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와 처음 인연을 맺고 첫 기사를 송고한 때가 2003년이었습니다. 제가 막 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때였고, 제주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였죠.
제주의 동쪽 끝마을 종달리에서의 생활은 도시생활과 달라 삶의 여유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자연의 품에 안겨 놀아도 하루가 참 길었습니다. 길어진 시간만큼 사색의 시간도 많아지고, 그 시간만큼 삶도 성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제주도에서 살던 그 40대 초반이 '삶에 대한 철학적인 인식'의 측면에서 보면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습니다.
40대와 50대의 친구였던 오마이뉴스
40대 초반에 삶의 화두를 삼고 살았던 '천천히, 느릿느릿, 작고, 낮고, 못생기고, 단순한 것'들에 대한 묵상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다그친 것이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는이야기로 이달의 뉴스게릴라를 위시하여 오마이뉴스에서 주는 상은 다 받았을 을 정도로 50대까지 열심히 시민기자로서의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거의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삶의 터전이 도시로 바뀌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한 후 겪는 불편한 일들때문이었습니다. 후자는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사실 서울에 살다보니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며 글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버 세대가 괜시리 꼰대 노릇을 하는 것 같기도 해서 뒤로 물러서 있었지요.
다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그런데 사진 대신 그림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들고 다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왜냐구요? 그냥, 이 나이가 되어서만 보이는 것이 있고, 느끼는 것이 있더군요. 그걸 나누고 싶었습니다.
꼰대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도 했지만,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노인네도 있구나 하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마음 편하게 쓰기로 했습니다. 그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모토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겉늙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저는 오래전부터 '나이듦'에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업(業)의 특성상 장례도 많이 치렀기에 죽음에 대해서도 여느 사람들보다는 많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 드는 것도 죽음도 그냥 삶의 한 부분이지 이질적인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쓴 자작시 '그냥'입니다.
청소를 마친 아내가 슬프단다
왜냐고 물으니
청소기 필터를 교체하는 데 각질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 생전에
방청소 할 때면 각질이 많이 나와
'보습크림좀 듬쁙 바르세요.'했는데
그 나이가 되어 슬프단다
나는 그저 허허 웃으며,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늙은 거여
슬퍼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고 오늘을 감사하자구
제주도 구좌읍 세화리의 그 할망은
20년 전에 찍었건 사진이니 아마도 그날 돌담과 노란 유채꽃밭에서 검질을 하시던 할망은 하늘의 별이 되셨을 것입니다. 또한 밭이 있던 곳에는 커다란 건물이 자리하게 되었으니 이 풍경은 이제 사진 속에만 남아있습니다. 조금 슬픈 사진이지요. 그런데 이 사진을 연재물의 첫 번째 사진으로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철따라 봄은 오는데 역사의 봄은 뒷걸음칠 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너무 추워서 좀 따스하시라고 따뜻한 그림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지난 2월 22일, 오마이뉴스의 생일이었습니다. 함께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인연을 나누기도 했던 분들 중에서도 몇몇 분들이 하늘의 별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몇몇 분들은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며 기사를 작성하고 계십니다.
저도 그 대열에 참여하여 꼰대스럽지 않게, 그냥 이 나이 들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하나 둘 꺼내볼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일주일에 한 꼭지 정도 제가 그린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로 연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많이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꼰대 짓을 하거든 꾸짖어 주시고요.
아참, 제게 손주가 생겨서 할아버지라 한 것은 아니고, 제 또래 친구들이 할아버지들이라 저도 그냥 할아버지라고 하는 겁니다.