 유기적 협력 관계를 이루어서 활기 넘치는 변화로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싶다"고 말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독서문화프로그램 .
독서문화프로그램. ⓒ 최미향
 
-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에 너무 많이 노출된 것 같아 안타깝다. 관장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

"옛날에는 자연이 친구였다. 대전 유등천에서 물놀이도 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유등천은 그대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큰 도로가 생겨서 옛날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도 우리 친정집이 그 자리에 있어 가끔 추억에 젖을 때가 있다는 거다.

사실 나는 베이비 붐 세대다. 당시는 다들 어려운 시기를 살다 보니 공부를 계속 이어갈 수 없는 형편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 친정어머니는 당신이 초등학교 졸업 후 상급학교에 갈 수 없었던 일이 한이 되어서 딸이든 아들이든 학교 교육만큼은 꼭 뒷바라지해야겠다는 삶의 철학으로 저를 대학에 보내주셨다.

정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머니의 기쁨이었고 당신 삶의 의미였다. 이런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교사의 길은 걷지 못했을 것이다."

"방과 후 짬 내서 독서모임... 책이 얼마나 달던지"
 
교사 출신 부부의 행복한 여행 .
교사 출신 부부의 행복한 여행. ⓒ 최미향
 
- 첫 발령지는 어디였으며 초임교사 시절 얘기를 들려달라.

"1982년 첫 발령을 당진중학교로 받았다. 어설픈 초임 교사 시절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뚫어져라 쳐다 보던 우리 아이들. 교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그 감동이 평생을 교직에 머물게 하는 끈이 되었던 것 같다.

당진에서 3년을 사는 동안 좋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림 그리시는 분, 시를 좋아하고 문학회 활동을 하는 분, 좋은 책이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위기가 젊은 시절 낯선 객지에의 삶에 큰 에너지가 되었다.

그리고 생애 가장 운명적인 만남, 교무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편을 당진에서 만났다. 그 당시에는 LP 음반으로 음악을 자주 들었는데 남편이 고가의 턴테이블, 앰프, 스피커 등을 갖고 있어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자주 그 집에 음악을 들으러 갔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옆자리에 앉아 있다.

학교에서는 여러 부서의 업무들을 돌아가면서 맡게 됐는데, 한번은 학교 도서관 업무를 맡아서 도서관 운영 전반적인 일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방과 후에는 짬을 내어 선생님들과 독서 모임을 했던 기억도 참 신선하다. 시간에 쫓겨 떠밀려서 읽는 책이 얼마나 달고 재미있던지... 수업 시간에 관련된 글귀들을 한 줄씩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또한 좋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꽃들에게 희망을 등 아이들과 공감하며 읽었던 책들이 지금도 내 책상 가까이에 꽂혀있다."
 
둥지작은도서관에서 전시회 .
둥지작은도서관에서 전시회. ⓒ 최미향
 
- 링컨중고등학교(대안학교)에도 근무하셨다고 들었다. 유난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서산에서 2015년 명예퇴직을 하고 김천에 있는 링컨중고등학교(대안학교)에 6년을 더 근무했다.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한라산을 등반한 적이 있는데 내 나이 50대 후반에 학생들과 같은 걸음으로 백록담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뒷동산에만 올라가도 숨이 턱까지 차는 터라 중간에 하산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일단 출발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뒤 쳐지고 숨이 차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때 한 남학생이 내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내 뒤에서 밀어주기 시작했다. 떠밀리는 힘으로 중간 지점까지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더 이상 학생들과 보조를 맞출 수 없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아서 그 학생을 먼저 올려보내고 나는 내 걸음대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뒤 쳐져서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데 나를 도와주던 그 학생이 헐레벌떡 다시 내려왔다.

'선생님, 조금만 올라가면 백록담이에요, 힘내세요' 하면서 용기를 주고 다시 뒤에서 밀어주면서 나를 백록담까지 무사히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그 학생과 그 일이 정말 잊을 수 없다. 내 생애 다시 9시간 만에 한라산을 완등할 수 있을까? 다시 없을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학생들이 고맙고 그 순간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책 읽는 마을 힐링여행 .
책 읽는 마을 힐링여행. ⓒ 최미향
 
- 현재 서산둥지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오픈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사실 퇴직 후에 도서관을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2021년 학교를 떠나면서 남편과 나의 장래 노후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좀 쉬어야지 하는 계산으로는 앞으로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평소에 가끔 경로당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필요하다고 느꼈던 노인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멘토분께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해보라고 권유를 하셨다. 교직에 오래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문화 활동을 이어 갈 수 있고 시민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할 수 있어서 보람된 일이 될 것이라고 추천을 해 주셨다. 40여 년 교직의 경험을 그냥 놓아버리기에는 결코 작지 않은 자산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사용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용기를 내서 작은도서관 개관을 알아보고 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지인들을 중심으로 후원회도 결성이 되고, 책이나 물품을 기증해주는 등 주민들의 도움으로 2021년 5월 24일 드디어 둥지작은도서관 개관을 할 수 있었다."
 
서산시 번화1로23(동문동) 둥지작은도서관 외부전경 .
서산시 번화1로23(동문동) 둥지작은도서관 외부전경. ⓒ 최미향
 
- 서산 번화로에 도서관을 오픈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작은도서관을 등록하려면 10평 이상의 공간과 1000여 권의 장서가 필요하다. 장소를 알아보는 중 우연히 번화로 골목에 들어오게 되었다. 비어 있는 상가가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이곳에 시민센터, 청년 지원 센터, 갤러리, 공방 등 문화 거리가 조성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사립작은도서관은 임대료를 자부담으로 해결해야 되어 저렴한 곳을 찾고 있었는데 이 골목이 임대료가 싼 편이었다. 우리 도서관이 들어온 이 건물은 내부 인테리어도 이미 잘 되어 있던 곳으로 큰 비용이 들지 않고 내부 정리를 하고 도서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보니 주변 공방들과 자연스럽게 우리 도서관이 어울리고 걸어서 시장을 다니는 분들이 종종 도서관에 들러서 책도 빌려 가시고 프로그램 공지가 올라가면 가까이 사시는 분들이 참여를 하고 계셔서 주민들의 눈높이에 있는 골목 배움터 역할을 하고 있다."
 
둥지작은도서관에서 전시회 후 단체사진 .
둥지작은도서관에서 전시회 후 단체사진. ⓒ 최미향
 
- 도서관을 운영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듯 하다.

"둥지작은도서관은 제가 관장으로 있지만, 운영은 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혼자 가는 길이 빠를 수 있지만, 함께 가는 길이 멀리 갈 수 있다고 한다. 처음 개관할 때부터 10여 명의 후원자를 중심으로 운영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협의를 해서 운영을 해오고 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을 해도 사유화된다면 그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다 함께 행복한 일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도서관은 운영을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고 의견을 나누어서 프로그램이나 활동 계획들을 수립하고 함께 진행을 한다.

2022년에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중에 찾아가는 마을도서관, 왁자지껄 책놀이, 청소년 진로 체험 활동, 독서모임, 문화 체험 활동, 독서기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
 
찾아가는 마을도서관 .
찾아가는 마을도서관. ⓒ 최미향
 
특히 찾아가는 마을도서관은 관내 경로당을 방문해 책놀이, 레크레이션, 추억의 영화상영 등 후원회의 도움으로 많은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내년에 다시 꼭 와서 프로그램을 운영해달라고 요청하실 만큼 경로당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프로그램을 참가하러 오시는 분들의 소감이 우리 도서관에 오면 마음이 참 편안하다고 하신다. 간식을 챙겨 가지고 오셔서 프로그램 중간에 간식 타임을 가지며 대화의 꽃을 피운다. 자연스럽게 소통과 공감의 시간이 되고 있고 골목길 사랑방처럼 서로의 마음에 울타리가 낮아지는 공간이 되고 있으며 책은 덤으로 읽게 된다."

"도서관 운영 안 했다면 큰 행복 놓쳤을 것"
 
찾아가는 마을도서관 .
찾아가는 마을도서관. ⓒ 최미향
 
- 그래도 운영하다 보면 보람도 있겠지만 만감이 교차할 때도 많을 듯하다.

"도서관 운영을 안 했다면 어떠했을까? 한 번씩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인생 2막의 이 큰 행복을 놓칠 뻔했다. 남편과 함께 교대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생활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어서 좋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운영 구상을 하기 때문에 뇌의 노화도 느려지는 행운을 얻고 있는 셈이다.

우리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계속 읽게 되는 것도 큰 보람이고 기쁨이다. 요즘 남편은 한 달에 세 권씩 책을 읽는다. 나는 그만큼은 아니지만,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에 산다는 것이 참 즐겁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번화로에 들어와 지내다 보니 최근에 읽었던 유현준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일부 소개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자주 생각이 난다. 방치된 상가, 방치된 거리 그러다 보면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소외지역이 되어 버린다.

우리 도서관 옆 상가가 비어 있는데 유독 쓰레기들이 그 앞에 쌓인다. 관심을 가지고 자주 청소를 하지만, 번화로 골목의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도시재생사업을 위해 이 지역 주민들이 다 같이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 도서관에서도 함께 이 부분을 놓고 고민도 하고 주민들께서 자주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운영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작은 마인드콘서트 .
작은 마인드콘서트. ⓒ 최미향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학교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사람으로 학생들에게 여전히 관심이 많이 간다. 요즘 청소년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에 너무 많이 젖어서 지내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성인들도 책을 읽는 시간보다 인터넷, TV 시청 등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 도서관을 통해 주민들의 손에 책이 들려지고 책을 읽는 문화가 확산되는데 작지만 기여하고 싶다.

노인 인구가 점점 많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노인분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노인들의 지혜도 우리 도서관을 통해 배우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주변에 공방과 문화 공간들과도 유기적 협력 관계를 이루어서 활기 넘치는 번화로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싶다.
 
도서관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오신 분들과 함께 .
도서관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오신 분들과 함께. ⓒ 최미향
 
요즘 우리 도서관에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한분 한분 말씀을 들어보면 저마다 재능을 가지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재능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리고 싶은 꿈이 자꾸 생긴다. 유능한 강사도 필요하지만, 재능을 나누면서 자긍심도 키우고 도서관과 함께 동반 성장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참 즐겁다.

지면을 빌려 그동안 둥지작은도서관이 개관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후원회원분들과 주민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오늘도 서산시 둥지작은도서관 이경희 관장은 이런 바람으로 기도를 한다.

"올해는 서산시에서 사립작은도서관 사무운영비, 도서구입비, 독서문화프로그램비 지원을 받아 운영을 하게 되는데, 우리 도서관이 많은 분에게 알려져서 발걸음이 우리 도서관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둥지작은도서관에 가면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따뜻한 만남이 있고, 읽고 싶은 책이 가까이에 있는 열린 공간으로 성장하게 되길 바랍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놀이 프로그램으로 책과 함께 올바른 인성을 키워가길 바라고,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아가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성인들에게는 취미와 소양을 기르는 소통의 공간으로 주민들 곁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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