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경찰 수사권 장악" vs. "경찰 수사 발전 계기"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송정은 박규리 이미령 기자 = 출범 3년 차를 맞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의 새 수장에 검사 출신 정순신(57) 변호사가 24일 임명되면서 경찰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로 몸살을 겪었던 경찰 조직이 이번 인사로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됐다.
2021년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을 폐지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출범한 국수본은 경찰 수사권 독립의 상징적인 기관으로 여겨진다.
국수본은 2020년 기존 경찰 사무가 국가·자치·수사 경찰로 나누는 경찰법 개정에 따라 2021년 1월 1일 출범한 조직으로 경찰 수사를 총괄한다.
국수본부장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장과 경찰서장은 물론 3만 명이 넘는 전국 수사 경찰을 지휘한다. 경찰의 독립된 수사권 행사를 대표한다는 명분뿐 아니라 실질적 권한도 보유한 자리인 셈이다.
"검찰이 경찰 수사권 장악" 불만 팽배... "경찰 수사 발전 계기" 기대감도
경찰 수사와 관련해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국수본부장에 경찰이 아닌 검찰 인사가 임명되자 경찰 내부에선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긴 커녕 검찰이 경찰 수사권을 통째로 장악했다'는 불만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려는 경찰의 '숙원'이 갓 실현되려는 터에 이번 인사로 원위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경찰 간부는 "검찰에서 20년간 근무한 인사를 경찰 수사의 최고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사실상 경찰 수사권까지 검찰에 갖다 바친 격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을 폐지한 형사소송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도 "경찰과 검찰이 고유의 권한을 가지고 상호 견제해야 하는데 검찰 출신이 국가수사본부장까지 맡게 되면서 불가능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경찰 일각에선 정 본부장이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에 합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청 소속 한 간부는 "현행법상 국수본부장은 경찰청장에 임명될 자격 조건을 갖췄다"며 "수사는 물론 경찰행정 전반이 검찰 지휘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행법상 경찰총장은 국수본부장 등 치안정감 7명 중에서 임명하게 돼 있다. 국수본부장은 임기를 마치면 당연 퇴직하지만, 임기 중 경찰청장에 임명되는 못하도록 하는 규정은 없다.
반면 검찰 내 '특수통'으로 알려진 정 본부장이 경찰 수사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서울의 한 경찰 간부는 "특수수사는 검찰이 경찰보다 훨씬 뛰어나다"며 "신임 본부장이 특별수사 시스템이나 기법을 전수한다면 경찰 조직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지방의 한 경찰서 소속 간부도 "검사 출신이라고 무조건 거부할 일은 아니다"라며 "경찰의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2001년 검사로 임용된 뒤 인천지검 특수부장 등 주로 특수부 검사로 근무하다 2020년 법무연수원 분원장을 끝으로 퇴직하고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가 됐다.
대통령 측근 배치 지적도... 국수본 조직 장악은 숙제
특히 정 본부장이 윤 대통령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 등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는 터라 경찰 수사 최고 책임자에 대통령 측근을 세운 것 아니냐는 해석도 경찰 안팎에서 나온다.
정 본부장은 사법연수원 네 기수 선배인 윤 대통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이던 2011년 대검찰청 부대변인으로 재직했다. 2018년에는 서울중앙지검장과 인권감독관으로 같은 검찰청에 근무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일각에서 대통령실이 처음부터 정 본부장을 염두에 두고 국수본부장 공모 절차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수본부장의 물망에 오른 경찰 출신 인사들이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은 것도 이런 추측의 근거가 됐다.
지난달 시작된 국수본부장 직위 공모에는 정 본부장을 비롯해 장경석(59) 전 서울경찰청 수사부장과 최인석(48) 변호사(전 화천경찰서장) 등 3명이 지원했다.
정 본부장을 제외한 두 명 모두 경찰 출신이지만, 경찰 퇴직 당시 직급이 경무관과 총경이어서 경찰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인 치안정감 직급인 국수본부장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정 본부장이 국수본부장 지원을 앞두고 변호사 휴업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대통령실과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임기 시작부터 경찰 내부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정 본부장이 향후 어떻게 국수본 조직을 장악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주로 개별 지검에서 수사 이력을 쌓으면서 수사 전반에 대한 정책 수립과 총괄 업무에는 경험이 없는 정 본부장이 윤희근 경찰청장 등 경찰대 출신이 대거 포진한 경찰 지휘부와 과연 융합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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