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베트남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안을 23일 발의했다. 법원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자, 이에 맞춰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7일, 앞서 베트남인이자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 티탄씨)에게 3000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라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이다(관련 기사:
이재명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인정 판결 환영... 일본과 다른 길 걸어야" https://omn.kr/22np4 ).
하지만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국방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국) 장병들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된 것은 전혀 없다. 판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을 정부가 부정한 셈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의원 25명은 이날(23일)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법안 발의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동참해서 힘을 실었다. 이 법은, 7명으로 구성된 베트남전쟁 민간인 피해조사위원회를 설치, 과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발생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등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면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안에 따르면 피해조사위원회는 진상규명 조사 및 결정, 종합보고서 작성, 대한민국 정부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조치 및 베트남과 대한민국 사이의 인권과 평화를 바탕으로 한 유대강화 조치 권고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늦었지만... 일본과 달리 우리는 진상조사하고 사과해야"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법안 발의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이 법안의 주요한 내용은 '조사'다. 조사에 관한 특별법안이다"라며 "사법부와 행정부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에 대해서 특별법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통해서 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를 하자라는것이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라고 밝혔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강민정 민주당 의원은 "응우옌 티탄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의 얼굴이 겹친다"라며 "우리나라 정부나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우리는 일본 정부에게 수십년간 피맺히는 절규를 하면서 공식적인 사과와 응당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피해당사자성을 가지고 있다"라면서도 "(한국은) 동시에 베트남전에서 수많은 '응우옌 티탄'들에게 가해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불편하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정한 사과, 그리고 그 이전에 확실한 진상규명이 되어야 한다. 이번 특별법 발의는 아마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라며 "대한민국 입법부가 전 세계에 전쟁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실질적인 입법화의 과정 통과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2014년 3월 8일, 고인이 되신 김복동 할머니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우리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군에 의해서 전쟁 때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드린다'"라고 했다. 그 메시지를 잊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해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만난 일을 전하며 "그분들은 '한국이 이렇게 (우리가) 피해를 입은 것을 부정하고 모른다고 하면, 제가 가서 겪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라며 "늦었지만 우리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잘못했다, 사죄하겠다, 배상하겠다라는 등의 조치를 통해 (진상규명으로) 먼저 나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이종섭 장관의 발언을 비판하며 "(이건) 이 장관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공식 견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라며 "우리가 먼저 사죄해야, 일본에도 떳떳하게 사죄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 법안과 관련해 응우옌 티탄씨는 "우리 피해자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한국 친구들이 응원해주길 바란다"라며 "저와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를 닫을 수도 없다"라며 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참전군인들이 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저는 과거를 닫을 것이다"라며 "국회의 목소리가 우리 베트남 피해자들을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